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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어스 아티스트 – ’77 mbc 제1회 대학가요제 – INTERnational/힛트(HLM 23), 19780301

 

 

예기치 못한 혁명

때로는 지극히 사소한 일이 엄청난 평지풍파의 시작이 되는 경우가 있다. 1977년의 ”77 mbc 제1회 대학가요제’도 바로 이러한 일 중 하나였다. 원래 ‘mbc 대학가요제’는 문화방송에 근무하던 한 PD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된 것이다. “대학 내에 존재하는 음악 문화를 일반 대중에 널리 알리면 건전한 문화창달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의 이러한 구상은 ‘건전’을 중시하던 박정희 정권의 문화정책과도 어느 정도 맞아떨어지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회사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으면서 곧바로 실행에 착수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의 구상이 이후 어떤 파장을 몰고 올지 짐작한 사람은 당시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일부에서 비판하는 것처럼 과연 대학가요제가 대학생들의 탈정치화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관제 행사인가 하는 점이다. 물론 깊은 구조적 수준에서 대학가요제가 어느 정도 그런 기능을 수행했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당시의 관계자들이 그러한 목적이나 의도를 가지고 대학가요제를 만든 것은 분명 아닌 듯하다. 그들은 진실로 대학가의 건전한 문화가 저급하고 퇴폐적인 대중문화의 대안이 될 수 있으리라고 믿었던 것이다.

‘대학생=지성인=건전’, ‘연예인=딴따라=퇴폐’라는 도식은 두말할 나위 없이 엘리트주의적인 발상이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그것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던 사회 통념의 하나였다. 대학생이라는 신분은 일종의 특권적 지위로 간주되었고 대학생들 스스로도 상당한 엘리트 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대학 출신 가수들이 ‘학사 가수’라는 별도의 칭호로 불린 것을 보면 당시 대학생이라는 것이 얼마나 특별한 존재였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특별한 존재인 만큼 이들은 일반의 시야에 좀처럼 포착되지 않았다. 캠퍼스라는 공간은 문화적 성역이자 자치구였다. 그곳에 다니지 않는 한 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도리는 없었다. 대중문화와 대학문화는 서로 엄격한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대마초 사건 이후 대중문화가 캠퍼스로 들어가는 일은 거의 없었고 대학문화도 더 이상 대중문화의 토대로 기능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가요제는 신비에 싸여있던 대학문화의 일단을 일반 대중에게 살짝 노출한 것이다. 물론 노출의 전제조건은 ‘건전’이었지만 열려진 대학의 문에서 반드시 건전만 나왔던 것은 아니다.

대학가요제가 처음 열리던 1977년에 필자는 초등학교(당시 말로 국민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대학가요제를 선전하는 광고를 TV에서 몇 번 보기는 했지만 당시만 해도 그것은 나의 관심 밖이었다. 알지도 못하는 대학생들이 나와서 노래하는 것을 뭐가 재미있다고 보고 앉아 있겠는가? 보나마나 재미없을 것이 뻔했다. 대학가요제가 방송되던 그 시간에 무엇을 했는지는 지금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든 그것을 보지 않고 지나친 것만은 확실하다. 문제는 이튿날이었다. 동네가 발칵 뒤집힌 것이다. 만나는 친구들마다 ‘어제 그거 봤니? 얼마나 재미있는데…’라고 말을 걸어왔다. 속이 조금 쓰렸다.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형, 누나들은 너무 좋아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것 같았다. 다음 날부터 대학가요제 수상자들이 등장하는 TV 쇼는 빼놓지 않고 다 봤다. 그러면서 1978년의 ‘제2회 대학가요제’는 꼭 놓치지 않으리라고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이듬해부터 대학가요제는 무슨 일이 있어도 놓쳐서는 안 되는 필수 프로그램이 되고 말았다. 그 결심은 아마도 “참새와 허수아비”가 대상을 받은 1982년까지 지속되었던 것 같다.

