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른 | Leisure Love | 파고뮤직, 2011 레저 러브, 요컨대 삶의 양가적 에너지 2008년 발매된 흐른의 1집은 잘 다듬어진 신스 팝 앨범이었다. 신서사이저는 각 트랙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전기기타와 드럼 프로그래밍은 댄서블한 그루브를 만들었다. “누가 내 빵을 뜯었나”와 “You Feel Confused As I Do”, 그리고 “Global Citizen”을 지배하는 일렉트로니카는 21세기의 80년대 ‘신스 팝 리바이벌’을 조금 일찍 반영하기도 했다. 지금은 일종의 ‘대세’가 되었지만 3년 전의 인디 씬에서, 그것도 솔로 싱어송라이터가 뉴웨이브 사운드를 만드는 것은 신선함 그 자체였다. 그리고 2011년, 흐른의 2집은 전자음과 노이즈에 대한 심화학습의 결과물처럼 들린다. 전작의 사운드가 공간을 가로지르는 인상이었다면 이 앨범은 소리로 공간을 넓히는 인상을 남긴다. 아날로그 신서사이저의 복고적인 톤이 입체감을 선사하는 “영원히 이 밤처럼”의 그루브를 지나면 둥둥거리는 베이스 라인 너머로 솟구치는 전기기타와 마주친다. 성실하게 소리를 쌓다가 마침내 하나로 뒤섞이는 구조는 톤 다운된 보컬과 대조를 이루며 독특한 감상을 자아내기도 한다. 낯설고 무뚝뚝한 첫 인상의 이성을 만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문득 그(녀)가 떠오르고 궁금해져 예의상 주고받은 전화번호를 더듬는 것처럼, 댄서블한 멜로디 라인은 중반 이후부터 부각된다. 80년대에 유행하던 유러피언 신스 팝의 자취를 물씬 담은 “늦은 장마”와 기타의 독특한 울림으로 시작되는 미니멀한 불어 노래 “Ta Chose(따 쇼즈)” 그리고 구식 가요의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다가 그로테스크한 노이즈로 마무리하는 “찬란한 존재” 등은 앨범의 한쪽 인상을 정의한다. 다른 면은 “더블플레이”와 “레저 러브”, “아무도 모르게 (세상이 다 알게)”, 그리고 “지루해도 돼”의 댄서블한 비트가 만드는 세계다. 전작의 “Global Citizen”과 “누가 내 빵을 뜯었나”의 후속곡처럼 들리는 이 노래들은 신서사이저를 배경으로 전기기타 톤이 겹겹이 칠해진 풍경화다. 특히 하우스와 트랜스의 경계를 오가는 “레저 러브”가 형성하는 영리한 공간감과 감수성은 이어지는 “아무도 모르게(세상이 다 알게)”와 “지루해도 돼”의 미니멀한 그루브와 연작처럼 이어진다. 앨범을 틈틈이 채운 리버브와 그루브, 신서사이저와 전기기타가 만드는 입체적인 공간감이 귀를 유혹하고 몰입하게 만든다. 이 앨범이 잘 다듬어진 일렉트로니카 사운드라는 인상을 남기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앨범의 프로듀싱을 맡은 전자양의 익숙한 기타 톤과 리버브를 통한 공간감도 곳곳에서 돋보이는데, 이런 사운드 효과는 앨범의 완성도에 그의 역할이 컸으리라 짐작하는 근거기도 하다. 또 하나, 이 앨범을 관통하는 정서는 ‘레저 러브’라는 상반된 이미지의 충돌이다. ‘레저’는 말 그대로 중산층의 관습화된 여가다. 반면 ‘러브’란 생을 통틀어 전력을 다해야 한다고 여겨지는 이데올로기다. 취미활동으로 수렴되는, 요컨대 ‘잉여’의 시간이 ‘사랑’이라는 삶의 지상과제와 부딪치는 충돌은 냉정한 일렉트로니카 사운드와 성찰적인 노랫말과 맞물리며 일종의 감각적, 도덕적 충격을 선사한다. “레저 러브”를 정의하는 것은 이런 삶의 양면적인,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에너지다. 여기에는 “영원히 이 밤처럼”에서 순간의 사랑이 영원하길 바라는 행복한 희망도 있고 사랑마저 힘들 필요 없다는 “레저 러브”의 선언도 있다. 유기동물의 비극을 인간의 언어로 번역하는 “찬란한 존재”의 섬뜩한 순간도, 텔레비전 예능 쇼의 역할놀이가 잠식한 일상을 부정하고 극복하는 “지루해도 돼”의 자기긍정도 있다. [레저 러브]는 흐른이 물적, 경험적 토대를 창작의 기반으로 삼는 동시에 사운드가 구성하는 효과도 놓치지 않는 음악가라는 사실을 영리하게 드러낸다. 그녀는 두 장의 정규앨범으로 자신이 가고 싶은 곳과 지켜야할 것을 찾아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 차우진 nar75@naver.com rating: 4/5 수록곡 01. 영원히 이 밤처럼 02. You Call Me What? 03. 늦은 장마 04. Ta Chose 05. 찬란한 존재 06. 더블플레이 07. 논쟁 08. 10 09. 레저 러브 10. 아무도 모르게(세상이 다 알게) 11. 지루해도 돼 12. The End Leave a Reply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CommentName* Email* Website 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