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울림 – 그대 떠나는 날에 비가 오는가/슬픈 장난감 – 대성음반(DAS 0392), 19860910 지친 태엽을 다시 감는 역설 단조의 실로폰 연주에 “잠들어라, 모든 슬픔의 장난감들아, 잠들어라”라고 시작하는 첫 곡 “슬픈 장난감”은 제목부터가 의미심장하다. “녹슬고 지친 너의 그 태엽이 편히 쉴 수 있도록” 운운하는 것도, 중년에 접어든 남자 어른의 속삭임이라는 점에서 미묘한 감정을 전달한다. 그래, 이 트랙은, 그야말로 짠하다. 산울림의 11집 [그대 떠나는 날에 비가 오는가/슬픈 장난감](1986)은 10집 이후 ‘여전히’ 혼자였던 김창완의 솔로 프로젝트의 연장에 있는 작품이다. 음반은 전체적으로 ‘비’라는 매개체를 통해 슬픔, 관조, 회상의 정서를 내비치고 있는데, 화자는 주로 내리는 비를 바라보거나(“그대 떠나는 날 비가 오는가”, “도시에 비가 내리면”) 빗속에 서 있다(“비의 마음”, “옷 젖는 건 괜찮아”). 이런 정서 속에서 비와 눈물은 등치되거나, 비에 몸이 젖은 상황을 담담히 묘사하면서 화자의 슬픈 정서를 간접적으로 드러내게 된다. 비유적으로, 곡을 지배하고 있는 이런 정서는 당시 김창완이 내적으로 많이 지쳐있었을 것이라고 짐작케 한다. 이러한 비의 정서와 더불어 또 한 가지 11집을 정의하는 정서는 동요적 감수성이다. 산울림을 ‘록 음악과 동요의 경계를 넘나든 밴드’라고 정의할 수 있을 만큼 산울림 혹은 김창완에게 동요는 중요한 모티브로 기능한다. 하지만 이런 정서가 정규 음반에 본격적으로 드러난 것이 김창완이 홀로 남아 있던 10집과 11집, 12집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른바 동요의 형식을 빌려 무감한 듯, 담담한 듯 내면을 비추고 있다는 점에서 이 세 작품은 산울림이 아니라 김창완의 음반으로 봐야 할 것이다. 피붙이이자 동료이기도 했던 존재들의 부재는 그에게 얼마나 많은 정서적 공허함을 유발했을까. 음반이 전반적으로 다소 감상적으로 흐르는 느낌을 주는 것은 아마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음반은 형식적으로는 보다 다양한 사운드를 실험하고 있다. 전형적인 김창완 식 발라드 넘버들이 수록된 A면이 앞서 말했듯, ‘비’를 통해 부재의 정서, 내면의 울림을 시(詩)적으로 내비치고 있다면, 반대로 소녀들을 위한 디스코 넘버 “내가 고백을 하면 깜짝 놀랄 거야”로 시작되는 B면에서는 디스코/뉴 웨이브(“내가 고백을 하면 깜짝 놀랄 거야”, “귀여운 소녀”), 상황극의 차용(“도시에 비가 내리면”), 헤비 메탈(“옷 젖는 건 괜찮아”) 같은 음악적 형식들을 다양하게 선보이고 있다. 특히 “도시에 비가 내리면”은 드라마/영화의 한 부분을 그대로 옮긴 듯 첫 소절 이후에 남녀의 핀트가 어긋난, 허무와 자괴감이 가득한 대사로 진행되는데, 직전까지 김창완이 TV 드라마의 음악 작업을 해왔다는 점을 상기하면, 바로 그 경험이 직접적으로 반영된 트랙으로도 보인다. 산울림의 열 한 번째 음반은 결과적으로 김창완의 모순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음반이라는 느낌이다. 그의 내면에 홀로 남겨졌다는 고독감과 낭패감, 쓸쓸함과 슬픔이 고여 있었다면, 그의 외연, 즉 음악적으로는 홀로 작업할 수 있는 기회를 비교적 마음껏 활용하며 다양한 사운드를 실험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만족감이 공존하고 있는 느낌이다. 이 음반을 이렇게 모순된 정서가 양분하고 있는 까닭은 부재를 통한 고통과 만족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모순은 사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산울림의 11집이 전체적으로 슬프면서도 유쾌한 사운드로 점철되어 있어 양가적인 느낌을 준다는 점은 차라리 자연스러운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음반의 모순을 통해 김창완 개인의 슬픔과 고독 너머의 어떤 것, 이른바 역설의 정서를 느끼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이라고 할 수도, 운명이라고 할 수도 없는 어떤 기괴한 정서다. 