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ectric Light Orchestra – The Electric Light Orchestra – EMI, 1971/2003 심포닉과 록 사이의 길 찾기 일렉트릭 라이트 오케스트라(The Electric Light Orchestra, 이하 ELO)는 온갖 모순으로 가득 찬 밴드다. 1. 한때 캔사스(Kansas)와 함께 ‘심포닉 록의 양대 산맥’이라는 칭호로 불리기도 했지만 록 팬들 사이에서 이들의 음악은 항상 ‘사이비’라는 의혹의 대상이 되곤 했다(음악사에 기록될 이들의 업적이라고는 보코더를 최초로 사용했다는 정도 밖에 없다). 2. 1970년대 초부터 1980년대 초까지 전세계의 라디오 방송을 석권할 만큼 인기가 높았지만 록 스타라고 하기에 이들은 너무나 익명적이었다(ELO 멤버들의 이름을 다 외는 사람이 도대체 몇 명이나 있을까?). 3. 세월이 흐르면서 당대에 무시되던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새롭게 재평가되고 있지만 이들은 아직도 이러한 영광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기껏해야 ‘[Sgt. Pepper’s Lonely Heart Club Band]의 트리뷰트 밴드’라는 소리나 들을 뿐이다). 그러나 무브(The Move)-ELO-칩 트릭(Cheap Trick)으로 이어지는 음악적 전통(하드 록과 팝의 결합)은 지금도 록 음악계 일각에서 소수지만 열럴한 추종자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ELO의 문제는 딱히 내세울만한 대표작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퀸(Queen)에게 [A Night At The Opera]가 있고 이글스(Eagles)에게 [Hotel California]가 있다면 ELO의 대표작은 [ELO’s Greatest Hits]다. 이들의 정규 앨범 중 처음부터 끝까지 만족할만한 작품을 찾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대부분의 앨범이 ‘일정 수준’은 유지하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걸작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앨범 록’이라고 불리던 시대의 밴드로서는 치명적인 약점이 아닐 수 없다. ELO의 음반 중 가장 흥미로운 작품인 [The Electric Light Orchestra](미국에서는 [No Answer]라는 타이틀로 발표되었다)도 이들의 대표작이라고 하기에는 다소의 거리감이 있다. 이들의 데뷔 앨범인 이 음반은 ELO의 실질적 창립자 로이 우드(Roy Wood)가 참여한 유일한 작품이다. ELO의 여타 앨범들이 제프 린(Jeff Lynn)의 절대적 지배권 하에서 만들어진 것들임을 감안할 때 이 앨범은 ELO의 디스코그래피에서 가장 이질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앨범이 흥미로운 것도 바로 이 점 때문이다. 성공적인 그룹 무브를 접어두고 ELO를 창단했을 때 로이 우드가 시도하려 했던 것은 심포닉 록이었다. 그러나 그가 지닌 심포닉 록의 비전은 이후 제프 린 휘하의 ELO가 추구한 심포닉 록과는 전혀 궤를 달리하는 것이었다. 오케스트라를 단순한 장식 이상으로 간주하지 않았던 제프 린과 달리 로이 우드는 오케스트라가 실질적 주도권을 행사하는 로큰롤을 기획했던 것이다. 이를 위해 그가 착수한 과제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관현악기들로 로큰롤의 거친 질감을 살려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서양 고전음악의 악곡형식을 록 음악에 응용하는 것이다. “Look At Me Now”에서 그가 연주하는 첼로는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의 기타 사운드를 모델로 한 것이고 “Whispers In The Night”의 형식은 팝 음악의 ‘버스-코러스-버스’ 패턴보다는 ‘제시-전개-재현’이라는 소나타 형식에 가깝다. 