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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골매 – 처음 본 순간/한줄기 빛 – 지구(JLS 1201788), 19830610

 

 

송골매, 주류 그룹 사운드로 안착하다

송골매의 3집 [처음 본 순간/한줄기 빛]은 배철수(보컬, 기타), 구창모(보컬), 김정선(리드 기타), 이봉환(키보드), 김상복(베이스), 오승동(드럼) 이렇게 6인조의 안정된 라인업으로 이루어진 2기 송골매의 두 번째 음반이다. 잘 알려진 바대로 송골매 2기는 대학 그룹 사운드의 양대 세력이었던 항공대 활주로와 홍익대 블랙 테트라의 멤버들이 결합된 것으로, 송골매의 전성기였다. 특히 이러한 밴드간의 결합은 영미 록 음악사에서도 유례가 드문 음악적 M&A로서 정체성을 공유할 수 있는 대학가를 중심으로 그룹 사운드 씬이 형성되고 이들의 등용문인 각종 가요제에서 쌓은 친분이 지속될 수 있는, 다분히 한국적 상황에서 가능했던 일이었다.

2집 [어쩌다 마주친 그대/하다 못해 이 가슴을]의 엄청난 성공 후 송골매에게는 히트곡을 낼 수 있는 거의 유일무이한 대중적 록 밴드라는 타이틀이 붙여진다. 이러한 인기가도에서 대중적으로 생소한 밴드 록을 일관된 방식으로 고집하기는 어려웠을 것이지만 역시 위대한 뮤지션들에게는 대중의 평균적 취향을 뛰어넘는 선도적인 그 무엇이 있다. “처음 본 순간”은 한국 대중가요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첫 만남의 설렘’을 밝고 경쾌한 소프트 록에 담아 전하고 있다. 특히 인트로의 베이스 연주와 기타 프레이즈는 낵(The Knack)과 같은 뉴 웨이브 밴드를 연상하게 하며, 뒤늦게 수입된 디스코 리듬의 영향도 발견된다. 또한 “한줄기 빛”은 러닝 타임이 너무 짧은 데다 페이드 아웃으로 잦아드는 기타 솔로 음이 다소 맥빠지게 들리는 점이 아쉽긴 하지만 앨범에서 가장 긴장감 넘치는 훅(hook)으로 넘쳐나고 있으며 활주로 시절로 돌아간 듯 패기로 충만하다(특히 출렁거리는 해먼드 오르간과 싸이키델릭한 기타 연주가 등장하는 인트로 부분은 압권이다).

그러나 “한줄기 빛”과 같은 곡은 더 이상 없다. 블루스 무드의 발라드 “빗물”과 “약속일랑 하지 말아요”에서 끈적한 바이브레이션을 구사하는 배철수의 노래는 관습적이며, 청춘 스타 임예진이 가사를 쓴 “아가에게”는 대중가요 히트송으로 손색이 없다. 한편, 극명하게 대비되고 있는 두 보컬리스트의 보이스 칼라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쥐어짜는 듯한 구창모의 비음 섞인 노래는 다시 들어도 풋풋하면서도 호소력이 넘친다. 특히 오르간과 색서폰 연주에 실리는 “이젠 눈물을 거두어야죠”와 구창모의 심미적 자연주의 성향이 드러난 “하늘, 호수, 사랑, 행복”의 구슬픈 노래 가락은 그가 이후 전형적인 성인 취향 발라드로 성공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기에 충분하다. 반면, “한줄기 빛”과 같은 곡에서 느껴지듯 배철수의 노래는 묘하게 록적이다. “한줄기 빛”이 그래도 청년 같다면, “빗물”은 아저씨 같다. 즉 구창모가 오빠부대의 감성을 자극하는 감미로운 목소리를 구사했다면 배철수는 거칠고 예민하지 못한 남성적 록 보컬의 표상인 것이다.

이 앨범에는 한국 그룹 사운드 음악에서 강박관념과도 같이 차용되었던 우리 가락과 장단도 어김없이 등장하고 있다. 먼저, 해먼드 오르간과 훵키한 스타 스크래치로 민요풍 리듬을 만들어내는 “승무”는 흥겨운 가락을 통해 ‘승무’의 정중동의 이미지를 다소 역설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또한, 한때 한국 대중음악계에 방랑시인의 이미지와 근본이 불분명한 민요풍 가요를 유행시킨 장본인인 김태곤이 쓴 “바람”도 의미심장한 가사를 담고 있긴 하지만 사운드만 놓고 보면 신선한 구석이 없다.

결국, 다채로운 연주를 들려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악기들은 구창모와 배철수의 노래를 받쳐주는 세션 연주처럼 들리며, 톤은 다르지만 두 보컬리스트의 자연스런 노래는 완연한 주류 그룹 사운드로 가요판에 착지한 송골매의 안정감을 대변하고 있다.

대학 노천극장과 체육관을 주름잡던 설익은 밴드 스피릿이 방송국 무대 조명에 어울릴 법한 주류 가요로 변모되어간 모습은 당황스럽지만 당시 한국 대중음악의 현실적 조건을 감안한다면 일면 필연적인 귀결이기도 했다. 캠퍼스를 벗어난 젊은 그룹 사운드의 음악이 향유될 연속성 있는 씬이 없던 시절, 지하로 숨어드는 게 아니라면 다른 선택도 변변치 않았을 테다. 그리고 이를 부정적으로만 볼 일도 아니다. 송골매는 1970년대 그룹 사운드 음악의 전성기 이후 한국 록 음악사의 휴지기였던 1980년대 초반을 지켜낸 거의 유일한 오버그라운드 록 그룹으로서 들국화로 대표되는 언더그라운드 록 음악이 태동하기 전까지 우리 록의 명맥을 이어낸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송골매의 3집은 대안적 태도나 실험적 사운드를 들어 찬사할 수는 없다 해도 주류 가요판 내부에서 비교적 건강한 록 음악으로 승부를 걸고자 했던 과감하고 솔직한 앨범이다. 20030913 | 장육 evol62@hanmail.net

7/10

수록곡
1. 처음 본 순간
2. 빗물
3. 아가에게
4. 약속일랑 하지 말아요
5. 꽃씨
6. 한줄기 빛
7. 이젠 눈물을 거두어야죠
8. 승무
9. 하늘, 호수, 사랑, 행복
10. 바람
11. 어허야 둥기둥기(건전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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