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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완과 배철수는 현역입니다. TV와 라디오 같은 대중매체에 아직도 모습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김창완도, 배철수도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는 않습니다. 김창완은 드라마 프로그램에 조연급 탤런트(예를 들어 [요정 컴미]에 나오는 명태 아빠)로 등장하고 있고, 배철수는 다큐멘터리, 영화소개 프로그램 등에서 내레이터로 등장하는 것이 여러분에게 가장 익숙할 것입니다. 한 명은 배우고, 다른 한 명은 성우인 셈이네요. 물론 두 명 모두 라디오 프로그램의 DJ를 맡아 장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20여 년 전 이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지금 그들의 모습은 한없이 낯설기만 합니다. 지금 그들의 모습을 ‘가식적인 것’이라고 못박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게 그들의 본업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들이 지금 만능 탤런트(주의: ‘재능’이라는 뜻입니다)임을 과시하고 있기는 하지만 무언가 ‘저건 아닌데…’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이지요. 물론 뒤에 말하겠지만 이건 그들 자신이 책임져야 할 몫은 아닙니다.

1970년대 말 ‘대학가요제’라는 행사가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있습니다. 한 지상파 TV에서 주최하는 대학가요제가 하나 남아 있더군요. 대학생들을 많이 불러모으려고 하다 보니 2학기 중간고사 기간 즈음에 개최하므로 대학생들이 벌벌 떨면서 지켜보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추위쯤이야 젊은 혈기로 녹여버릴 수 있는 것이겠죠. 하지만 제 눈에는 대학가요제의 무대가 왠지 썰렁해 보입니다. 다름 아니라 대학생들의 음악이라는 것이 직업적 연예인들의 음악과 그리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학생들도 대한민국 국민인 이상 일반 국민들이 좋아하는 연예를 즐기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왠지 ‘여기는 우리끼리’라는 호기가 보이지 않아서 떨떠름해집니다.

김창완과 배철수는 ‘대학가요제’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언급되는 인물입니다. 물론 이건 조금 복잡해서 긴 설명이 필요합니다. 김창완을 필두로 김창훈, 김창익 3형제로 구성된 산울림이라는 그룹은 1977년 ‘제1회 MBC 대학가요제’에 무이(無異)라는 이름으로 출전해서 예선에서 1등을 차지했지만 김창완이 이미 졸업생이라는 사실로 인해 본선에 참가하지 못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김창완님이 졸업했다는 사실을 숨겼다가 뒤늦게 발각되었다는 말은 아니고 참가자격에 대해 약간의 착오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대회의 그랑프리는 김창완이 졸업한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의 ‘캠퍼스 그룹 사운드’인 샌드 페블스가 차지했습니다. 모래 자갈들이라는 이름이네요. 지금도 웬만한 대학교에 존재하는 기수(期數)가 있는 그룹 사운드이고 선후배간 관계도 돈독하죠. 김창완은 샌드 페블스와는 직접 관련이 없었지만 그의 친동생이자 산울림의 베이스 주자인 김창훈은 대상을 차지한 샌드 페블스의 한 기 선배였고 그래서 이 대회에서 매니저 비슷한 역할을 했습니다. 게다가 대상을 차지한 곡인 “나 어떡해”가 바로 김창훈이 만든 곡이었습니다. 혹시나 봤을지 모르지만 지금 문화부장관 자리에 앉아 계신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박하사탕]에서 젊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야유회를 가서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데 그 노래가 바로 이 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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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산울림은 최초의 대학가요제 행사인 1977년 MBC 대학가요제의 배후 실력자로 인정되어 그해 말 데뷔 음반을 발표하게 됩니다. 이때만 해도 직업적 음악인이 될 생각은 없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이 음반은 한국 대중음악에 지각변동을 일으킵니다. “아니 벌써”라는 곡이 대표적이죠. 거두절미하고 말한다면 ‘파격’이라는 단어는 이들을 위해 아껴둘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기준으로 본다면 ‘연주력’은 형편 없었지만 창작력만큼은 누구도 이의를 달 수 없는 음악이었습니다. 이때 이후 산울림은 불과 2년도 안되는 사이에 예닐곱 장 이상의 음반을 발표하면서 참신한 사운드로 강렬한 인상을 심어 주었습니다. 몇 곡만 이야기한다면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내 마음은 황무지” 등등…

