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골매 – 어쩌다 마주친 그대/하다 못해 이 가슴을 – 지구(JLS 1201684), 19820115 Fuck Art, Let’s Dance 이제는 세월이 많이 흐른 탓에 다소 신비화되는 감마저 없지 않지만 1970년대 말 캠퍼스 그룹 사운드의 음악은 전혀 심오하거나 예술성 높은 음악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신나게 즐기는 음악, 서양식으로 말하면 파티 음악이었던 것이다(실제로 이 음악은 까까머리 중고등학생들이 소풍 가서 몸을 흔드는데 많이 사용되었다). 통상적으로 이런 음악은 진지한 청취자에게는 외면을 받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이 음악이 지금까지 각별하게 여겨지는 까닭은 한국에 이런 종류의 음악이 매우 드물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로큰롤 음악을 하는 사람들의 유형을 보면 대략 다음의 몇 가지로 분류가 가능하다: 구도자적 예인, 쿨한 아티스트, 삐딱한 반항아. 물론 주어진 것이면 뭐든지 다 하는 ‘쟁이’들도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음악을 단순한 ‘재미’로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이 예술적 이상의 추구든 생계유지의 수단이든 이들에게 로큰롤은 언제나 재미 이상의 어떤 것이다. 이 때문인지 한국의 로큰롤에는 재미(sense of fun)가 심각하게 결여되어 있다. 1970년대 말을 주름잡은 대학 그룹들은 이런 점에서 다소 예외적이었다. 이들에게 로큰롤은 철저히 재미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이들에게는 이렇다 할 예술적 야심도 없었고, 야심이 있다 해도 그것을 뒷받침할 만한 실력도 부족했다. 게다가 아마추어라는 신분은 이들로 하여금 기성 시스템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이들은 자기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마음껏 만들고 연주했다. 비록 이들의 음악에 대해 ‘애들 장난’으로 폄하하는 이들도 없지는 않았지만 이들의 자유롭고 신나는 음악은 당시의 청중들로부터 엄청난 환호를 받았다. 이들이 만든 음악은 매우 독창적인 것이었지만 그것이 반드시 독창성에 대한 의식적 추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어떤 의미에서 이들의 음악은 서양 밴드들의 ‘멋진 음악’을 흉내내려다가 삼천포로 빠져버린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이들은 한가지 매우 중요한 음악적 업적을 달성해냈다. 한국 록 음악의 속도를 대폭 증가시킨 것이다. 오늘날의 귀로 들으면 별로 대단치 않게 들릴 지도 모르지만 당시 이들의 음악은 한국 음악사상 유례가 없이 빠른 음악이었다. 송골매는 이러한 캠퍼스 그룹 사운드의 음악적 유산을 가장 충실히 계승한 밴드다. 물론 여기서 ‘계승’이라는 말은 그리 정확한 용어가 아니다. 활주로와 블랙 테트라를 통해 캠퍼스 그룹 사운드 시대의 음악적 흐름을 주도한 장본인들이 바로 이들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송골매는 대학 그룹의 아마추어리즘을 일찌감치 청산하고 프로 세계에 뛰어든 프로페셔널 밴드였다. 때문에 일부로부터는 계승자는 커녕 변절자로 취급받기도 한다. 그러나 김수철, 홍서범, 김성호, 이명훈 등 캠퍼스 그룹 전성시대의 다른 주역들과 비교해 볼 때 송골매처럼 꾸준히 음악적 한 길을 걸어온 예도 그리 흔치는 않다. 송골매의 음악은 본질적으로 1970년대 말 캠퍼스 그룹 사운드 음악의 1980년대적 재현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기교적으로 좀더 능숙해지고 사운드 면에서 한결 세련되어지기는 했지만 음악의 내용만큼은 이들의 아마추어 시절과 비교해서 별로 달라진 점이 없는 것이다. 이 점은 송골매가 프로가 되어서도 아마추어 시절의 레퍼토리를 즐겨 연주한 점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들의 2집이자 송골매 2기의 데뷔 앨범에 해당하는 [어쩌다 마주친 그대/하다 못해 이 가슴을]에는 “내 마음의 꽃”(블랙 테트라), “우리들”(사막오장), “세상만사”, “길지 않은 시간이었네”(이상 송골매) 등 이들이 과거에 발표했던 곡들이 새로운 연주로 대거 재수록되어 있다(사막오장과 송골매 1기는 명목상 프로 밴드였지만 실질적으로는 아마추어 시절의 한계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그룹들이었다). 