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병집 – 넋두리 (II) – 서라벌(SRB 0143), 19850130 후배들의 창작곡에 기댄 넋두리 ver 2.0 양병집의 세 번째 정규 앨범인 [넋두리 II]가 앞의 두 앨범들과 달리 그의 음악 후배들과의 새로운 만남(과 헤어짐) 속에서 제작되었다는 점이다. 이 앨범에 실린 후배들의 곡들이 ‘내가 좀 부르겠다’고 해서 강탈하다시피 한 것들이 아니라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음악 잘 하는 후배들을 발굴한 그의 노력의 자연스러운 소산이라는 점은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대체로 동의할 것이다. 후배들은 단지 곡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앨범의 제작 과정에도 뛰어들었다. 즉, 이 앨범은 일신한 인맥들 위에서 제대로 한번 제작한 작품이다. 본인이 직접 제작을 맡고 최성원과 조동익이 편곡을 맡았다는 점이 많은 것을 설명해 주고, 레코딩 세션에 참여한 이영재(전기 기타), 엄인호와 최성원(어쿠스틱 기타), 이원재와 이태열(베이스), 양영수(드럼) 등의 면면은 가히 언더그라운드의 드림팀이라고 할 만하다. 앨범은 밝은 분위기의 “오늘같은 날”(윤명환 곡)로 시작한다. 양병집의 노래는 어떤 곡에서보다 자유롭고 여유로우며, 그 뒤로는 등장하는 “이런 사람을 찾습니다”, “우리의 김씨”, “얘기”는 [넋두리]에 수록된 “서울하늘”이나 “서울하늘 II”에서 보여주었던 사회비판적 메시지와 민중(혹은 서민)의 삶에 대한 애정이 녹아 있다. 종종 도덕 교과서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넋두리 II]라는 앨범 제목과는 더 없이 어울리는 곡들이다. “이런 사람을 찾습니다”와 “얘기”가 정태춘이 만든 곡이라는 점은 양병집과 정태춘의 인연을 아는 사람에게는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다(사족이지만 “서울 하늘 II”([넋두리(1974) 수록. 원곡은 피트 시거(Pete Seeger)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역으로 정태춘에 대한 양병집의 영향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삼세판으로 녹음한 “타복내”도 이제까지 어떤 버전보다도 공동체적 분위기에서 정감 있게 재해석되어 있다. 한편 앨범 뒷 면은 앞 면의 외향적 발언과는 대조적으로 자기관조적이다. 2집(1980)에 수록된 “인생 오십년”을 재녹음한 “멀고 먼 내일”, 그리고 [우리노래전시회 1](1984)에 수록된 “이 세상 사람이”(조동익 곡)를 재녹음한 “이 세상 사람이”는 드럼과 키보드를 강조한 편곡으로 ‘록 음악’을 구사하고 싶은 양병집의 욕망을 너끈이 실현하고 있으며, 이어지는 “멀고 먼 내일”(박달연 곡)과 “자 이제 그대와”는 최성원의 어쿠스틱 기타가 수놓는 아름다운 소품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야심적인 앨범에 대한 반응도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왜 그랬을까. 그 이유에 대해 여기서 길게 논할 자리는 아닐 것이다. 결국 양병집은 이 음반을 발표한 뒤 얼마 지나지 않은 1986년 여름 오스트레일리아로 이민을 떠난다. 그렇다고 이 음반이 그의 음악 인생의 마지막은 아니었지만. 20031020 | 신현준 homey@orgio.net 수록곡 Side A 1. 오늘 같은 날 2. 이런 사람을 찾습니다 3. 우리의 김씨 4. 얘기 5. 타복내 Side B 1. 여름날 오후 2. 이세상 사람이 3. 멀고 먼 내일 4. 자 이제 그대와 5. 마주보는 눈길마다 (건전가요) 관련 글 보헤미안 혹은 문화적 경계인의 두 개의 초상 – vol.5/no.20 [20031016] 불운의 저항가수, 저주받은 걸작들의 제작자의 꿈: 양병집과의 인터뷰 – vol.5/no.20 [20031016] 양병집 1집 [넋두리] 리뷰 – vol.4/no.24 [20021216] 양병집 2집 [아침이 올때까지] 리뷰 – vol.5/no.20 [20031016] 양병집 4집 [부르고 싶었던 노래들] 리뷰 – vol.5/no.20 [20031016] 양병집 5집 [긴 세월이 지나고] 리뷰 – vol.5/no.20 [20031016] 양병집 6집 [양병집 1993: 그대 떠난 빈자리] 리뷰 – vol.5/no.20 [20031016] 손지연 1집 [실화] 리뷰 – vol.5/no.20 [20031016] 배리어스 아티스트 [Drop the Debt] 리뷰 – vol.5/no.20 [2003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