바로크적 선율로 시작해서 스트라빈스키(I. Stravinsky)적 불협화음으로 끝을 맺는 “The Battle Of Marston Moor (July 2nd 1644)”는 서양 고전음악의 역사에 대한 그 나름의 이해를 음악으로 옮긴 작품이다. 로이 우드의 실험은 처음부터 몇 가지 문제를 안고 있었다. 첫째는 당시만 해도 로큰롤을 제대로 이해하는 관현악 연주자가 드물었다는 점이다. 첼로 연주자 3명, 바이얼린 연주자 1명, 혼 연주자 1명의 조력을 구하기는 했지만 결과로 나타난 것은 ‘일렉트릭 라이트 오케스트라’라기 보다 ‘일렉트릭 라이트 챔버 오케스트라’로 부르는 것이 더 적합한 사운드다. 로이 우드가 아직 ELO의 음악적 방향을 구체화하지 못했다는 점도 이 앨범의 힘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여기서 그가 수행하고 있는 실험은 말 그대로 실험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는 자신의 머리 속에 있는 모든 아이디어를 끄집어 내어 실천에 옮기고 있지만 그것은 지극히 혼란스럽고 그 의도 또한 불투명하다. 여기에 제프 린과의 음악적 견해차는 이 단계에서부터 이미 ELO의 음악을 덜컹거리게 만든다. 천성적으로 완성도를 중시하는 제프 린의 성향은 로이 우드의 급진주의와는 잘 어울리기 어려운 것이었다. 비록 제프 린이 이 앨범에서 이례적일 만큼 모험적인 음악을 구사하고는 있지만 그것은 다분히 로이 우드의 음악적 주도권에 떠밀린 결과라는 인상이 짙다. 결국 [The Electric Light Orchestra]는 수많은 흥미로운 가능성들을 보여주지만 음악적으로는 그리 만족스럽지 못한 앨범이 되고 말았다. “Look At Me Now”는 “Eleanor Rigby”에 대한 실패한 패러디로 들리고 “The Battle Of Marston Moor (July 2nd 1644)”는 시민혁명 이후 서양사에 대한 난삽하고 산만한 스케치다. 관현악 반주를 동반한 클래식 기타 연주곡 “First Movement (Jumping Biz)”는 발상이나 오케스트레이션 면에서 좀 안이한 듯하고 실내악 분위기의 팝 발라드 “Whispers In The Night”은 완성도가 다소 떨어지는 느낌이다. 공교롭게도 이 곡들은 모두 로이 우드의 작품들이다. 무브에서 활동하던 시절 당대 최고의 송라이터 중 하나로 꼽히던 그가 여기서 단 하나의 인상적인 곡도 만들지 못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뜻 밖의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그가 이 앨범에 부여한 영감과 광기는 결코 간과될 수 없다. 이 앨범을 관통하는 그의 존재감은 그의 작품들 뿐만 아니라 제프 린의 곡들에까지 깊숙한 영향을 미친다. 로이 우드의 작품들에 비하면 제프 린의 곡들은 상대적으로 ‘온건 노선’을 취한 느낌이다. 이 앨범에서 유일하게 전기 기타의 금속성을 접할 수 있는 “10538 Overture”가 그의 작품이라는 사실은 시사적이다. 비틀즈(The Beatles)적 선율의 로큰롤에 관현악의 장식이 가미된 이 곡의 짜임새는 외견상 전형적인 ELO 트랙으로 손색이 없다. 그러나 로이 우드의 첼로가 뿜어내는 공격적인 톤이나 의도적으로 코러스를 배제한 제프 린의 송라이팅은 분명 통상적인 ELO 음악과는 거리가 있다. 삼부작 “Mr. Radio”-“Manhattan Rumble (49th Street Massacre)”-“Queen Of The Hours”나 “Nellie Takes Her Bow” 등 그의 다른 트랙들도 자세히 듣지 않으면 ELO의 이후 음악과 별다른 차이를 발견하기가 어렵다(“Mr. Radio”는 제프 린 특유의 필터를 사용한 보컬을 최초로 선보이기도 한다). 차이가 나는 부분이 있다면 관현악기의 현저한 비중과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추하고 더러운 사운드 정도다. 그러나 ELO의 음악이 말끔하게 소독된 예쁘고 깨끗한 사운드를 특징으로 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사운드 상의 이러한 차이를 사소한 차이로 치부해 버리기는 어렵다. 