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울림 – 조금만 기다려요/못잊어/어느 비 내리던 날 – 서라벌(SR 0201), 19800505 산울림의 이름으로 산울림의 6집 [조금만 기다려요/못 잊어/어느 비 내리던 날](1980)은 ‘3형제의 음반’이 아니다. ‘동생들’인 김창훈(베이스), 김창익(드럼)이 군 복무 중이었기 때문에, 김창완(리드 보컬, 기타)은 동생들 대신 세션의 도움으로 이 음반을 만들었다. 여기 참여한 세션진은 박동률(베이스), 유지연(어쿠스틱 기타, 하모니카), 김영국(드럼)으로 구성된 고장난 우주선이다. 박동률의 참여 여부에 대해서 당사자들의 증언이 엇갈리지만, 김창완을 포함해 고장난 우주선이란 ‘프로젝트’가 뭔가 음악 활동을 ‘도모’하려 했던 시기였다는 정황만은 분명하다. 동생들의 부재, 프로젝트의 세션 참여라는 달라진 토대는 산울림 6집에 경계적인 성격을 부여한다. 이 음반은 산울림 초기작들 같이 ‘3형제 밴드의 음반’으로서 성격은 희박하고, 김창완 솔로 음반에 가깝다. 그렇긴 하지만 고장난 우주선의 역할을 ‘단지 세션’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으며, 김창완과 고장난 우주선의 어울림은 비교적 자연스럽다. 산울림 후기작만큼은 아니라는 얘기다. 말하자면 산울림 6집은 ‘밴드 음반’과 ‘실상은 솔로 음반’의 중간 어딘가에 있다. 음반은 업템포의 훵키한 록 넘버(“조금만 기다려요”)로 시작해서 차분하고 서정적인 “못 잊어”, 훵키한 “나 그대의 넓은 대지가 되고져”, 어쿠스틱 기타와 바이올린 연주가 어우러진 연주곡 “백합”, 컨트리 풍의 “창문 넘어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 싸이키델릭 록 스타일의 “빨간 풍선” 등을 거쳐 연극적인 소품 “오후”로 끝맺는다. 다 듣고 난 후 느낌을 요약한다면 안정감이다. 연주도 무난하고, 여러 음악 스타일과 정서가 골고루 형상화되어 있다. 하지만 대체로 무게중심은 차분하고 서정적인 쪽에 있다. 물론 리듬감이 충만한 순간도 있고 로킹함과 드라이빙감이 압박하는 순간은 있다. 하지만 그럴 때에도 ‘순간에서 영원으로’ 인도하지는 않는다. 김창완의 보컬은 좀처럼 자신의 성량을 넘어서려 하지 않고, 작렬하는 기타는 거의 맛볼 수 없으며, 베이스와 드럼은 막가파 식 다이나믹한 연주 대신 명민하고 시기 적절한 연주를 고수한다. 예컨대 라디오 드라마 주제가로 1978년 발표된 적 있는 “빨간 풍선”은 산울림의 데뷔 초기 사운드를 회상하게 하는 싸이키델릭 록 넘버인데, 김창완의 조신한 보컬이 대변하듯 좀더 밀어붙이기보다 차분하고 안정된 사운드와 잘 짜여진 양식미가 돋보인다. 이 곡에서 1970년대 초 신중현이 리드하던 더 멘(The Men)의 싸이키델릭 록 넘버가 연상된다면 그 때문이다. 따라서 음정도 어긋나고 튜닝과 박자도 좀 절룩거리지만 막무가내로 달리는 산울림표 음악에서 매력을 찾는 사람들에게 이 음반은 2% 부족하다. 실제로 이 음반은 히트곡 “창문 넘어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와 “찻잔”으로 기억된다. 이 곡들은 산울림이 초기에 비해 인기와 곡의 히트 면에서 상대적으로 저조했던 상황을 반전하는데 일조했다. 노고지리의 버전으로 이미 히트했던 “찻잔”은 어쿠스틱 기타만으로 더욱 단촐하게 반주한 산울림 버전으로도 히트했으며, “창문 넘어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는 단순한 리듬과 쉬운 멜로디와 맛깔스런 하모니카가 삼위일체를 이루며 크게 히트했고 ‘가장 긴 제목을 가진 가요’란 화제를 낳기도 했다. 이 음반은 산울림의 중기 이후에 대한 세간의 인식인 ‘서정적인 발라드’라는 키워드를 촉발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찻잔”과 “창문 넘어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는 7집의 “독백”과 “청춘”, 8집의 “내게 사랑은 너무 써”와 “회상”, 10집의 “너의 의미”, 11집의 “그대 떠나는 날 비가 오는가” 등으로 이어지는 주옥같은 ‘서정가요/발라드 히트 행진’의 시작이었던 셈이다. 확실히 동생들의 부재로 인해 그리고 스타 밴드로서 지위와 경력이 이어지면서 산울림에 있어 록 밴드로서의 원석(原石) 같은 생동감은 떨어진 건 사실이다. 대신 서정가요/발라드의 (체감 상이든 수량 상이든) 비중이 산울림의 주요 요소로 부상했다. 단지 발라드 위주라는 인상 때문에 이 음반(과 이 시기 음반들)을 폄하한다면 산울림을 ‘록 (밴드)음악’의 틀에 부당하게 가두는 것이다. 그리고 앞서 살펴보았듯 이 음반은 서정적인 면모가 짙긴 하지만 지배적인 수준은 아니다. 