이를테면 그것은 “녹슬고 지친 태엽 장치”를 다시 감고 끼걱끼걱 앞으로 걸어가야만 하는 슬픈 장난감의 운명 같은 것이다. 그러고 보면 김창완이 언제나 동심(童心)에 마음 한 구석을 내어주고 있던 까닭이란 게, 어쩌면 어른으로 살아가야 하는 지친 삶에 대한 염증 때문은 아니었을까. 20031112 | 차우진 lazicat@empal.com 8/10 수록곡 Side A 1. 슬픈 장난감 2. 비의 마음 3. 그대 떠나는 날 비가 오는가 4. 언제나 낯선 길 5. 순아의 노래 6. 안녕 Side B 1. 내가 고백을 하면 깜짝 놀랄 꺼야 2. 도시에 비가 내리면 3. 귀여운 소녀 4. 가지마 5. 옷 젖는 건 괜찮아 6. 시장에 가면(건전가요) 관련 글 ‘해변가요제’ 4반세기를 기념하며… – vol.5/no.17 [20030901] 김창완과 배철수 – vol.5/no.21 [20031101] 개구쟁이 로커와의 한낮의 몽중대화: 김창완과의 인터뷰 – vol.5/no.17 [20030901] 황무지에 울려 퍼진 산울림, 또는 산울림의 독백: 김창훈과의 인터뷰(1) – vol.5/no.17 [20030901] 황무지에 울려 퍼진 산울림, 또는 산울림의 독백: 김창훈과의 인터뷰(2) – vol.5/no.22 [20031116]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아마추어 기타리스트의 후일담: 샌드 페블스(6기)의 이영득과의 인터뷰 – vol.5/no.17 [20030901] 산울림 1집 [아니 벌써] 리뷰 – vol.5/no.17 [20030901] 산울림 2집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리뷰 – vol.5/no.17 [20030901] 산울림 3집 [내 마음/그대는 이미 나] 리뷰 – vol.5/no.17 [20030901] 산울림 4집 [특급열차/우리 강산] 리뷰 – vol.5/no.17 [20030901] 산울림 5집 [한낮의 모래시계/이렇게 갑자기] 리뷰 – vol.5/no.17 [20030901] 산울림 6집 [조금만 기다려요/못잊어/어느 비 내리던 날] 리뷰 – vol.5/no.17 [20030901] 산울림 7집 [가지 마오/하얀 달/청춘] 리뷰 – vol.5/no.17 [20030901] 산울림 8집 [새야 날아/내게 사랑은 너무 써] 리뷰 – vol.5/no.17 [20030901] 산울림 9집 [웃는 모습으로 간직하고 싶어/멀어져간 여자] 리뷰 – vol.5/no.17 [20030901] 산울림 10집 [너의 의미/지금 나보다/꿈이야 생각하며 잊어줘] 리뷰 – vol.5/no.17 [20030901] 산울림 11집 [그대 떠나는 날에 비가 오는가/슬픈 장난감] 리뷰 – vol.5/no.17 [20030901] 산울림 12집 [Adagio(꿈꾸는 공원/불안한 행복/동창생)] 리뷰 – vol.5/no.17 [20030901] 산울림 13집 [무지개] 리뷰 – vol.5/no.17 [20030901] 김창훈 [요즘 여자는/딸과 인형] 리뷰 – vol.5/no.17 [20030901] 김창완 [기타가 있는 수필] 리뷰 – vol.5/no.17 [20030901] 김창완 [Postsctript] 리뷰 – vol.5/no.17 [20030901] 김창완 [Cadeau De Papa(아빠의 선물)] 리뷰 – vol.3/no.11 [20010601] 배리어스 아티스트 [제1회 ’77 mbc 대학가요제] 리뷰 – vol.5/no.17 [20030901] 샌드 페블스(화랑) [달빛 속에서(저 새)/달려라] 리뷰 – vol.5/no.17 [20030901] 관련 사이트 산울림 팬 사이트: 산울림 즐기기 2 http://sanullim.na.fm 산울림 팬 사이트: 산울림 팬 페이지 http://www.sanulim.com 산울림 팬 사이트: 산울림 추억하기 http://my.netian.com/~wets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