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리어스 아티스트 – Drop the Debt! – 굿인터내셔날, 2003 제 3세계 부채 탕감을 외치는 절박한 목소리들 제3세계 부채 문제는 심각하다. 얼마나 심각하냐고 묻는다면 ‘빚진 돈의 이자를 갚기 위해 다시 돈을 빌려야 하는 악순환이 오늘날 제3세계 부채 문제의 심각성’이라고 간단히 답해야 할 것이다. 해결책은 선진국 정부의 경제원조 그렇지만 요즘 세계정세로 봐서는 그걸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 전쟁에는 막대한 돈을 쏟아부어도 이런 문제에는 자린고비 뺨치는 게 요즘 세상 물정이니까…. 정부가 나서지 않으면 민간이라도 나설 수밖에 없다. 그 민간 가운데 ‘음악인’도 포함되는데 대표적인 인물은 록 밴드 U2의 리더 보노(Bono)다. 그는 ‘Drop the Debt’(빚을 내던져라)라는 구호로 제3세계의 부채탕감을 추진하는 ‘주빌리 2000’이라는 운동에 앞장서왔으며, ‘DATA’라는 이름의 연구소를 설립해 실질적 대안을 연구하고 있다. DATA란 ‘DEBT(부채), AIDS(후천성면역결핍증), TRADE(무역)’의 약자다. 그 과정에서 그는 지난해 5월에는 백악관에 압력을 넣어 폴 오닐(67) 미국 재무장관을 대동하고 아프리카를 방문했다. “해외원조의 성공사례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자”는 것이 보노의 취지였다. 서방의 팝스타가 제3세계의 빈곤에 대한 캠페인을 전개하는 것이 이례적인 일은 아니다. 그런데 이런 운동에 대해서도 뜨악한 시선이 없지는 않다. 대표적 인물로 톰 모렐로(Tom Morello : 지금은 해체된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의 기타리스트)는 “내 생각에는 백악관을 설득해서 변화를 이끌어내는 건 불가능하다. 깡통을 들고 백악관 뒷문에 서서 ‘실례지만 평화와 정의를 좀 나누어주시겠어요’라고 말하는 건 전혀 통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면서 보노 같은 팝스타의 운동 방식에 이의를 제기한 일도 있다. ‘언론 플레이’만 화려하지 실질적 성과는 별로 없다는 것이다. 주빌리 2000 운동이 ‘제3세계 부채’의 심각성을 여론에 환기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선진국 명사들의 로비’만 가지고는 한계가 명확하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제3세계 음악인’이 나설 차례인가. 다행히도 그 단초를 마련하는 성과물이 나왔다. <빚을 내던져라>라는 제목의 음반이 그것이다. 이 음반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콩고, 짐바브웨, 세네갈, 아이보리코스트, 콜롬비아, 부르키나파소, 카부베르드, 브라질, 베네수엘라,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고 한국(!)의 아티스트들이 참여해 새롭게 녹음한 17개의 트랙들이 수록돼 있다. 이런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한 이는 파리에 소재한 월드 뮤직 전문 레이블 루스아프리카의 프랑수아 모제르라는 인물이다. 그는 프로젝트를 위해 ‘Say It Loud’라는 기구를 설립하고, 각국의 레이블에 의사를 타진하고, 여러 비정부기구(NGO) 단체의 후원을 받아 이 프로젝트를 추진해 마침내 성공시켰다. 2002년 7월에 착수된 일이라고 하니 일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진 셈이다. ‘글로벌 문제에 대한 글로벌 솔루션’의 하나의 사례를 보여준다고 하겠다. 이 음반이 발매됨으로써 6월1일부터 3일로 프랑스의 에비앙 온천에서 개최될 G8(선진 8개국) 정상회담에서 제3세계의 부채를 탕감하라는 압력을 행사할 좋은 수단이 하나 탄생한 것이다. 