”77 mbc 제1회 대학가요제’ 실황 음반이 발매된 것은 이듬해인 1978년이었다. 애당초 주최측에서는 일회적인 방송행사만으로 끝내려고 했으나 워낙 반응이 폭발적이었던 탓에 뒤늦게 음반까지 나오게 된 것이다. 그 때까지만 해도 가요 음반으로는 드문 두 장 짜리 라이브 앨범이었다. 상당히 값이 비쌌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형이나 누나를 둔 친구들 집에 놀러 가면 어디서나 그 음반을 볼 수 있었다. 요즘 말로 대박을 친 것이다. 나도 그 앨범을 몹시 갖고 싶었다. 보질 못했으니 음반이라도 가져야 직성이 풀릴 듯했다. 그러나 주머니 사정 탓에 상대적으로 저렴한 카세트 테이프로 만족해야만 했다. 그 후로 수년간 아마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듣고 또 들은 것 같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겨우 이 정도 수준의 음악에 그토록 열광했다는 것이 우습기도 하고 잘 믿겨지지도 않는다. 1970년대 말의 대학가요가 일정 수준에 오르게 된 것은 ’78 동양방송 주최 해변가요제’와 ’78 mbc 제2회 대학가요제’를 통해서였다. 1977년의 ‘제1회 대학가요제’만 해도 최성원의 말처럼 ‘학예회’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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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서울대 농대 그룹 사운드 샌드 페블스. 왼쪽부터 최광석(키보드), 이영득(리드 기타, 리더), 여병섭(싱어), 김영국(드럼), 김민수(베이스 기타). 대상 수상곡인 “나 어떡해”는 산울림의 김창훈이 만든 곡이다.

”77 mbc 제1회 대학가요제’는 처음 개최된 행사였던 만큼 주최측이나 참가자들이나 대회의 성격에 대해 제대로 감을 잡지 못했던 듯하다. 참가곡들은 창작곡과 번안곡과 기성 가요가 어지럽게 혼재되어 있고 참가자들 역시 ‘괜찮은’ 정도에서 ‘한심한’ 수준에 이르기까지 폭 넓게 분포되어 있다. 하나 잘된 일은 참가 팀 중 유일한 밴드였던 샌드 페블스가 “나 어떡해”로 대상을 차지한 것이다. 산울림 데뷔 이전 김창훈이 자신의 능력을 한껏 과시한 이 곡은 의문의 여지없는 이 대회의 하이라이트다. 나머지 참가곡들 중에는 이 곡에 필적할만한 작품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당시 커다란 히트를 기록했던 이명우의 “가시리”나 서울대 트리오의 “젊은 연인들” 같은 곡들은 오늘날의 귀로 들으면 건전하다 못해 지루하기까지 하다. 그래도 이 두 곡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혜은이의 히트곡을 성가 풍으로 편곡한 은상 수상곡 “당신은 모르실 거야”는 그야말로 나쁜 의미에서 아마추어리즘의 정수다.

당시 심사위원들의 생각이 어떤 것이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가시리”와 “당신은 모르실 거야”를 제외한 나머지 수상작들이 모두 창작곡에 돌아간 점은 결과적으로 좋은 선례를 남긴 것이었다. 사실 ‘전국 노래자랑’도 아니고, 기성가요나 번안곡을 들고 이 대회에 참가한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마음을 먹고 나왔는지 모르겠다. 조영남이 히트시킨 멕시코 민요 “제비”나 사이먼 & 가펑클(Simon & Garfunkel)의 “The Boxer”를 번안한 “권투선수” 또 양희은의 히트곡 “세노야” 등은 오리지널보다 못하다는 점만 빼고는 도무지 아무런 특색이 없다. 이럴 바에야 그냥 오리지널을 듣지 뭐하러 아마추어의 노래를 듣겠는가? 그나마 수상곡들인 “가시리”와 “당신은 모르실 거야”는 나름대로 성의를 보인 작품들이다. 이스라엘 민요 “밤의 꽃”의 선율에 고려 가요 “가시리”와 “청산별곡”을 얹은 이명우의 발상은 참신했고, 대중적으로 크게 히트한 기성 가요를 근본적으로 다른 관점에서 보려 한 성신여대생들의 시도는 결과와 상관없이 인정을 해줄 만하다.