이들 경력의 후기에 해당하는 송골매 8집 [어이 하나 그대여/외로운 들꽃]에서도 이러한 선곡이 반복되는 것을 보면 이는 단순히 데뷔 시절에 곡이 모자라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이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아마추어 시절의 음악을 자신들의 음악적 준거점이자 영감의 원천으로 삼았던 것이다. 실제로 이들이 여기서 들려주는 음악도 빠른 템포의 파티 음악이라는 큰 궤를 벗어나지 않는다(“세상만사”와 “내 마음의 꽃/길지 않은 시간이었네”를 들어 보라). 비록 두 곡의 발라드(“그대는 나는”, “모두 다 사랑하리”)가 수록되어 있기는 하지만 앨범은 전반적으로 기분을 고조시키고 몸을 흔들게 만드는 신나는 곡들로 이루어져 있다. 송골매의 이러한 음악적 선택은 이들에게 엄청난 대중적 성공을 가져다 줬지만 비평적인 면에서는 적지 않은 손해를 감수하도록 만들었다. 확실히 이들의 음악은 신중현, 산울림, 들국화의 음악처럼 한국 대중음악사에 큰 획을 그은 것도 아니고 김현식이나 어떤 날처럼 컬트적 숭배의 대상이 된 것도 아니다. 심지어 조용필의 메인스트림 음악과 견주어 봐도 다소 경량급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좋은 음악은 무조건 심각하거나 진지해야 한다’는 선입견만 버린다면 이들의 음악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 근거는 아무 데도 없다. 특히 이들 최고의 앨범인 [어쩌다 마주친 그대/하다 못해 이 가슴을]은 한국 록 명반 리스트의 상위권을 점하기에도 부족함이 없는 걸작이다. [송골매 2집]은 발표된 지 20여 년이 흐른 지금 들어봐도 당시의 신선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그 때보다 더 좋게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건전가요 격으로 들어간 “바람”을 제외한다면 앨범은 내용 면에서나 구성 면에서나 흠잡을 데를 찾기가 어렵다. 솔직히 이 앨범이 처음 나왔을 때는 필자를 비롯해서 실망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한국의 록 팬들은 자국의 록 밴드들에게 외국(영미권)의 것과 똑같은 음악을 할 것을 요구한다. 게다가 배철수 역시 송골매 결성 직후 한 인터뷰에서 “새 그룹을 통해 헤비 메탈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등장한 이들의 앨범은 그런 기대와는 사뭇 동떨어진 것이었다. 도대체 기타는 왜 이리 깔짝거리기만 하며 보컬은 왜 이리 나긋나긋한가? 도대체 이게 무슨 헤비 메탈이란 말인가? “어쩌다 마주친 그대”의 마이너 키 선율은 지나치게 가요적으로 들렸고 “다시 한번”의 기타에는 중량감과 공격성이 심각하게 결여되어 있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네”가 그나마 나았던 것은 그것이 로커빌리의 문법을 비교적 충실히 따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이들이 서양 록 음악의 스타일을 그대로 베끼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르겠다. 이들이 말 그대로 ‘헤비메탈 밴드’가 되었다고 상상해 보라. 기분이 좋은가?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이들의 독창적인 음악세계가 이들의 뿌리 깊은 열등감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어쩌다 마주친 그대/하다 못해 이 가슴을]이 발표된 1980년대 초는 국내외적으로 연주력이 음악의 가장 중요한 척도로 간주되던 시기다. 이들 역시 이런 상황에서 자신들의 연주력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한다. 비록 아마추어 시절과 비교하여 일취월장했다고는 하나 이들은 아직 ‘날고 기는’ 연주자들 앞에서는 주눅을 면치 못하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들의 이러한 고민은 결과적으로 이들의 음악을 과시적으로 흐르지 않게 하는 방부제로서 기능했다. 음반을 들어보면 알겠지만 [어쩌다 마주친 그대/하다 못해 이 가슴을]에는 당시 유행하던 불필요한 솔로나 어려운 코드전개 같은 것이 일절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음악 자체만 놓고 보면 오히려 대학 시절보다도 더 겸손해진 듯한 느낌이다. 