한국의 아티스트가 두 트랙을 차지하게 된 것은 월드 뮤직 전문 레이블인 ‘굿인터내셔널’이 루스아프리카 레이블의 마수(?)에 걸려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은 문제는 이 음반에 담긴 음악이 음악적으로도 좋은가라는 점일 것이다. 즉, ‘의의’나 ‘취지’를 따져서 좋은 게 아니라 음악 자체로 듣기 좋은가라는 점이다. 일단 참가한 아티스트들의 면면을 보면 작품의 퀄리티가 보증된다. 카부 베르드의 세자리아 에보라(Cesaria Evora), 베네수엘라의 솔레다드 브라보(Soledad Bravo), 짐바브웨의 올리베르 음투쿠지(Oliver Mtukudzi), 브라질의 시쿠 세자르(Chico Cesar)와 레니니(Lenine) 등 ‘월드 스타’ 반열에 오른 인물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음악 스타일은 토속 음악의 향취가 강하게 남아 있는 음악부터 첨단 전자음향이 삽입된 음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렇지만 ‘부채 탕감’이라는 뚜렷한 메시지를 담고 있어서인지 이런 다양함이 산만함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몇 가지 예를 든다면 콩고의 로쿠아 칸자(Lokua Kanza)는 “아이들의 이름으로 부채 무효화를 요구해야 해”라는 직언을 퍼붓고, 올리베르 음투쿠지(Oliver Mtukudzi)는 “나라는 땅이야, 농부는 사람이지”라면서 민중의 삶을 담담히 묘사하고, 레니니는 “돈이라는 말이 왜 다른 단어들 속으로 사라졌는지를. 한많은 달러여”라는 날카로운 사회 비판을 선보인다. 그래서 양병집과 한대수라는 비운의 거물급 아티스트들이 여기에 동참했다. 양병집은 김현보와 함께 <반쪽이>를 녹음했고, 한대수는 어어부 프로젝트와 함께 <구멍난 그림자>를 녹음했다. 양병집/김현보의 트랙은 가야금과 합창이 어우러져 독특하게 편곡되어 있고, 한대수/어어부 프로젝트의 트랙은 퍼커션과 클라리넷이 예의 그로테스크한 무드를 자아낸다. 다른 나라의 아티스트들처럼 메시지가 직접적이지는 않고 풍자적이고 우회적인데 이건 어쩌면 한국의 음악적 전통일 것이다. 어쨌든 만약 ‘음악 산업 진흥책’ 같은 게 있다면 ‘애먼’ 데 돈 쓰지 말고 이런 음악을 육성하는데 더 많은 신경을 기울여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음악들이다. 또한 메시지를 담은 곡이라고 해서 음악을 ‘선전과 선동’에 희생하지도 않는다. 각각의 트랙들은 각국의 음악적 전통이 서양의 ‘모던 사운드’와 어떻게 교류하면서 발전해왔는지를 보여준다. 정도와 양상은 다르지만 이른바 ‘월드 뮤직’의 현 단계를 잘 보여주는 사운드들이다. 물론 월드 뮤직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생경한 음악들이겠지만 음반을 발매하는 취지에 동감한다면 생경한 소리가 친숙하게 다가오는 뜻밖의 경험을 할 것이다. 그러니 음반 표지 뒤에 적혀 있는 “이 음반의 판매수익 10%는 제3세계 부채 무효화 운동에 뜻을 함께 하는 세계 각국의 NGO 단체에게 전달됩니다”는 문구를 보고 ‘의식도 고양하고 돈도 모은다’는 식으로 생각할 필요는 전혀 없을 것 같다. 옥의 티를 하나만 지적하자. 참여한 아티스트들이 특정한 문화권에 편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단체에서 조직한 것인 만큼 불가피한 면이 없지 않지만 프랑스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사용권 나라들의 아티스트들 중심이라는 면이 없지 않다. 이건 뭐 영어사용권 나라들의 음악인들이 조금 더 분발하면 될 일이다. 그러기에는 이들이 복잡한 계약관계에 묶여 있겠지만. 20031020 | 신현준 homey@orgio.net 8/10 * 이 글은 한겨레 21에 게재되었습니다. 