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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수 – 이성의 시대, 반역의 시대 – 감미레코드, 1999

 

 

광기의 시대

한대수의 7집 앨범으로 알려진 음반이지만 한국에서는 정식으로 배급되지 않은 음반이다. 따라서 음반 수록곡들 대부분이 영어 가사로 되어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은 아니다. 단지 가사 뿐만 아니라 사운드 자체가 ‘본토’의 느낌을 가지고 있다. 이 점도 프로듀서인 존 롤로(John Rollo)나 기타리스트 대리어스(Darius) 등이 미국의 음악산업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지위를 고려한다면 이상하지 않다.

‘정체된 한국 포크계에 던지는 한대수의 록’이라는 홍보 문구처럼 이 앨범에는 전반적으로 거칠고 무거운 록 사운드가 전개되고 있다. 한편 수록곡을 도식적으로 구분한다면 세 범주로 구분할 수 있다. “Go Crazy”, “Blood”, “Aids Song”, “Never a Chance” 등은 스트레이트하고 하드한 로큰롤(‘거라지 록’?)이고, “Run Baby Run”이나 “Spare Parts” 등은 블루스 록의 영향이 완연한 스타일이고, “No Religion”과 “To Oxanna”는 레논주의(Lennonism)에 입각한 송가들(사족이지만 각각 “Imagine”과 “To Yoko”를 연상시킨다)이다.

그렇지만 어떤 스타일도 그리 성공적인 결과를 맺지 못하고 있다. 1970~80년대 한대수가 발표한 음반을 유심히 들어본 사람이라면 한대수가 처음 만나는 음악인들과 우발적 돌연변이를 만들어내는데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렇지만 이 음반의 경우 이런 평가가 그대로 적용되기는 힘들 것 같다. 그건 한대수가 ‘자신과 잘 어울리지도 않는 록 음악을 하려고 했다’는 차원의 불평이 아니라 한대수의 곡이 ‘음악산업계에서 오랜 경력을 가진 연주인과 프로듀서와는 무언가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한대수의 과거의 작품에 참여하여 배어난 조화를 들려준 음악인들이 당시에는 신인이나 무명에 가까웠다는 점이 시사적이다.

수록곡 대부분에서 편곡과 연주는 클리셰(cliche)로 가득차 있다. 엉성한 편곡이나 못 하는 연주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한대수의 음악을 들을 때의 예의 그 ‘짠한’ 느낌을 받을 수 없다. 이런 지적이 ‘한대수의 전성기는 지나갔다’는 뜻은 아니다. 요는 한대수라는 이름에 기대하는 것이 ‘사운드의 완성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당시가 한대수의 과거의 작품들을 CD로 재발매하면서 그의 새로운 음악에 대한 기대가 높았던 시점임을 감안한다면 이 앨범을 통해 ‘돌아온 한대수’는 기대 못지 않은 아쉬움이 있는 게 사실이다.

따라서 한대수의 디스코그래피에서 하나의 흥미로운 국면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일관되고 정제된 작품 세계를 보기는 힘든 작품이다. 다행히도 후속작인 8집 [Eternal Sorrow](2000)과 9집 [고민(Source of Trouble](2002)를 통해 그가 보여준 나이를 잊은 듯한 개선의 작업이 있었으므로 이 앨범의 가치도 재조명할 기회가 다시 올 수 있을 것이다. 하긴 “미치게 해”라는 절규와 영어 랩으로 시작하는 음반에서 정상적인 감동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 것이다. 그 점에서 ‘이성의 시대’라는 앨범 제목은 반어법으로 보인다. 20031020 | 신현준 homey@orgio.net

P.S. “Blood”는 한국계 러시아인인 고(故) 빅토르 초이(Viktor Tsoi)의 “Gruppa Krovi(혈액형)”을 개사한 곡이다.

수록곡
1. Go Crazy
2. Blood
3. Digital World
4. Aids Song
5. Run Baby Run
6. To Oxana
7. Never A Chance
8. No Religion
9. Spare Parts
10. Light of Savi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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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한대수 공식 사이트
http://hahndaes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