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1024041554-0520krock_handaesoo4th

한대수 – 천사들의 담화 – 성음(SR 3003), 1992

 

 

뉴욕 천사의 시

한대수의 ‘중기작’들을 편의적이고 도식적으로 분류할 때, 3집 앨범 [무한대]가 ‘록’, 4집 앨범 [기억상실]이 ‘재즈’를 도입한 작품이라면 5집 앨범은 미니멀 음악을 도입한 작품이다. 앨범에 수록된 음악을 주도해 나가는 것은 것은 이우창이 연주하는 피아노의 불규칙하고 무작위적인 타건과 한 대수가 ‘아무렇게나 치는’ 어쿠스틱 기타의 스트러밍이다. 몇몇 곡, 특히 앨범 뒷면에 배치된 “우주(U-ni-verse)”와 “움직이는 방(Moving Room)”의 경우 색서폰과 트럼펫을 동원하여 재즈풍의 연주를 들려주고는 있지만, 대부분의 트랙은 한 대수의 응접실에서 이우창의 피아노 연주와 함께 녹음된 것들이다. 앨범 속지에 수록된 한 장의 사진에서 작업 방식을 상상해 볼 수 있다.

본인의 변을 말하는 것이 음반 감상에 도움이 되는 경우는 드물지만 이 음반은 “하늘에서 천사들이 지구를 보며 얘기하는 것이 주제”다. 그러니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를 보고 ‘지루하고 졸리다’고 생각한 사람은 이 음반 역시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게다가 영화처럼 줄거리의 얼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음향의 진행만 있을 뿐이니 지루함과 졸림이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개별 트랙에 대한 세세한 해설은 불필요하다’는 평이 단지 ‘귀찮기 때문’은 아니다. 솔직히 좀 귀찮은 면도 없지는 않다. 그렇지만 개별 트랙에 주목해 듣는 것은 이 음반의 의도를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보다는 그냥 플레이어에 CD를 걸어놓고 다른 일을 하는 편이 낫다. 말하자면 이 앨범은 ‘앰비언트 음악’이다(‘이런 음악이 무슨 앰비언트 음악이냐’라는 항의에 대한 답변은 사절한다).

그럴 때 어느 순간 이 음반의 음악이 ‘천사들의 담화’로 들려오는 순간이 있을지 모른다. 물론 바쁘고 정신없이 살아가는 사람에게 그럴 기회가 언제 찾아올지는 알 수 없지만. 한대수가 이런저런 장르를 도입하는 것이 절박한 필요에 따른 것인지 아니면 딜레탕트적인 선택인지에 대한 판단은 그때 가서 내려도 늦지 않을 것이다.

그 전이라도 가끔씩 무료해질 때마다 “오후의 엽차”를 들어 보면 인생과 우주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볼 수 있다. 어쿠스틱 기타로만 반주하면서 한대수가 부르는 “목포의 눈물”과 원곡이 무엇인지 모를 이우창의 피아노 솔로인 “행복의 나라로”를 들으면서 ‘가끔씩 모든 것이 지겹게 느껴질 때는 난폭하게 파괴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라는 생각도 해 보고…. 20031020 | 신현준 homey@orgio.net

P.S. 이 앨범은 2000년 6월 [기억상실]과 더불어 2CD(도레미, DRMCD 1681)로 재발매되었다.

수록곡
Side A
1. 천사들의 담화
2. 편지
3. 실수
4. 산노래
5. 담배 연기
6. 오후의 옆차
7. 학교종
Side B
1. 공포
2. 침묵
3. 우주(U-ni-verse)
4. 움직이는 방(Moving Room)
5. 남자 여자(Man Woman)
6. 목포의 눈물
7. 행복의 나라

관련 글
보헤미안 혹은 문화적 경계인의 두 개의 초상 – vol.5/no.20 [20031016]

멀고 먼 길을 걸어온 나그네의 회고담: 한대수와의 인터뷰(1) – vol.5/no.20 [20031016]
멀고 먼 길을 걸어온 나그네의 회고담: 한대수와의 인터뷰(2) – vol.5/no.20 [20031016]
[다큐멘터리 한대수]: 한반도에 불시착한 외계인의 반대기(半代記)에 대한 감상문 – vol.4/no.21 [20021101]

한대수 1집 [멀고 먼 길] 리뷰 – vol.4/no.20 [20021016]
한대수 2집 [고무신] 리뷰 – vol.4/no.23 [20021201]
한대수 3집 [무한대] 리뷰 – vol.5/no.20 [20031016]
한대수 [Masterpiece] 리뷰 – vol.2/no.12 [20000616]
한대수 4집 [기억상실] 리뷰 – vol.5/no.20 [20031016]
한대수 6집 [1975 고무신 ~ 1997 후쿠오카 라이브] 리뷰 – vol.5/no.20 [20031016]
한대수 7집 [이성의 시대, 반역의 시대] 리뷰 – vol.5/no.20 [20031016]
한대수 8집 [Eternal Sorrow] 리뷰 – vol.2/no.24 [20001216]
한대수 9집 [고민(Source Of Trouble)] 리뷰 – vol.4/no.22 [20021116]

배리어스 아티스트 [Drop the Debt] 리뷰 – vol.5/no.20 [20031016]

관련 사이트
한대수 공식 사이트
http://hahndaes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