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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fus Wainwright – Rufus Wainwright – Dreamworks, 1998

 

 

옛 것의 창조적 계승

캐나다 출신의 명민한 싱어송라이터 러퍼스 웨인라이트(Rufus Wainwright)는 널리 알려졌듯 1970년대 포크 싱어로 활약한 부친 루던 웨인라이트 3세(Loudon Wainwright III)와 포크 듀오 출신의 케이트 맥개리글(Kate McGarrigle)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 뒤의 이야기는 이제 공공연한 사실이므로 재차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행운이랄까, 이 미남 게이 청년은 다른 뮤지션 2세들과는 달리 부모의 후광에 가리워지는 ‘재난’도 거의 겪지 않았다. 레논이나 딜런, 버클리 가의 자제들이 감내하는 선친과의 투쟁에 비하자면, 부모의 명성과 별개로 온전히 음악만으로 주목받은 러퍼스 웨인라이트가 행운아로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쏟아진 찬사와 호평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그의 음악 속에는 단아하고 기품있는 실내악과 휘황한 악기가 동원되는 챔버팝의 화려함, 그리고 부모에게 물려받은 신실한 포크의 기운이 절충적으로 어우러져 있다. 더하여 술취한 가운데 아스피린이라도 복용한 듯 나직하게 늘어지는 맹맹한 목소리와, 더없이 인상적인 천혜의 멜로디 감각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돌이켜보면 데뷔작 [Rufus Wainwright](1998)은 그런 그만의 장점을 가장 오롯이 반영한 음반이었다. 우선 사운드 측면. 음반은 일스(Eels)와 피오나 애플(Fiona Apple)의 프로듀서였던 존 브라이언(Jon Brion)의 섬세한 프로듀싱과, 랜디 뉴먼(Randy Newman)의 편곡자로 알려진 반 다익 팍스(Van Dyke Parks)가 매만진 오케스트레이션이 큰 줄기를 이룬다. 수록곡들은 왕왕 피아노와 잔잔한 오케스트레이션이 주를 이루거나(“Millbrook”, “Baby”) 따스한 질감의 기타 한 대와 스트링이 주도(“Barcelona”)하곤 한다. 이처럼 악기 구성은 대부분 단촐하고 소규모의 형태를 취하는데, 이런 형식은 러퍼스 웨인라이트의 멜로디와 보컬이 가진 흡인력을 더욱 부각되게 만든다.

주목할 것은, 음반에서 중추를 이루는 피아노라는 악기의 특성이다. 또렷한 음률로 객관적이고 일견 냉정하기까지한 피아노의 명징함은 러퍼스 웨인라이트의 상처받고 흐드러지는 음색과 묘한 호응을 이룬다.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감정의 메마른 줄기를 흔들어대는 목소리는, 피아노의 흔들림없는 명료함과 어울려 객관성과 보편성의 양태를 띄는 것이다. 그 조화는 “Foolish Love”에서 그렇듯 쉬 외부의 침입을 허용치 않을 듯한 품격으로 드러나기도 하며, 타건을 내리치듯 격정적인 “April Fools”에서처럼 과묵하고 진중한 형태로 펼쳐질 때도 있다. 또한 피아노는 플레이어의 감정은 옥죄는 대신 청자에게는 풍부한 심상을 연출해 보인다. 일순 불협화음이 출몰하는 “Baby”에서 듣는 이는 ‘미신적’인 감각과 맞닥뜨리게 될 것이며, 오버더빙되어 풍성하게 울려 퍼지는 “Beauty Mark”의 피아노 소리에게는 곡의 업템포 전개만큼이나 큰 폭의 감성적 고양을 느끼게 된다.

또한 음반 커버의 분위기에서도 느낄 수 있듯, 여기 있는 노래들에는 그림 형제의 동화와도 같은 음습하면서도 고전적인 미감이 넘쳐난다. 가령 두 번째 트랙의 “Danny Boy”는 그 유명세 만큼이나 들을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주는 곡이다. 여기서는 불길한 음색의 혼과 셋잇단음표로 가쁘게 이어지는 피아노를 이용, 숲 속을 장시간 홀로 걸을 때 느낄법한 묘한 불안을 표해내고 있다. 재지한 터치가 가미된 “In My Arms”는 음반의 가장 인상적인 곡일 것인데, 주조를 이루는 스페니시 기타와 여기 가세하는 (먼지 쌓인 샹송 음반에서 꺼내온 듯한) 마르다 웨인라이트(Martha Wainwright)의 배킹 보컬이 극적으로 어우러진다. 뿐만 아니라 차후 [Poses](2001)에서 더욱 강화되는 연극적인 느낌 또한 이 음반에서도 종종 찾아볼 수 있으며, 악곡과 노랫말에서 군데군데 드러나는 유머 감각 또한 궂지 않은 것이다. “Sally Ann”에서 요정처럼 지저귀는 배킹 보컬과 카나디안 브라스(Canadian Brass) 식의 혼 섹션, “Millbrook”의 날카롭게 깎인 스트링 인트로가 그 예이다.

이처럼 러퍼스 웨인라이트의 셀프타이틀 데뷔작은 과거 유산의 창조적인 계승 측면에서나, 음악 자체로서의 매력에 있어 최상의 결과물로 만들어졌다. 어느 시류와 경향에도 아첨하지 않는 개인적인 소리들이 담겨 있음에도, 시대와 세대를 가로지르는 절륜한 선율과 목소리는 변하지 않을 팝 음악의 보편성으로 청자를 사로잡는다. 비평적 성과도 나쁘지 않았다. 권위(!)와 명성(?)의 [롤링 스톤(Rolling Stone)]지 ‘Best New Artist’ 부문 수상을 비롯해, 여타 매체들에서 ‘올해의 앨범 Top 10’에 선정되는 등 1998년을 화려하게 수놓은 것이다. 또한 2001년에는 영화 [슈렉]을 비롯, [물랑 루즈]와 [I am Sam] 등에서 유니크한 커버 곡들을 선보이며, 자신의 음악적 뿌리를 넌지시 내비치기도 했다. 그러므로 이 남다른 남성의 청년 송라이터의 앞으로 활동에 기대를 거는 것은 당연한, 또한 안전한 선택이 될 것이다. 적어도 CD를 집어들고 나서 후회하는 일은 생기지 않을 뮤지션이라는 굳은 신뢰를 이 데뷔작을 통해 얻게 되었으니 말이다. 20030923 | 배성록 schmaltz99@empal.com

9/10

수록곡
1. Foolish Love
2. Danny Boy
3. April Fools
4. In My Arms
5. Millbrook
6. Baby
7. Beauty Mark
8. Barcelona
9. Matinee Idol
10. Damned Ladies
11. Sally Ann
12. Imaginary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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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Rufus Wainwright 공식 사이트
http://www.rufuswainwrigh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