수록곡 1. The Third World Cries Everyday – Africa South (남아프리카 공화국) 2. 반쪽이 – 양병집, 김현보 (한국) 3. 구멍난 그림자 – 한대수와 어어부 프로젝트 (한국) 4. Bana – Faya Tess & Lokua Kanza (콩고) 5. Murimi Munhu – Oliver Mtukudzi (짐바브웨) 6. Boor-yi – El Hadj N’Diaye (세네갈) 7. Quem Pode – Teofilo Chantre & Cesaria Evora (카부베르드) 8. Rosebud – Lenine (브라질) 9. Baba – Tiken Jah Fakoly (아이보리 코스트) & Tribo de Jah (브라질) 10. Il Faut Payer(Devo e nao nego) – Chico Cesar (브라질) & the Fabulous Trobadors (프랑스) 11. Cosas Pa’ pensar – Toto la Momposina (콜롬비아) 12. Cadeau Empoisonne – Zedess (부르키나파소) 13. Assez – Meiway (아이보리 코스트) 14. Osca Sankara – Massilia Sound System (프랑스) 15. Argent Trop Cher – Tarace Boulba (프랑스) & Ablaye Mbaye (세네갈) 16. Hawa – AGRICANTUS (이태리) 17. Gracias a La Vida – Soledad Bravo(베네수엘라) 관련 글 보헤미안 혹은 문화적 경계인의 두 개의 초상 – vol.5/no.20 [20031016] 멀고 먼 길을 걸어온 나그네의 회고담: 한대수와의 인터뷰(1) – vol.5/no.20 [20031016] 멀고 먼 길을 걸어온 나그네의 회고담: 한대수와의 인터뷰(2) – vol.5/no.20 [20031016] [다큐멘터리 한대수]: 한반도에 불시착한 외계인의 반대기(半代記)에 대한 감상문 – vol.4/no.21 [20021101] 한대수 1집 [멀고 먼 길] 리뷰 – vol.4/no.20 [20021016] 한대수 2집 [고무신] 리뷰 – vol.4/no.23 [20021201] 한대수 3집 [무한대] 리뷰 – vol.5/no.20 [20031016] 한대수 [Masterpiece] 리뷰 – vol.2/no.12 [20000616] 한대수 4집 [기억상실] 리뷰 – vol.5/no.20 [20031016] 한대수 5집 [천사들의 담화] 리뷰 – vol.5/no.20 [20031016] 한대수 6집 [1975 고무신 ~ 1997 후쿠오카 라이브] 리뷰 – vol.5/no.20 [20031016] 한대수 7집 [이성의 시대, 반역의 시대] 리뷰 – vol.5/no.20 [20031016] 한대수 8집 [Eternal Sorrow] 리뷰 – vol.2/no.24 [20001216] 한대수 9집 [고민(Source Of Trouble)] 리뷰 – vol.4/no.22 [20021116] 불운의 저항가수, 저주받은 걸작들의 제작자의 꿈: 양병집과의 인터뷰 – vol.5/no.20 [20031016] 양병집 1집 [넋두리] 리뷰 – vol.4/no.24 [20021216] 양병집 2집 [아침이 올때까지] 리뷰 – vol.5/no.20 [20031016] 양병집 3집 [넋두리 (II)] 리뷰 – vol.5/no.20 [20031016] 양병집 4집 [부르고 싶었던 노래들] 리뷰 – vol.5/no.20 [20031016] 양병집 5집 [긴 세월이 지나고] 리뷰 – vol.5/no.20 [20031016] 양병집 6집 [양병집 1993: 그대 떠난 빈자리] 리뷰 – vol.5/no.20 [20031016] 손지연 1집 [실화] 리뷰 – vol.5/no.20 [20031016] 관련 사이트 한대수 공식 사이트 http://hahndaesoo.co.kr [Drop the Dept] 프로젝트 사이트 http://goodco.kpopdb.com/focus/focus_detail_03.a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