이 음반에는 대상을 의인화한 “찻잔”과 “해바라기가 있는 정물”의 예민한 가사를 비롯해, 노래 이상으로 표현적인 “이 노래가 끝나기 전에”의 블루지한 기타 연주, 프로그레시브한 사운드와 모놀로그를 결합한 “오후”의 시도, 정성조가 피처링한 김민기(1971), 한대수(1974)의 역사적인 포크 넘버처럼 인상적인 “못 잊어”의 정갈한 어쿠스틱 기타와 분방한 플루트의 협연 등 이 음반에 대한 선입견을 재고하게 하는 요소들이 다채롭게 포진되어 있다. 이 음반은 그 때 동생들 없이 김창완이 만들 수 있는 최선이 아니었을까. 산울림의 이름으로 말이다. 20031014 | 이용우 garuda_in_thom@hotmail.com 7/10 * Tip – “찻잔”, “해바라기가 있는 정물”, “나 그대의 넓은 대지가 되고쳐”는 노고지리의 2집 [조용한 방/오두막](서라벌, SR-0176, 1979-11-10)에 이미 실린 바 있다. 노고지리 버전의 편곡과 연주는 산울림 6집 버전과 대체로 비슷하지만, “찻잔”의 경우 록 발라드 스타일로 다소 다르다. – “빨간 풍선”은 1978년 나온 [산울림 빨간 풍선](서라벌, SR-0126, 1978-08-20)에 발표되었던 곡. [산울림의 빨간 풍선]은 언뜻 산울림의 독집처럼 보이지만 실은 여러 가수들의 곡을 실은 컴필레이션 음반이다. 이 음반에 산울림은 “빨간 풍선”과 “바다의 교향시” 커버를 실었는데, 각각 LP의 A면과 B면 첫 곡으로 실려 있다. 수록곡 Side A 1. 조금만 기다려요 2. 못 잊어 3. 이 노래가 끝나기 전에 4. 나 그대의 넓은 대지가 되고져 5. 한밤에 6. 백합 Side B 1. 어느 비 내리던 날 2. 창문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 3. 빨간 풍선 4. 해바라기가 있는 정물 5. 찻잔 6. 오후 관련 글 ‘해변가요제’ 4반세기를 기념하며… – vol.5/no.17 [20030901] 김창완과 배철수 – vol.5/no.21 [20031101] 개구쟁이 로커와의 한낮의 몽중대화: 김창완과의 인터뷰 – vol.5/no.17 [20030901] 황무지에 울려 퍼진 산울림, 또는 산울림의 독백: 김창훈과의 인터뷰(1) – vol.5/no.17 [20030901] 황무지에 울려 퍼진 산울림, 또는 산울림의 독백: 김창훈과의 인터뷰(2) – vol.5/no.22 [20031116]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아마추어 기타리스트의 후일담: 샌드 페블스(6기)의 이영득과의 인터뷰 – vol.5/no.17 [20030901] 산울림 1집 [아니 벌써] 리뷰 – vol.5/no.17 [20030901] 산울림 2집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리뷰 – vol.5/no.17 [20030901] 산울림 3집 [내 마음/그대는 이미 나] 리뷰 – vol.5/no.17 [20030901] 산울림 4집 [특급열차/우리 강산] 리뷰 – vol.5/no.17 [20030901] 산울림 5집 [한낮의 모래시계/이렇게 갑자기] 리뷰 – vol.5/no.17 [20030901] 산울림 6집 [조금만 기다려요/못잊어/어느 비 내리던 날] 리뷰 – vol.5/no.17 [20030901] 산울림 7집 [가지 마오/하얀 달/청춘] 리뷰 – vol.5/no.17 [20030901] 산울림 8집 [새야 날아/내게 사랑은 너무 써] 리뷰 – vol.5/no.17 [20030901] 산울림 9집 [웃는 모습으로 간직하고 싶어/멀어져간 여자] 리뷰 – vol.5/no.17 [20030901] 산울림 10집 [너의 의미/지금 나보다/꿈이야 생각하며 잊어줘] 리뷰 – vol.5/no.17 [20030901] 산울림 11집 [그대 떠나는 날에 비가 오는가/슬픈 장난감] 리뷰 – vol.5/no.17 [20030901] 산울림 12집 [Adagio(꿈꾸는 공원/불안한 행복/동창생)] 리뷰 – vol.5/no.17 [20030901] 산울림 13집 [무지개] 리뷰 – vol.5/no.17 [20030901] 김창훈 [요즘 여자는/딸과 인형] 리뷰 – vol.5/no.17 [20030901] 김창완 [기타가 있는 수필] 리뷰 – vol.5/no.17 [20030901] 김창완 [Postsctript] 리뷰 – vol.5/no.17 [20030901] 김창완 [Cadeau De Papa(아빠의 선물)] 리뷰 – vol.3/no.11 [20010601] 배리어스 아티스트 [제1회 ’77 mbc 대학가요제] 리뷰 – vol.5/no.17 [20030901] 샌드 페블스(화랑) [달빛 속에서(저 새)/달려라] 리뷰 – vol.5/no.17 [20030901] 관련 사이트 산울림 팬 사이트: 산울림 즐기기 2 http://sanullim.na.fm 산울림 팬 사이트: 산울림 팬 페이지 http://www.sanulim.com 산울림 팬 사이트: 산울림 추억하기 http://my.netian.com/~wets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