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917080543-0517krock_sanullim10th

산울림 – 너의 의미/지금 나보다/꿈이야 생각하며 잊어줘 – 대성음반(DAS 0196), 19840720

 

 

 

형제들을 떠나보낸 간이역에서

10집 [너의 의미/지금 나보다/꿈이야 생각하며 잊어줘](1984)가 발표된 당시, 확실하진 않지만 아마도 ‘가요 톱 텐’ 같은 프로그램에서 산울림이 “너의 의미”로 순위에 들어서 출연을 한 걸 본 기억이 난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건 기타를 들고 노래를 부르는 김창완의 얼굴 뿐이었는데, 카메라가 무대 전면을 비출 때 다른 두 멤버는 한참 뒤쪽에서 얼굴마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던 것 같다(물론 그들의 얼굴을 크게 비추어준 화면이 있을 리가 없다).

사후적으로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이 음반은 산울림이 김창완의 1인 프로젝트에 가까워진 첫 번째 앨범으로, 동생들의 빈 자리를 김정택과 이치현 등의 세션으로 메워서 발표한 앨범이다. 그러나 ‘동생들의 부재’와는 별개로 음악적 색깔이 이전의 산울림과 큰 차이를 보인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데, 물론 “너의 의미” 같은 곡 중반부의 기타 솔로처럼 예전의 ‘과도한’ 퍼즈 기타와는 다른 깔끔한 사운드도 있지만, “꿈이야 생각하며 잊어줘” 등에서의 스트레이트한 사운드, 다소 엉뚱하게 들려오는 가사, 김창완의 막가파적인 창법은 그대로 유지되어 있다.

청취자들 중 데뷔 당시부터의 산울림 음악에 대한 적극적 지지자가 아닌 경우 산울림에 대한 인식은 “내게 사랑은 너무 써”나 “회상”등의 발라드로 더 기억되기 쉽다(좀더 어린 세대라면 이후 발표된 “그대 떠나는 날 비가 오는가”, “안녕”이 더 친숙한 것일 수도). 어쨌든 “너의 의미” 역시 1980년대의 산울림의 ‘발라드’ 히트곡 목록 안에 포함될 수 있는 곡인데, 다만 “너의 의미”는 산울림의 여태까지의 곡들 안에서뿐만 아니라 그들이 부른 ‘사랑 노래’라는 범위로 한정시켜 보아도 다소 이례적일 수 있다. 이는 김창완의 유난히 포근하고 가끔은 가식적으로 들리는 듯한 창법뿐만 아니라, 가사에 있어서도 차분하게 ‘화자’가 듣는 ‘너’에게 직접적으로 감정을 전달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내게 사랑은 너무 써”나 “회상”처럼 산울림 형제들의 작사에서 등장하는 상대방이 ‘떠나버린 그 사람’이나 ‘거리에서 한번 마주친 눈빛’처럼 스쳐 지나간 사랑이나 추억에 대한 회한, 이별의 절망(“떠나는 우리님”, “웃는 모습으로 간직하고 싶어”)쪽에 닿아 있는데 반하여, 외부 작사가의 곡인 이 노래에는 ‘너의 그 한마디 말도 그 웃음도 나에겐 커다란 의미’처럼 현재적인 사랑에 대한 마음이 표현되고 있다.

“너의 의미”가 1980년대의 히트곡 느낌이라면 상대적으로 방송을 많이 탄 또 다른 곡 “지금 나보다”는 산울림 초기의 곡들을 더 연상시킨다. ‘어서 나를 두고 떠나려무나’ 같은 언어의 사용이나 단조의 구슬픈 멜로디는 “떠나는 우리님”을 간간이 연상시키는데, 곡 중반부에 다소 작위적으로 끼워든 키보드 연주가 거슬리기는 하지만, 처연한 멜로디나 클라이막스의 창법 같은 ‘타령조’가 곡에 억지로 끼워져 들어간 느낌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산울림의 정서로서 다가온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다.

이는 많은 한국 대중음악인들처럼, 산울림도 “청자”, “무녀도”, “돌아오려무나” 같은 곡들에서 다소 ‘유기적이지 못한’ 국악과 록의 접합을 시도했던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제스추어’로만 비추어질 정도로 성공적이지 않았던 것에 비해, 이를 전면적으로 내세우지 않은 여타의 산울림(및 김창완)의 작업들에서 등장하는 구전가요와 같은 멜로디들(“어머니와 고등어”)에서 오히려 더 ‘전통’에 대한 컴플렉스가 없이 더 전통과 당대 대중음악의 접목을 유기적으로 이루어내고 있다는 부분일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앨범에 수록된 여타의 곡들은 특히 7집 이후의 산울림 음악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느껴진다. 신서사이저의 사용이라는 부분도 3집 이전까지처럼 사운드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로 사용된다기보다는 빈 공간을 메우는 장식에 가깝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춤추는 밤”처럼 당시 ‘뉴 웨이브'(라 지칭된 음악들)와 좀 비슷하게 들리는 곡이라든가, 곡 중반에 드라마틱한 전개로 전환되는 “숨길 수 없네” 등 이례적인 곡들도 존재하지만, 이전의 산울림 음악에서 느껴진 도발적인 느낌은 많이 감소했다.

