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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pture – Echoes – Strummer/Universal, 2003

 

 

질소 중독 상태의 광희의 댄스

뉴욕 씬이 배출한 또 하나의 실력파 밴드인 랩처(The Rapture)는 차근차근 메이저 진출을 준비해왔다. 정규 데뷔 앨범인 [Mirror](1999)를 인디 레이블 그래비티 레코드(Gravity Records)에서 발매한 뒤 한 단계 격상하여 서브 팝(Sub Pop)을 통해 EP [Out of the Races and Onto the Tracks]를 내놓고, 마침내 유니버설(Universal)과의 계약서에 서명을 했으니 말이다. 랩처는 그다지 대중적인 음악을 구사하는 밴드는 아니지만 최근 뉴욕 씬에 대한 주류 대중음악계의 관심이 고조되어 있고 댄스 비트를 결합한 네오 포스트-펑크(neo post-punk) 스타일이 유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실험주의에 매몰된 골수 인디 록으로 규정하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을 확인하듯 [Echoes]는 일단 전작 [Mirror]에 비해 음향 실험이 대폭 축소되고 보다 친숙한 사운드로 변모되어 있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가 메이저 배급사를 의식한 결과라 해도 실망스럽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대중성 강화를 위해 음악적 깊이를 희생하지 않았고 전문적인 프로듀싱의 지원을 통해 품질 관리(quality control)에도 성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팀 골즈워디(Tim Goldsworthy)와 제임스 머피(James Murphy)의 듀오로 이루어진 프로듀서 그룹 DFA(Death From Above)는 제작 및 엔지니어링뿐만 아니라 작곡에도 일부 참여하는 등 앨범의 높은 완성도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이들은 엘씨디 사운드시스템(LCD Soundsystem), 엉클(U.N.K.L.E.) 등 주로 일렉트로니카 진영의 밴드들을 도와왔으며 최근에는 라디오 포(Radio 4)와 작업하면서 뉴욕 씬과 인연을 맺은 인물들로서 [Echoes]를 통해 포스트 펑크의 원형질에 카랑카랑하게 날선 기타 톤과 덥(dub) 비트 등 뉴욕 인디 씬의 최신 유행 스타일을 감각적으로 조합하고 있다.

랩처는 전체적으로 같은 뉴욕 출신인 라디오 포와 다소 유사한 네오 포스트-펑크 스타일을 구사하고 있다. 즉 훵키하고 드라이한 기타 스크래치, 덥 비트를 뿜어내는 베이스 라인, 디스코 리듬 등은 댄서블하기 그지없다. 앨범의 포문을 여는 “Olio”는 뉴욕 인디 록 씬을 소개한 편집음반 [Yes New York](2003)에 수록되어 꽤 알려진 싱글 넘버이다. 또 중반부에 포진된 “The Coming of Spring”, “House of Jealous Lovers”, “Echoes”의 느낌은 갱 오브 포(Gang Of Four)의 광기 어린 그루브와 퍼블릭 이미지 리미티드(Public Image Ltd.)의 신경증적인 기타 스크래치를 섞어놓은 듯하다. 특히, “House of Jealous Lovers”는 빠르고 날카로운 기타 스크래치와 다채로운 퍼커션 비트가 만들어내는 쾌활한 댄스 무드에 큐어(The Cure)의 로버트 스미쓰(Robert Smith)의 비음을 연상케 하는 루크 제너(Luke Jenner)의 울부짖는 듯한 보컬이 더해져 자극적인 느낌을 배가시키고 있다.

앨범은 흐드러진 춤판으로만 일관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느린 브레이크 비트를 타고 나직이 노래하는 발라드 “Open Up Your Heart”는 잠깐의 휴식을 선사하고 있으며, 마지막 곡 “Infatuation”과 같은 곡은 드론(drone) 노이즈와 우울한 보컬을 통해 한창 들썩거린 분위기를 이완시키며 차분히 대미를 장식하고 있다.

‘랩처’는 기쁨의 극한에서 느끼게 되는 황홀경을 뜻이지만 이들의 음악은 달콤한 환희와는 거리가 있다. 오히려 깊은 바다로의 잠수를 통해 느끼게 되는 질소 중독의 상태(nitrogen narcosis)에서 무정형으로 몸을 뒤트는 듯한 광희(狂喜)의 댄스를 유도한다고 할까. 대도시 백인 청년의 감성으로 윤색된 이들의 댄서블한 음악을 두고 ‘디스코-스트록스(disco-Strokes)’라는 ‘산소’ 같은 칭호를 붙이는 이들도 있지만, 질소로 가득한 캡슐에 스트록스를 가두고 퍼블릭 이미지 리미티드만 연신 틀어준다면 모를까 아무래도 스트록스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음습한 쾌락과 자극으로 넘실대는 로큰롤이지 싶다. 그리고 올해 뉴욕 씬이 토해 낸 가장 독특한 생산물이라는 말도 이런 중독적인 노이즈에 흠뻑 취한 뒤에는 사족에 불과하다. 20031026 | 장육 jyook@hitel.net

8/10

수록곡
1. Olio
2. Heaven
3. Open Up Your Heart
4. I Need Your Love
5. The Coming of Spring
6. House of Jealous Lovers
7. Echoes
8. Killing
9. Sister Savior
10. Love Is All
11. Infatuation

관련 글
Various Artists Yes [New York] 리뷰 – vol.5/no.17 [20030901]

관련 사이트
The Rapture 공식 사이트
http://www.therapturemusic.com/index.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