헤디(Heady) – You Complete Me – KM Culture/DMR, 2003 들리지 않는 소리, 들리는 여운 들리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쓸 수 없다. 헤디(결성 당시에는 헤디마마였다)의 이 데뷔 음반도 마찬가지다. 결성 6년만에 발매된 이 데뷔 음반은 ‘프로듀싱이 잘못되었다’는 한탄을 주변에서 가끔 듣는데, 이는 이들을 공연에서 본 이들이 들었던, 강렬하고 ‘노이지’했던 소리가 정작 음반에서는 많이 깎여나갔다고 생각하는 데 원인이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 아쉬워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들리지 않는 것은 들리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침묵할 수밖에 없고, 그것이 온당하다. 들리지 않는 소리를 애써 상상할 이유는 없다. 그렇다면 귀에 직접 들리는 헤디의 음악은 어떨까. ‘싸이키델릭한 기운을 풍기는 얼터너티브 하드 록’이란 말이 적절한 설명이 될 수 있을까. 그리 어긋나 보이지 않는다. 기타는 때로 ‘윙∼’하는 소리와 함께 음산한 포물선을 그리고, 각종의 알딸딸한 이펙트를 선보이며, 코러스 부분에서는 강한 파열음을 내뿜는다. 보컬은 주로 저음역에서 굵고 강한 목소리로 청자를 압도한다. 기계음을 쓴 흔적도 보이지만(“비오는 날”) 역시 대세는 기타가 주도하고 솔리드한 베이스와 둔탁한 드럼이 받쳐주는 가운데 보컬이 질러대는 ‘정통’ 하드 록이다. 오래 호흡을 맞춘 것이 금방 드러나는 숙련된 연주다. “Hey Boy” 같은 곡에서는 ‘훵키’한 기운도 보이지만 전반적으로는 묵직하고 음산한 무드를 조성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흥겨웠어야 할 “Heady Boom”조차도 늪 속에서 추는 슬램 댄스에나 어울릴 법한 소리를 들려준다. 이런 소리가 ‘공격적으로(aggressive)’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 이 음반이 갖고 있는 독특함일 것이다. 더불어 이 묵직하고 음산한 무드는 묘한 안정감(이를테면 “숲”)도 갖고 있다. 이것이 이 음반을 들을 때 금방 연상되는 앨리스 인 체인스(Alice In Chains) 같은 밴드의 음악과 비교하기가 어려운 까닭이다. 어느 모로 보나 추세에 따르지 않는 소리지만 (다만 히든 트랙에서는 좀 더 ‘경쾌하고 모던한’ 기분을 내려 하고 있다) 그 ‘올곧음’은 청자의 주의를 끄는 구석이 있다. 1999년, 장필순의 곡을 삭막하게 리메이크한 “어느새” 이래 이들의 지향점은 한 방향이었던 것 같으니까. 예의 그 안정감은 가사에도 옮아간다. 레즈비어니즘(lesbianism)(“이반이야기”)이나 근친 성폭행(“숲”) 같은 ‘선정적’ 소재를 담담하고 차분하게 풀어나가는 것을 그 근거로 들 수 있을 것이다. 많은 곡이 ‘나는 너고 너는 나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둘 다 우리는 아니더라’ 식의, 소통의 불가능성에 대한 좌절을 풀어내고 있지만 그들 특유의 안정감은 이것을 ‘원망’이라기보다는 ‘관조’로 바꿔놓고 있다(“Faraway”). 다만 이 ‘낮은 목소리’가 “Hey Boy”나 “Heady Boom” 같은, 명백히 로큰롤의 쾌락적 본성을 요구하는 부분까지도 위축시킨다는 점은 말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이런 불평은 사소한 것이다. 좀 더 큰 문제는 ‘펑크적/인디적’ 자세와 연주로 ‘장인적/과시적’인 헤비-사이키델릭 록 사운드를 추구할 때 발생한다. 마련해둔 표현 재료들을 (그리 길지도 않은) 곡의 길이에 비해 ‘지나치게 써먹는’다고 느끼는 순간이 들린다(“비오는 날”, “숲”). ‘미니멀하다’라 하기엔 넘치고 ‘관습적’ 하드 록에 비하면 모자라 보인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곡을 이끌 때 힘에 부쳐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Hey Boy”, “H” 같은 경우는 그 문제가 잘 드러나지 않지만, 명백한 ‘대곡 지향’성 트랙인 “Fly In The Purple Sky” 같은 경우 밴드가 의욕에 짓눌려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되며, 그걸 확인시키기라도 하듯 곡은 중간에 끊기는 느낌으로 황급히 맺음해버린다. 뭔가 될 듯’만’ 한 것이다. 이러한 부분들은 프로듀싱이나 기타 노이즈가 덮어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닐 것이다. 좋다. 아마 지금까지 한 말을 ‘숙련된 호흡과 연주에 비해 곡들이 뒷받침하지 못하는 경우가 보이는 음반’이라 추릴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정도 ‘자기 스타일’이 있는데 현재 이 상태에서 ‘암중모색’의 과정에 진입한 것 같다는 소리도 될 지 모르겠다. 사실 이런 평가가 데뷔 음반을 갓 낸 밴드에게 할 만한 소린 아니겠지만, 6년이라는 시간이 있었다는 걸 알고 있는 처지에서는 이들을 멋모르는 새내기처럼 볼 수만도, 소리의 성숙함을 놀랍게 받아들일 수도 없다. 그러나 들리지 않는 소리는 들리지 않아도, 들리지 않는 여운은 남는다. 이 묵직하고 차분하며 격렬한 소리는 음반에 대한 생각과는 별개로, 실은 의외로, 제법 귓가를 맴돈다. 녹차 잎을 씹었을 때 느끼는, 씁쓸하고 텁텁한데 마냥 싫지는 않은 입안의 여운이 귀에 들러붙기라도 한 듯. 20031119 | 최민우 eidos4@freechal.com 5/10 수록곡 1. 어떻게 널 2. Hey Boy 3. 이반이야기 4. 비오는 날 5. Faraway 6. 숲 7. Heady Boom 8. H 9. Fly In The Purple Sky 10. Sugartown (hidden track) 11. Bye Bye (hidden track) 관련 글 우리의 음악은 자연스럽게 흘러갈 것이다, 우리 삶이 그러하듯이: 헤디 인터뷰 관련 사이트 헤디 공식 홈페이지 http://www.head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