전반적으로 그리 말끔하게 진행된 대회는 아니었지만 ”77 mbc 제1회 대학가요제’에서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하나 발생했다. 문제의 주인공은 “작은 세상”이라는 곡으로 참가한 박형철이라는 인물이다. 디즈니랜드 주제가인 “Little World”를 번안한 이 곡에 대해 그는 끝까지 자작곡이라고 우겼다. 당시 사회를 본 이수만도 이 점이 미심쩍었는지 노래를 끝낸 그에게 넌지시 물었다. “자작곡이시네요?” “네”. 그는 이 대회 이후에도 각종 방송에 출연하면서 이 노래를 줄기차게 불러댔다. 이 대회와 관련된 코미디는 이것 하나만이 아니다. 이 대회가 음반으로 만들어지면서 대학가요제와는 전혀 무관한 세 곡이 음반에 슬며시 끼어 들어간 것이다. 함중아의 “나에게도 사랑이”, 개구리와 두꺼비의 “하얀 파도”, 김종호와 북두칠성의 “밤하늘 별빛 빛나고”가 그 곡들이다. 물론 당시에는 앨범을 만들면서 남는 공간에 아무 곡이나 끼워 넣는 것이 일반적 관행이기는 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런 앨범에서까지 그런 관행을 지킨다는 것은 좀 너무한 처사다. 덕분에 나는 10여 년 동안 함중아가 대학가요제 출신인 줄로만 알았던 것이다.

비록 음악적인 면에서 그리 수준이 높은 대회는 아니었지만 ”77 mbc 제1회 대학가요제’에도 쓸만한 곡들이 전혀 없지는 않다. 앞서 언급한 “나 어떡해” 외에도 금상을 수상한 박선희의 “하늘”이나 동상을 받은 박문옥·박태홍·최준호의 “저녁 무렵”은 대학가요제에서 밖에는 들을 수 없는 해맑고 순박한 포크의 전형이다. 현경과 영애나 윤형주의 음악에서 직접 영향받은 듯한 이 노래들은 그룹 사운드 음악과 함께 한동안 대학가요의 주축을 이루는 양대 장르의 하나로 군림하기도 했다. 여기서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이 앨범의 하이라이트는 사회자 이수만과 박선희가 나누는 재기 어린 논전이다. 지금 들으면 고통스러울 만큼 썰렁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으나 당시 악극단식 코미디에만 젖어 있던 일반 대중들에게 이들의 참신한 유머는 참으로 재미있고 유쾌했다. 어쩌면 다소 비본질적인 것일 수도 있지만 이 역시 대학가요제의 인기를 증폭시키는데 일정한 공헌을 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처럼 별 볼일 없는 학예회 수준의 행사가 한국 대중음악계를 강타한 폭풍의 진원지가 될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이것의 절묘한 타이밍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1975년의 대마초 사건 이후 한국의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세대를 대변해주는 음악에 굶주려 있었다. 대학가요제가 열린 1977년은 이들이 아직 대마초 사건 이전의 문화적 풍족함을 잊지 않고 있던 시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가요제는 이들에게 그야말로 오랜 목마름을 축이는 한줄기 빗물과 같은 것이었다. 당시에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지만 그것은 이미 자체에 엄청난 폭발력을 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77 mbc 제1회 대학가요제’로 물꼬를 튼 대학가요의 열풍은 이듬해인 1978년이 되면 바야흐로 최고조에 도달하게 된다. 이후 가파른 하강곡선을 그리면서 결국에는 단명으로 끝나고 말지만 1970년대 말을 장식한 대학가요 붐은 한국 대중음악계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은 작은 혁명이었다. 20030913 | 이기웅 keewlee@hotmail.com

수록곡
Side A
1. 나 어떡해 (그랑프리) – 샌드페블즈(서울대 농대)
2. 저녁 무렵 (동상) – 박문옥, 박태흥, 최준호(전남대)
3. 회심 – 김경애(효성여대)
4. 다시 핀 목련꽃 – 조혜옥(숙명여대)
5. 제비 – 홍성모(동아대)
Side B
1. 하늘 (금상) – 박선희(상명여대)
2. 당신은 모르실거야 (은상) – 함영주, 윤미희, 최난애, 박연숙, 유현이, 한미숙(성신여대)
3. 젊은 연인들 (동상) – 민경식, 정연택, 민병호(서울대)
4. 꿈나라 – 조선근, 조후근(경북대)
5. 나의 어머니 – 김희숙(제주대)
Side C
1. 가시리 – 이명우
2. 권투선수(The Boxer) – 박찬, 조근익
3. 하얀 꿈 – 이기순, 이영옥
4. 작은 세상 – 박형철
5. 세노야 – 한명은
Side D
1. 우연 – 유태왕
2. 방랑자 – 김종민
3. 나에게도 사랑이 – 함중아
4. 하얀 파도 – 개구리와 두꺼비
5. 밤하늘 별빛 빛나고 – 김종호와 북두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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