당시로서는 낯선 음악이었던 훵크를 시도하면서도 이들은 ‘정통 훵크에 도전하겠다’는 식의 야심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그저 자기들이 할 수 있는 한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 결과로 만들어진 “어쩌다 마주친 그대”는 ‘순박한 레드 핫 칠리 페퍼스(The Red Hot Chili Peppers)’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멋지고 독창적인 사운드를 들려준다. 송골매의 음악은 확실히 촌스럽고 투박하다. 요즘 많이 사용되는 용어로 표현하면 ‘구리다’. 그러나 구린 음악이라고 해서 좋은 음악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송골매의 음악은 좋은 음악이다. 단지 ‘뽀다구’가 나지 않을 뿐이다. 언제부턴가 한국에서도 스타일상으로 세련된 음악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예전 식의 표현을 빌면 ‘서양의 선진 음악에 근접한’ 음악이 많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음악들을 듣다 보면 가끔 ‘칭찬 받을 짓만 골라 하면서 옷에 먼지 하나 안 묻히고 깔끔을 떠는 모범생’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이런 친구들은 언제나 정답만을 얘기하지만 같이 놀기에는 그리 재미있는 상대가 아니다. 반면 송골매의 음악은 ‘늘 지저분한 행색에 공부도 잘 못하지만 언제나 명랑하고 활기 찬 개구쟁이’와 같다. 남에게 별로 자랑할만한 친구는 못되지만 그래도 함께 있으면 늘 재미있고 즐거운 친구다. 둘 중 누가 더 호감 가는 친구인지는 물론 각자의 취향에 따라 결정할 문제다. 그러나 나라면 송골매 쪽을 택하겠다. 20030914 | 이기웅 keewlee@hotmail.com 10/10 수록곡 Side A 1. 어쩌다 마주친 그대 2. 우리들 3. 그대는 나는 4. 다시 한번 5. 세상만사 Side B 1. 하다 못해 이 가슴을 2. 모두 다 사랑하리 3. 빨리 빨리 4. 내 마음의 꽃 / 길지 않는 시간이었네 5. 바람 관련 글 ‘해변가요제’ 4반세기를 기념하며… – vol.5/no.17 [20030901] 김창완과 배철수 – vol.5/no.21 [20031101] DJ 철수, ‘젊음의 우상’ 시절의 세상만사: 배철수와의 인터뷰 – vol.5/no.17 [20030901] 송골매의 프론트맨, 영광과 좌절의 기억들: 구창모와의 인터뷰 – vol.5/no.17 [20030901] 송골매의 날카로운 부리였던 기타잽이의 회한: 김정선과의 인터뷰 – vol.5/no.17 [20030901] ‘송골매파’의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을 펼치다: 이응수와의 인터뷰(1) – vol.5/no.17 [20030901] ‘송골매파’의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을 펼치다: 이응수와의 인터뷰(2) – vol.5/no.17 [20030901] 배리어스 아티스트 [제1회 ’77 mbc 대학가요제] 리뷰 – vol.5/no.17 [20030901] 배리어스 아티스트 [동양방송 주최 제1회 해변가요제] 리뷰 – vol.5/no.17 [20030901] 배리어스 아티스트 [제2회 ’78 mbc 대학가요제] 리뷰 – vol.5/no.17 [20030901] 활주로(Runway) [처음부터 사랑했네/탈춤] 리뷰 – vol.5/no.17 [20030901] 송골매 1집 [산꼭대기 올라가/오늘따라] 리뷰 – vol.5/no.17 [20030901] 송골매 2집 [어쩌다 마주친 그대/하다 못해 이 가슴을] 리뷰 – vol.5/no.17 [20030901] 송골매 3집 [처음 본 순간/한줄기 빛] 리뷰 – vol.5/no.17 [20030901] 송골매 4집 [난 정말 모르겠네/사랑하고 싶어라] 리뷰 – vol.5/no.17 [20030901] 송골매 5집 [하늘나라 우리 님/찬란한 순간] 리뷰 – vol.5/no.17 [20030901] 송골매 6집 [오해/마음의 등불] 리뷰 – vol.5/no.17 [20030901] 송골매 7집 [인생이란 이름의 열차/새가 되어 날으리] 리뷰 – vol.5/no.17 [20030901] 송골매 8집 [어이 하나 그대여/외로운 들꽃] 리뷰 – vol.5/no.17 [20030901] 송골매 9집 [모여라/사랑하는 이여 내 죽으면] 리뷰 – vol.5/no.17 [20030901] 블랙 테트라(열대어) 1집 [창을 열어라/젊은 태양] 리뷰 – vol.5/no.17 [20030901] 블랙 테트라(열대어) 2집 [내 마음의 꽃/좋아하노라 좋아하리라] 리뷰 – vol.5/no.17 [20030901] 4막 5장 [고추 잠자리/마음 때문에] 리뷰 – vol.5/no.17 [20030901] 장끼들 [별/첫사랑] 리뷰 – vol.5/no.13 [20030701] 관련 사이트 송골매 공식 사이트 http://www.songolm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