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대수 – 무한대 – 신세계레코드(SIS 890294), 19890505 방랑시인의 넋두리 한 평론가가 이 음반을 두고 “우리는 한대수를 두 번 죽였다”고 평한 적이 있는데, 나 역시 이제는 그의 평에 동의한다. 10년이 훌쩍 넘는 공백 뒤에 발표된 이 앨범에서 한대수는 자신의 작곡 능력이 전혀 녹슬지 않았음을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일렉트릭 사운드를 개척했기 때문이다. ‘한대수의 록 음악’을 위해 동원된 인물은 가히 드림팀이다. 한편으로는 이병우(기타), 송홍섭(베이스), 김효국, 황수권(이상 키보드), 배수연(드럼) 같이 당시 자리를 굳히고 있던 세션 그룹이, 다른 한편으로는 손무현(기타: 외인부대 출신), 김영진(베이스: 카리스마 출신), 김민기(드럼: 시나위 출신) 등 향후 이름을 날릴 연주인들이 한대수와 협연하고 있다. 한대수의 오랜 팬이라면 우선 “하루 아침”과 “고무신”에 주목할 것이다. 1975년 두 번째 정규 앨범 [고무신]에 이미 수록되었거나 혹은 수록될 예정이었던 곡들이다. 그렇지만 그때에 비해 곡의 해석은 많이 다르다. 특히 “하루 아침”에서 어쿠스틱 기타의 대선율과 “고무신”에서의 훵키한 기타가 주도하는 리듬은 뛰어나다. 단지 능숙하기 때문에 뛰어난 것이 아니라 곡과의 앙상블을 이루어 낸다는 점에서 뛰어나다. 이제 막 세션계에 입문하려는 단계였기 때문인지 이들의 연주는 ‘닳아빠진 세션맨의 연주’와는 거리가 멀다. “하루 아침 일어나 / 기분이 이상해서 / 시간은 11시 반 / 아 피곤하구나”라는 독백을 비롯한 가사는 오래 전에 만들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 음반이 발표된 1980년대 말의 시점, 나아가 지금까지도 보편적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물론 특정한 생활방식을 가진 사람들에게 국한된 것이겠지만. 두 곡이 ‘기성곡’이라는 점에 불만스럽다면 “또 가야지”나 “‘Till That Day”는 고행의 가시밭길을 가는 예술가의 ‘멀고 먼 길’을 다시 한번 들려준다. 나아가 전혀 다른 작곡 스타일도 선보이고 있다. 기타 하모닉스로 시작하여 느릿느릿 처절하게 흐느끼는 한대수의 목소리가 인상적인 “If You Want Me to”와 휘감아도는 기타 리프가 한대수의 걸쭉한 샤우팅과 대선율을 이루는 “Widow’s Theme”은 한 대수의 음악이 ‘포크’뿐만 아니라 ‘블루스’에도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럴 경우 비유가 예의가 아니겠지만 밥 딜런(Bob Dylan)이 1970년대에 발표한 고전을 듣는 기분을 안겨 준다. 슬픔을 머금은 방랑자의 처연한 정서. 문제는 음반의 타이틀곡인 “나 혼자”와 “One Day”(두 곡은 같은 곡이다)가 그리 뛰어난 곡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랫 동안 사랑했던 사람과의 이별의 쓰라린 감정을 담은 곡이지만 보편적으로 공감하기에는 제한된 주제인 데다가 한대수 특유의 자유분방한 멜로디가 잘 살아있지 못해서 ‘타이틀곡’으로는 그리 적절한 선택이 아니었다. 차라리 새로운 작곡 스타일은 한대수식 시대 비판인 “마지막 꿈”에서 잘 발견된다. 중간에 “생존경쟁 나의 투쟁 인공위성 만리장성 금은보석 썩은 비석”처럼 각운을 살린 가사를 빠른 입 놀림으로 내뱉은 보컬은 한대수가 방랑시인이라는 점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김삿갓 이래 최고의 방랑시인. 그렇지만 이 음반은 대중적 반향을 불러 일으키지 못했다. 그건 다분히 1980년대 말이라는 시대적 분위기 탓일 것이다. 1960년대 말 통기타 포크 씬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던 것과는 달리 1980년대 말에는 그가 어우러질 씬이 적당치 않았다. 따지고 보면 한대수는 언제나 ‘나 혼자’이고 ‘경계인(!)’이었던 셈이다. 앨범의 앞 면의 수록곡은 한국어 제목으로, 뒷 면 수록곡은 영어 제목으로 적힌 것이 상징적이다. 물론 이런 형식적인 면 보다는 마지막 트랙 “무한대”에서 구슬픈 기타 라인과 함께 마치 곡(哭)을 하는 듯한 그의 ‘너무나도 한국적인’ 창이 어우러진 소리가 인간 한대수의 면모를 더 잘 보여줄 것이다. “이야이 이야 이야이”. 20031020 |신현준 homey@orgio.net P.S. 이 앨범은 2000년 4월 [멀고 먼 길]과 더불어 [Masterpiece](신세계, YMCD-001)라는 이름으로 2CD 형태로 재발매되었다. 재발매 CD는 수록곡의 배치도 다르고 네 개의 보너스 트랙이 수록되어 있다. 수록곡(LP) Side A 1. 나 혼자 2. 하루아침 3. 또 가야지 4. 마지막 꿈 5. 고무신 Side B 1. One Day 2. If You Want Me To 3. ‘Till That Day 4. Widow’s Theme 5. Infinity 수록곡(재발매 CD) 1 . 하루 아침 2 . One Day 3 . 마지막 꿈40 4 . 나 혼자 5 . 또 가야지 6 . ‘Till That Day 7 . 과부타령 8 . If You Want Me To 9 . 고무신 10 . 무한대 11 . No Religion (demo version) 12 . Spare Parts (demo version) 13 . Aids Song (demo version) 14 . 희망가 (revised version) 관련 글 보헤미안 혹은 문화적 경계인의 두 개의 초상 – vol.5/no.20 [20031016] 멀고 먼 길을 걸어온 나그네의 회고담: 한대수와의 인터뷰(1) – vol.5/no.20 [20031016] 멀고 먼 길을 걸어온 나그네의 회고담: 한대수와의 인터뷰(2) – vol.5/no.20 [20031016] [다큐멘터리 한대수]: 한반도에 불시착한 외계인의 반대기(半代記)에 대한 감상문 – vol.4/no.21 [20021101] 한대수 1집 [멀고 먼 길] 리뷰 – vol.4/no.20 [20021016] 한대수 2집 [고무신] 리뷰 – vol.4/no.23 [20021201] 한대수 [Masterpiece] 리뷰 – vol.2/no.12 [20000616] 한대수 4집 [기억상실] 리뷰 – vol.5/no.20 [20031016] 한대수 5집 [천사들의 담화] 리뷰 – vol.5/no.20 [20031016] 한대수 6집 [1975 고무신 ~ 1997 후쿠오카 라이브] 리뷰 – vol.5/no.20 [20031016] 한대수 7집 [이성의 시대, 반역의 시대] 리뷰 – vol.5/no.20 [20031016] 한대수 8집 [Eternal Sorrow] 리뷰 – vol.2/no.24 [20001216] 한대수 9집 [고민(Source Of Trouble)] 리뷰 – vol.4/no.22 [20021116] 배리어스 아티스트 [Drop the Debt] 리뷰 – vol.5/no.20 [20031016] 관련 사이트 한대수 공식 사이트 http://hahndaes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