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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울림 – 한낮의 모래시계/이렇게 갑자기 – 서라벌(SR 0171), 19790920

 

 

산울림이지만 산울림이 아닌

1970년대에 삼형제가 있었다. 이들은 주말이면 집에 모여 자신들이 창작한 음악을 연주하곤 했다. 하지만 뒤늦게 연주를 시작한 탓에 이들의 연주 실력은 별 볼 일 없었고, 프로페셔널 음악인이 되려는 욕심도 없었다. 맏형의 대학 졸업을 앞두고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이들은 기념 삼아 앨범을 제작하기로 한다. 그런데 그 앨범으로 인해 20여일 만에 전국이 뒤집어졌고 이들은 스타가 되었다. 그 유명한 산울림의 데뷔 스토리이다. 이들의 1, 2집은 대중에게 큰사랑을 받았고, 3집의 경우 비록 군 입대와 맞물려 흥행에 실패했지만 1, 2집의 성공에 따른 자신감을 바탕으로 LP의 B면을 한 곡으로 채우는 등 실험적인 시도가 돋보이는 음반이었다.

산울림의 5집 [한낮의 모래시계/이렇게 갑자기]는 4집 [특급열차/우리 강산] 발매 이후 수개월만에 발매된 음반이다. 4집 역시 3집과 5개월 여의 간격을 두고 발매되었음을 감안하면 과작임에 분명하다(이들의 1-3집 역시 짧은 기간동안 제작되었지만, 초기 앨범에 수록된 곡들은 대부분 데뷔 이전 만들어 놓은 곡들이다). 하지만 4집의 경우 드라마와 영화 등에 삽입되었던 곡들을 모아놓았기 때문에 작업이 가능했다면, 5집은 김창훈과 김창익의 군입대 전에 기획되었고 이들의 휴가 중에 완성된 급조된 성격이 강하다. 산울림처럼 자유롭게 음악을 하던 이들에게 이처럼 정해진 시간 안에 음반을 완성해야 한다는 제약과 군에 대한 부담감은 분명 음악을 하는데 큰 장애물이었을 것이다.

1집부터 3집까지는 듣는 순간 첫 번째 트랙(1집은 “아니 벌써”, 2집은 “내 마음의 주단을 깔고”, 3집은 “내 마음”)부터 듣는 사람을 놀래키며 시작했던 것에 비해, 5집의 첫 번째 곡인 “한낮의 모래시계”는 상대적으로 평범한 곡이다. 이는 앨범 전체를 놓고 봐도 마찬가지이다. 1, 2집에서 건반의 비중이 높은 싸이키델릭한 사운드가 산울림 음악의 특징이었고, 3집에서는 산울림 음악의 한 축인 김창훈이 만든 어둡고 스트레이트한 곡들이 두드러졌다면, 유감스럽게도 5집은 그 성격을 규정지을 만한 특이사항을 찾기 힘들다. 이 앨범에 김창훈이 작곡한 4곡이 실렸지만 예전의 생동감과 파격을 느낄 수는 없다. 전통적인 소재를 차용해 전주에서 북과 유사한 방식으로 드럼을 연주한 “무녀도”보다 김창훈 특유의 헤비한 “오솔길”이 더욱 기억에 남는 것은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반면 아리랑 선율을 빌어 만든 연주곡 “백자”와 민요조 방식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는 “이렇게 갑자기” 같은 김창완의 곡들은 1집의 “청자”에서부터 그가 계속 전통적인 소재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왔다는 점을 보여주는데, 이 앨범에 실린 곡들은 실험적이라는 느낌보다는 클리셰가 된 느낌을 준다.

산울림은 두 동생의 제대 후 발표한 7집 [가지 마오/하얀 달/청춘]에서 재기에 성공한다. 이는 비단 흥행의 성공 뿐 아니라 산울림의 음악이 새롭게 설자리를 찾았다는 것을 뜻한다. 7집에는 메탈에 가까운 “가지 마오”와 “독백”, “청춘” 같은 산울림 표 발라드가 실려있다. 하지만 산울림은 무슨 음악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음악을 하느냐가 중요한 팀이다. 7집은 초기 앨범과 비교해 보면 사운드 상에 많은 변화가 있지만, 결코 이질적으로 들리지 않는다. 모두 충만한 산울림의 에너지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음악이기 때문이다. 산울림 5집은 그것을 찾기 힘들기 때문에 산울림의 음반이되 산울림의 음반이 아니다(김창훈은 인터뷰에서 이 시기의 음반들을 사생아라고까지 표현한바 있다). 하지만 이 기간 동안 군악대에서 복무를 한 두 동생의 연주력은 제대 후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했다. “독백”은 김창훈이 초소에서 근무를 서며 만든 노래라고 한다. 이런 견지에서 산울림의 5집은 단순한 슬럼프가 아닌 제 2의 전성기로 가기 위한 진통의 과정으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20030916 | 이성식 landtmann@empal.com

6/10

수록곡
Side A
1. 한낮의 모래시계
2. 오솔길
3. 봄
4. 포도밭으로 가요
5. 무녀도
Side B
1. 이렇게 갑자기
2. 연 띄워라
3. 왜가
4. 백자
5. 용사는 전선으로(건전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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