“꿈이야 생각하며 잊어줘”의 스트레이트함은 “그대 창가로 와요” 같은 곡보다는 왠지 가사처럼 ‘지친’ 느낌이고 “왜 난 고민이 없나”에서는 여전히 엉뚱하긴 하지만 그 속에서 슬슬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한다. 그러한 특성이 두드러지는 것은 아마도 “동화의 성” 같은 곡의 서정성일텐데, 비슷한 시기에 발표한 김창완의 [기타가 있는 수필](1983)의 정서와 통교하는 듯한 이 곡은 “너의 의미”와 함께 ‘나이를 들어가는’ 것에 대한 자의식, 그리고 어린 시절의 순수에 대한 갈망이 동화 풍의 가사와 멜로디로 표현된다는 점에서 이후 발표되는 11집의 “슬픈 장난감”, “안녕” 같은 곡들의 음악적 특징을 예시하는 듯하다

다만 이러한 ‘성숙함’은 이 앨범에서는 이중적인 모습으로 존재한다. “꿈이야 생각하며 잊어줘”에서 과거 따위는 단숨에 잊어버리려는(다소 귀찮아하는, 혹은 무책임한?) 화자는 “아직은 모르지만”에선 천진한 소년의 모습을 띈다. 즉 김창완이라는 캐릭터에서 종종 겹쳐지는, 정신적으로 성장을 멈추어버린 어른의 모습은 이 시기에 서서히 완결되어 지금까지 이어져온 듯하다. 20031017 | 김성균 niuuy@unitel.co.kr

7/10

* 사족 – 지구 레코드에서 발매된 바 있는 산울림 박스 세트에는 약간 다른 버전의 “너의 의미”가 실려 있는데, 곡이 히트한 얼마 후부터 방송에 나오기 시작하여 이후 라디오에서 앨범 버전 대신 이것으로 대체되어 방송을 했던 기억이 난다. 개인적으로는 리듬 파트를 완전히 거세해 버려 좀 따분한 느낌으로 편곡한 이 버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왜 굳이 새로운 버전을 녹음했던 것인지 지금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수록곡
Side A
1. 춤추는 밤
2. 꿈이야 생각하며 잊어 줘
3. 숨길 수 없네
4. 동화의 성
5. 아직은 모르지만
6. 왜 난 고민이 없나
7. 지구가 왜 돌까
8. 독수리가 떴네
Side B
1. 너의 의미
2. 지금 나보다
3. 여기 있어 그대
4. 해지는 곳으로
5. 여기 이 불빛이

관련 글
‘해변가요제’ 4반세기를 기념하며… – vol.5/no.17 [20030901]
김창완과 배철수 – vol.5/no.21 [20031101]

개구쟁이 로커와의 한낮의 몽중대화: 김창완과의 인터뷰 – vol.5/no.17 [20030901]
황무지에 울려 퍼진 산울림, 또는 산울림의 독백: 김창훈과의 인터뷰(1) – vol.5/no.17 [20030901]
황무지에 울려 퍼진 산울림, 또는 산울림의 독백: 김창훈과의 인터뷰(2) – vol.5/no.22 [20031116]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아마추어 기타리스트의 후일담: 샌드 페블스(6기)의 이영득과의 인터뷰 – vol.5/no.17 [20030901]

산울림 1집 [아니 벌써] 리뷰 – vol.5/no.17 [20030901]
산울림 2집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리뷰 – vol.5/no.17 [20030901]
산울림 3집 [내 마음/그대는 이미 나] 리뷰 – vol.5/no.17 [20030901]
산울림 4집 [특급열차/우리 강산] 리뷰 – vol.5/no.17 [20030901]
산울림 5집 [한낮의 모래시계/이렇게 갑자기] 리뷰 – vol.5/no.17 [20030901]
산울림 6집 [조금만 기다려요/못잊어/어느 비 내리던 날] 리뷰 – vol.5/no.17 [20030901]
산울림 7집 [가지 마오/하얀 달/청춘] 리뷰 – vol.5/no.17 [20030901]
산울림 8집 [새야 날아/내게 사랑은 너무 써] 리뷰 – vol.5/no.17 [20030901]
산울림 9집 [웃는 모습으로 간직하고 싶어/멀어져간 여자] 리뷰 – vol.5/no.17 [20030901]
산울림 10집 [너의 의미/지금 나보다/꿈이야 생각하며 잊어줘] 리뷰 – vol.5/no.17 [20030901]
산울림 11집 [그대 떠나는 날에 비가 오는가/슬픈 장난감] 리뷰 – vol.5/no.17 [20030901]
산울림 12집 [Adagio(꿈꾸는 공원/불안한 행복/동창생)] 리뷰 – vol.5/no.17 [20030901]
산울림 13집 [무지개] 리뷰 – vol.5/no.17 [20030901]
김창훈 [요즘 여자는/딸과 인형] 리뷰 – vol.5/no.17 [20030901]
김창완 [기타가 있는 수필] 리뷰 – vol.5/no.17 [20030901]
김창완 [Postsctript] 리뷰 – vol.5/no.17 [20030901]
김창완 [Cadeau De Papa(아빠의 선물)] 리뷰 – vol.3/no.11 [20010601]
배리어스 아티스트 [제1회 ’77 mbc 대학가요제] 리뷰 – vol.5/no.17 [20030901]
샌드 페블스(화랑) [달빛 속에서(저 새)/달려라] 리뷰 – vol.5/no.17 [20030901]

관련 사이트
산울림 팬 사이트: 산울림 즐기기 2
http://sanullim.na.fm
산울림 팬 사이트: 산울림 팬 페이지
http://www.sanulim.com
산울림 팬 사이트: 산울림 추억하기
http://my.netian.com/~wets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