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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골매 – 산꼭대기 올라가/오늘따라 – 지구(JLS 1201504), 19790913

 

 

뛰느냐 나느냐

‘더 오를 곳이 없으니 / 더 이를 곳도 없더라'(“산꼭대기 올라가”)란 말을 일단 활주로가 치달았던 캠퍼스 그룹 사운드의 정점이자 한계에 대한 자기 인식으로 받아들여 보자. 대학 생활의 끝자락에 섰던 이 항공대 출신들이 다른 이들처럼 ‘안전한’ 졸업생의 길을 따라 내려오지 않고, 창공에 스카이다이빙이라도 하듯 전업 음악인의 세계로 함께 몸을 던진 것은 당시만 해도 전례가 드문 모험이었다. 별 뜻 없이 학교를 상징하는 새의 이름을 따서 지은 그룹 이름이라고 하지만, 일단 공중에 뛰어들면 마치 날개라도 돋아나리라는 기대가 무의식 중에라도 있었던 건 아닐까. 치기와 패기의 경계선은 때론 불분명한 것이니.

그런데 좀 자세히 둘러보면 그게 무모함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어쨌든 그들은 1978년 해변가요제와 대학가요제 입상에다 지구 레코드사라는 메이저급 음반사에 정식으로 스카우트되었을 만큼 나름대로 검증된 경력과 상품 가치를 지닌 음악인들이었으니까. 다만 당시에는 여전했던 이른바 ‘대학생 프리미엄’이 사라진 후에도 과연 전과 마찬가지의 호응이 뒤따를지 쉽게 장담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었을 뿐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최선의 길은 새로운 사운드, 달라진 음악으로 승부를 거는 것일 테지만, 활주로의 음반이 나온 뒤 고작 7개월만에 내놓은 송골매의 첫 작품에서 그런 걸 바라기엔 무리가 있다. 해변가요제 인기상을 안겨준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가 실린 것도 그렇고, 송골매에는 공식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활주로에서만 활동했던 라원주의 곡이 절반 너머 차지하고 있는 걸로 봐도 이 앨범은 차라리 ‘돌아온 활주로(Runway Redux)’라고 이름 붙이는 편이 나을 듯하다.

하지만 활주로(정확히 말해 활주로 10기)가 세파에 닳고닳은 밴드는 아니었던 이상, 이들이 재학 중에 만들어낸 스타일을 졸업 이후에도 좀 더 끌어간 걸 딱히 나쁜 일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즉 대학생이라는 신분이 제공하는 ‘신선미’는 사라졌다손 치더라도, 1970년대 말 갓 선보였던 사운드의 싱싱함까지 도매금으로 넘겨버릴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송골매 호(號)가 땅을 박차고 본격적으로 날아오르기 전에 활주로를 조금 더 달려준 것도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와 “탈춤”과 같은 곡들이 더 많이 나오길 고대하던 이들에게는 반가운 일이었을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만사”는 첫 번째 수록곡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음반 전체에 걸친 사운드를 대표할 만한 곡이다. 블루스 기반 하드 록의 영향, 그중 특히 딥 퍼플(Deep Purple)의 그림자가 커 보이는 오르간의 광범위한 활용, 그리고 노랫말에서 민속적인 소재의 형상화는 활주로 뿐 아니라 당시 다수의 캠퍼스 그룹 사운드들이 공유했던 특징인데, “세상만사”는 그 모든 것들을 고루 보여주고 있다.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Moby Dick”과 다소 흡사하게 들리는 기타 리프는 그저 툭툭 던지는 듯한 배철수의 보컬과 어울려 독특한 황토빛 음색을 띠는데, 여기서 배철수의 노래에 대해서는 좀더 자세한 고찰이 필요하다. 매 악절 초반엔 음정을 제대로 짚어 가다가도 뒤로 가면 마치 귀찮아지기라도 한 듯 반쯤 무시하고 읊조리는, 노래 절반 사설 절반의 창법 말이다. 후렴에서 4·4조의 음수율(音數律)이 돋보이는 이응수의 가사가 그 위에 얹히면, 평론가 신현준이 ‘시조(時調) 록’이라 칭한 바 있는 활주로-송골매 스타일의 ‘한국적 록’은 비로소 그 모습을 또렷이 드러낸다.

그렇듯 블루스 록과 시조창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곡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 그 배합이 부조화로 기우는 경우도 있다. “지금 내 마음”은 나름대로 정통적인 블루스를 시도한 곡으로 보이는데, 길게 여운을 끌면서 때론 몸을 떨듯 후드득거리기도 하는 지덕엽의 기타 솔로는 그럴싸한 분위기를 내지만 배철수의 보컬은 그윽함과는 영 거리가 멀게 이지러지기만 할 뿐이다. 비(非)항공대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송골매에 들어와서 이후 라인업의 주축을 이루게 되는 이봉환의 오르간은 아직 전반적인 분위기에 젖어들지 못해서인지 겉도는 경우가 많고 글리산도(glissando) 주법을 쓸데없이 남발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도 음반 앞면까지는 아마추어 시절로부터 넘어온 독창적 스타일과 “산꼭대기 올라가”, “길지 않은 시간이었네” 같은 지덕엽의 경쾌하고 재기발랄한 곡들을 내세워 그럭저럭 선방하고 있지만, 뒷면으로 넘어오면서 역부족이 드러나는 것은 어쩔 수 없어 보인다. 이응수-라원주 짝의 “오늘따라”와 “아낙네 마음”은 활주로 시절을 전후로 한 이들의 대표작들과 비교해 볼 때 함량미달에 그치고, 배철수가 곡을 쓴 “나그네들의 축제”는 훵키한 리듬을 의도한 것으로 보이지만 밴드의 연주력이 이를 받쳐주기엔 모자라는 느낌이다.

그리하여 결국 1집에서 이루지 못한 송골매의 진정한 비상(飛上)은 그 동안 내달려온 활주로에서 단호히 발을 떼는 것으로, 다시 말해 배철수가 나머지 멤버 전원을 항공대 인맥 외부로부터 충원하는 것으로 비로소 시작된다. 하지만 ‘활주로 잔당’ 이응수와 라원주는 연을 끊기는커녕 그 후로도 오랫동안 송골매 사운드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하면서, 활주로가 일구어낸 ‘시조 록’을 대중적인 스타일로 정착시키기에 이른다. ‘고락(苦樂)에 겨운 내 입술로 / 모든 얘기 할 수도 있지만 /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는 가사가 1970년대 말 박정희 철권통치의 끝 무렵, 뭔가 말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던 분위기에 대한 암묵적 비판인지는 듣는 이들 각자의 해석에 달린 문제지만, 부자유스런 시대상을 그런 탄식으로라도 표현하고 싶었다는 이응수의 말에는 수긍이 가는 구석이 있다. 1980년대 들어 세상은 바뀌었으되 억압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던 것처럼, 송골매 또한 대폭 바뀐 멤버들의 면면과 더불어 음악적으로도 새 물꼬를 틀었으나 그전부터의 고유한 색깔이 완전히 씻겨 나간 것은 아니었다. 20030904 | 김필호 antioedipe@hanmail.net

8/10

수록곡
Side A
1. 산꼭대기 올라가
2. 세상만사
3. 길지 않은 시간이었네
4. 지금 내 마음
5.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Side B
1. 오늘따라
2. 아낙네 마음
3. 나그네들의 축제
4. 친구를 생각하며 (재발매 CD에는 누락됨)
5. 새마을 노래(건전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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