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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병집 – 아침이 올 때까지 – 성음(SR 0212), 19800625

 

 

양병집의 넋두리 #1.5

본인이 그렇게 말한 적이 결코 없음에도 불구하고 양병집에 대해 세인들이 가지는 이미지는 ‘의식 있는 싱어송라이터(자작곡 가수)’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넋두리](1974)를 유심히 들어본 사람이라면 여기 실린 곡들 대부분이 자작곡이 아니라 번안곡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그는 ‘작곡’에 그다지 능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본인 스스로 ‘나는 모짜르트가 아니라 살리에르’라고 밝힌 것은 지나친 겸손이겠지만 세간의 오해를 불식할 수는 있는 발언이다.

하지만 이는 역으로 말하면 그가 ‘작사’에는 탁월한 문학가라는 것을 말해 준다. [넋두리]에서 ‘외래’ 곡에 한국어 가사를 접합시킨 탁월한 능력은 6년의 공백 끝에 발표된 이 앨범에도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캣 스티븐스(Cat Stevens)의 “Sad Lisa”를 번안한 “슬픈 사랑”, 그리고 밥 딜런의 “One More Cup of Coffee”를 번안한 “떠나지 말아요”, 미국 고전 민요인 “Lily of the West”를 번안한 “꿈 속의 여인” 등이 이런 경우에 속한다. “떠나지 말아요”의 경우 무언가 허전하고 아쉬운 구석이 있기는 하지만, 당시 한국인으로서는 엔간해서 만들어 내기 힘든 멜로디가 한국어 가사와 결합되는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곡들이다.

그렇지만 6년만의 신작인 이 앨범의 구상은 ‘좋은 번안곡’에 국한되지 않는다. 달리 말해 [넋두리]에서 못 다한 두 가지를 실현하려는 그의 의지를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자작곡의 비중을 높였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사운드를 개선했다는 점이다. 먼저 자작곡의 경우 타이틀곡 “아침이 올 때까지”와 “그대”처럼 그가 오랫 동안 섭렵해 온 (영미) 포크 록을 계승한 스타일이 인상적이다. 나아가 작곡 스타일에 변화를 준 곡도 존재한다. 된장 냄새가 풍기는 “바둑”이나 빠다 냄새가 나는 “인생 오십년”이 대표적이다. 앞의 곡은 정태춘을, 뒤의 곡은 다이어 스트레이츠(Dire Straits)의 작곡 스타일의 영향을 느낄 수 있는데 선후배,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새로운 경향을 흡수하는 그의 의지가 엿보이는 곡이다.

한편 [넋두리]에서 잘 이루어지지 못한 세션 연주인과의 조율이다. 이때 이미 대중음악계로부터는 멀어져 있던 강근식이 편곡을 맡고 조원익(베이스), 이호준(키보드), 배수연(드럼)이 참여한 것은 동방의 빛이 다시 뭉친 느낌을 주기 충분하다. 면면을 보면 연주인들은 [넋두리] 때와 거의 동일하지만 이들이 구사하는 사운드는 [넋두리] 때와 달리 양병집이 작곡(혹은 편곡)한 멜로디와 적절히 조화를 이룬다. 특히 유지연의 정갈한 어쿠스틱 기타는 [넋두리]에서 강근식의 컨트리풍의 전기 기타에 비해 양병집의 목소리와 훨씬 잘 어우러진다(참고로 유지연은 양병집과 더불어 이른바 ‘신촌파’의 원조이자 정태춘의 데뷔 음반에서 편곡을 담당했고, 뒤에는 대성음반에서 솔로 음반을 발표하면서 김창완, 박동률 등과도 함께 작업한 인물이다).

따라서 이 앨범의 단점은 장점과 동일한 원천에서 나온다. 하나는 양병집이 자신만의 작곡 스타일을 온전하게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그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면 될 일이다. 그가 싱어송라이터가 아니라 ‘이야기꾼(storyteller)’이라는 역할을 가진 문자 그대로 ‘포크 가수’라는 점을 인식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다른 하나는 아직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다름 아니라 그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운드’의 문제다. 양병집의 투박하면서도 진솔한 메시지는 스튜디오에서 오래 단련된 세션맨의 능숙한 연주와는 왠지 잘 맞지 않는다. 아니 기능적으로 잘 맞더라도 어딘지 어색하다. 본인이 의도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제는 ‘싸구려 전자음향’으로 들리는 사운드로 리메이크한 “타복내”를 들으면 이런 생각이 더욱 짙어진다.

따지고 보니 이 앨범 수록곡 대부분의 메시지가 세상에 대한 외향적 발언이라기보다는 개인의 내면을 향한 독백이다. 즉, 그를 ‘저항 가수’로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메시지가 순화된 것으로 들릴 것이다. 그래서 이 음반은 양병집의 디스코그래피의 변증법을 보여준다. [넋두리]가 정(正)이라면 이 음반은 반(反)이다. 합(合)이 나오기 위해서는 또 만만치 않은 시간이 지나야 했다. 20031020 | 신현준 homey@orgio.net

수록곡 
Side A
1. 아침이 올 때까지
2. 사랑해 보자
3. 슬픈 사랑
4. 그대
5. 타복내
Side B
1. 바둑
2. 떠나지 말아요
3. 인생 오십년
4. 꿈속의 여인
5. 즐거운 주말 (건전가요) / 금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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