만약 로이 우드가 ELO에 계속 머물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The Electric Light Orchestra]를 듣고 나면 누구든 한번쯤 던질 수 밖에 없는 질문이다. 이 앨범은 여러 모로 아쉬운 작품이다. 로이 우드는 분명 능력있는 뮤지션이고 여기서 수행된 그의 실험은 다양한 가능성을 내포한 것이었다. 만일 그에게 한 두 번의 기회만 더 주어졌다면 ELO의 음악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앨범의 마지막 곡인 “Whispers In The Night”은 이 점에서 한 가지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명곡이라고 하기에는 좀 부족하지만 조금만 손질을 가했다면 충분히 좋은 곡이 될 수도 있었던 작품이다. 그가 단순히 실험에 치중하는 단계를 넘어 자신의 송라이팅 능력을 발휘하게 되었을 때 어떤 결과가 만들어질 것인가를 암시해주는 곡이기도 하다. 로이 우드가 떠난 이후 제프 린이 주도한 ELO는 ‘매끈하고 완성도는 높지만 그리 매력적이지 않은 음악을 구사하는 밴드’로 평가되고 있다. ELO에게 가장 요구되었던 것은 바로 로이 우드가 지닌 영감과 광기였던 것이다. 2003년에 새롭게 재발매된 [The Electric Light Orchestra]는 EMI의 ‘First Light Series’라는 ELO 관련 음반 전작 재발매 시리즈에서 첫번째로 출반된 음반이다. EMI는 앞으로 이 시리즈를 통해 ELO의 나머지 앨범들과 무브의 앨범들 그리고 로이 우드의 위자드(Wizzard) 및 솔로 앨범들을 계속 발매할 예정이라고 한다. [The Electric Light Orchestra]의 높은 품질을 놓고 볼 때 앞으로 이 시리즈에는 한 번 기대를 걸어봐도 좋을 듯하다. 보너스 트랙은 단 두 곡에 불과하지만 멋진 디자인의 라이너 노트와 희귀 자료를 잔뜩 포함한 CD-롬은 ELO 팬들에게 더 없이 반가운 선물이 될 것이다(CD-롬은 디자인보다 사용의 편리함에 좀더 신경을 썼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다). 게다가 새로운 버전의 빼어난 음질은 이 앨범이 지닌 모든 면모를 속속들이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 앨범처럼 많은 악기가 사용되고 디테일이 풍부한 작품의 경우 음질의 중요성은 더욱 각별하다고 할 수 있다.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이 앨범에 수록된 음악의 질이 음반의 질을 미처 따라잡지 못한다는 점이다. ELO의 팬이라면 이런 문제에 상관 없이 이 앨범을 구입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새롭게 발매될 무브 앨범을 위해 돈을 저축해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20030911 | 이기웅 keewlee@hotmail.com 4/10 수록곡 1. 10538 Overture 2. Look At Me Now 3. Nellie Takes Her Bow 4. The Battle Of Marston Moor (July 2nd 1644) 5. First Movement (Jumping Biz) 6. Mr. Radio 7. Manhattan Rumble (49th Street Massacre) 8. Queen Of The Hours 9. Whispers In The Night 10. The Battle Of Marston Moor (bonus track) 11. 10538 Overture (bonus track) 관련 사이트 The Electric Light Orchestra 공식 사이트 http://www.elomusic.com The Electric Light Orchestra 디스코그래피 http://www.zianet.com/rockaria/elomain.html The Electric Light Orchestra 팬클럽 http://www.ftmusic.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