배철수는 산울림보다 1년 뒤에 항공대학교 그룹인 활주로를 이끌고 대학가요제의 붐을 이어갔습니다. 1978년에는 ‘제2회 MBC 대학가요제’와 더불어 ‘(제1회) TBC 해변가요제'(뒤에는 ‘젊은이의 가요제’로 개칭)도 열렸는데 활주로는 두 대회 모두에서 입상한 최초의 그룹이 되었습니다. 특히 여기 참가한 곡들인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와 “탈춤”은 서양의 하드 록에 한국의 전통 정서를 절묘하게 접목시킨 안정된 사운드를 보여 주었습니다. 산울림이 ‘아마추어도 음악을 창작하고 연주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면 활주로는 ‘아마추어도 프로페셔널처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말할 수 있으려나요…

산울림과 활주로는 1980년대 이후에도 활동을 계속하면서 전성기를 이어나갔습니다. 산울림은 동생 두 명이 군에 입대하느라 잠시 활동이 주춤했지만 이들이 제대한 뒤 “가지 마오”와 “청춘”이 들어 있는 7집 앨범(1981)으로 멋지게 컴백했습니다. 이듬해에는 “회상”, “내게 사랑은 너무 써” 같은 나긋나긋한 발라드가 들어 있는 8집 앨범으로 기세를 이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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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시기 활주로는 송골매로 재탄생합니다. 송골매는 구창모를 비롯한 홍익대학교 그룹인 블랙 테트라 출신 멤버들과 화학적 결합을 이룬 그룹으로 ‘슈퍼그룹’이라고 부를 만한 존재였습니다. “어쩌다 마주친 그대”, “모두 다 사랑하리”, “빗물”, “한 줄기 빛” 등 주옥같은 히트곡들을 남겼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웃겠지만 당시 송골매는 god나 신화 같은 존재였습니다. 아이돌 스타였다는 의미입니다. 곽경택 감독의 [챔피언] 같이 1980년대 초반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 송골매의 노래가 자주 등장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그런데 1980년대 중반 이후 산울림도, 송골매도 활동이 뜸해집니다. 산울림은 김창완을 제외한 두 동생이 음악을 그만 두고 취직을 하게 되면서 실질적으로 김창완의 솔로 활동이 되어 버렸습니다. “세 형제 모두 음악활동을 계속할 경우 생계를 유지할 수 없었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송골매의 경우 멤버 모두가 음악이라는 직업전선에 뛰어들었지만 연예계라는 곳이 녹록치 않은 곳이라 몇 년 지나자 창작력이 고갈되어 버렸습니다. “방송 녹화에, 영화 촬영에, 그리고 나이트클럽에서의 연주로 녹초가 되었다”는 것이 배철수의 씁쓸한 변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분들의 요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양면적 기분이 듭니다. 한편으로는 복마전 같다는 연예계에서 완전히 휘둘리지 않으면서 나름대로 자기관리나 처신을 잘 해오고 있다는 찬탄이 들고,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의 연예계라는 곳은 재능(‘탤런트’라는 뜻입니다)을 화려하게 개화시켜 주는 것이 아니라 재능을 이리저리 이용한 뒤 이내 용도폐기해 버리는 곳이라는 생각입니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세상’은 아직 오지 않은 모양입니다. 많이 바라는 건 아니고 ‘어느 정도만’ 그럴 수 있다면 좋겠는데 그게 참 힘들어 보입니다. 20030919 | 신현준 homey@orgi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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