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eanor McEvoy – Yola – Eleanor McEvoy, 2003 켈틱, 자기고백 그리고 중간자의 노래 욜라는 웩스포드(Wexford) 지방의 방언이다. 웩스포드는 아일랜드 섬의 남동부에 위치한 외진 곳이다. 자연적으로, 문화적으로 고립된 곳이다 보니 이곳에는 있어서 중세 영어와 켈틱어가 뒤섞인 고유의 방언이 남아 있다. 물론 지금은 소멸해 가고 있지만 몇몇 단어들에서 흔적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아일랜드의 대표적 싱어송라이터 엘리너 매케보이(1967~ )가 웩스포드 출신은 아니지만 그녀의 이번 음반은 여러 모로 욜라(Yola)와 비견될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사라져 가고 있으면서도 아직 남아 있다’는 의미다. 중간자적 의미라고나 할까. 이를 설명하기 이전에 일단 이 앨범이 그녀가 메이저 레이블을 떠나 자신의 레이블을 설립하고 만든 음반이라는 점을 기억해 두자. 엘리너 매케보이는 1992년에 발표한 “Only A Woman’s Heart”로 영국에서 ‘톱 텐 히트’를 기록한 바 있다. 그렇지만 그녀의 음악은 단지 대중음악은 아니다. 더블린의 트리니티 음대에서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공부하고 아일랜드의 국립교향악단에서 연주한 경력을 바탕으로 그녀가 작곡하고 직접 부르는 노래는 대중음악의 자유로운 표현과 클래식 음악의 절제된 품격을 동시에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뒤 그녀는 일렉트릭 악기들로 구성된 백 밴드를 대동하는 등 클래식 음악계와 결별하고 팝 음악계에 보다 깊숙이 발을 들여 놓았다. 어쿠스틱 사운드로 돌아온 이번 앨범은 팝 프로듀싱이 강했던 그녀의 이전 작품들에 비해 소박하다. 가끔씩 일렉트릭 베이스와 드럼 세트가 사용되기는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와 어쿠스틱 기타를 압도하는 경우는 없다. 심지어 “Seasoned Love”는 피아노만으로, “Isn’t It a Little Late?”는 드럼만으로 반주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런 소박함은 특유의 품격을 낳는다. 특히 그녀의 음악 동료인 브라이언 코너(Brian Connor)의 스타인웨이 피아노의 타건은 그다지 난이도가 높아 보이지 않은 연주에서도 제대로 피아노를 배운 사람만이 낼 수 있는 감각을 선보인다. 브라이언 코너가 클래식 음악계에서 훈련받은 사람이라는 정보를 굳이 알 필요는 없을 것이다. 또 하나는 품격이 있든 없든 대중음악(팝 음악)의 범주에 속하는 그녀의 노래에서 민속음악의 뿌리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은 아일랜드의 대중음악의 일반적 특징이기도 한데, ‘민요’와 ‘가요’ 사이에 만리장성이라도 놓인 듯한 한국과는 달리 아일랜드에서는 민요(‘포크’ 음악)와 가요(‘팝’ 음악) 사이의 거리가 그렇게 멀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점에서도 그녀는 중간자적이다. 크랜베리스(The Cranberries)나 코어스(The Corrs)처럼 영락없는 팝 음악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매르 브레넌(Maire Brennan)이나 돌로레스 키언(Dolores Keane)처럼 영락없는 민속음악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의 음악에서는 아일랜드의 민속음악의 뿌리가 은근슬쩍 깔려 있다. 특히 상처받은 듯한 목소리로 노래하는 창법이 그렇고, 스토리텔링의 수단으로 삼은 가사가 그렇고, 감상적인 분위기가 과잉감정이 아닌 진솔함으로 다가오는 점이 그렇다. 마치 장난치는 듯한 피아노 전주 뒤에 엘리너 매케보이의 가사의 뛰어난 프레이징이 돋보이는 첫 트랙 “I Got You See Mee Through”에서 빠져든다면 앨범의 마지막까지 듣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가사를 알아들을 수 있다면 한 여자의 자기고백의 스토리에 더 깊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나 “The Rain Falls”같은 곡. 자기고백이 고해성사같다는 느낌이 들 때면 사운드 자체가 경건해지고 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도 있다. 특히 “Something So Wonderful, Something So Pure”라고 읊조리는 마지막 트랙에서. 총괄하면 고전음악의 품격, 민속음악의 진솔함, 대중음악의 표현력이 합체된 작품이다. 그래서 첨단으로 질주하지도 않고 옛 것에 집착하지도 않는 특이한 음악이다. 물론 작금의 경향을 고려한다면 다소 지루한 구석이 없지 않다. 그렇지만 ‘곡’도 제대로 못 만들면서 첨단이니 어쩌니 하는 사람이 행세하는(쓰고 보니 ‘다 그런 건 아니다’라고 토를 달아야 할 것 같다) 요즘의 상황에서 이런 온고(溫故)는 적어도 악덕은 아닌 것 같다. 20030929 | 신현준 homey@orgio.net 7/10 P.S. 이런 음악이 슈퍼 오디오 CD(SACD)로 발표되는 것은 적절한 일이다. 디지털의 차가운 미래주의와 아날로그의 따스한 노스탤지어를 동시에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PCM 기술이 아닌 다이렉트 스트림 디지털(Direct Stream Digital) 방식에 의한 녹음’이 무엇인지 알아내려면 복잡한 공학지식이 필요하겠지만, 그걸 굳이 모르더라도 ‘디지털 음향이 여러 비트로 쪼개지지 않고 유려하게 흘러간다’는 느낌을 받기는 어렵지 않다. 물론 일반 CD 플레이어에서도 들을 수 있게 만든 혼종 CD(hybrid CD) 이니까 ‘내 CD 플레이어에서는 안나오지 않을까’라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수록곡 1. I Got You to See Me Through 2. Isn’t It a Little Late? 3. Did I Hurt You? 4. Seasoned Love 5. The Rain Falls 6. Dreaming of Leaving 7. Easy in Love 8. Last Seen October 9th 9. Leaves Me Wondering 10. I Hear You Breathing In 11. Something So Wonderful 관련 사이트 엘리너 매케보이 공식 사이트 http://www.eleanormcevoy.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