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917080646-0517krock_sanullim12th

산울림 – Adagio(꿈꾸는 공원/불안한 행복/동창생) – 서울음반(SPDR 262), 1991

 

 

관조로 남은 동심의 추억

록과 동심이라는 얼핏 어울리지 않는 조합을 빼놓고 산울림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영원히 어른이 되기를 거부하는 ‘피터팬 신드롬’의 음악적 현현이라 할 정도로 산울림과 동요적 감수성 그리고 여기에 부수되어 나타나는 치기는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특히 생업을 찾아 떠난 동생들을 대신하여 홀로 산울림의 버팀목이 되었던 김창완의 어눌한 듯, 천진한 감성은 쉽사리 동심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11집 이후 무려 5년이 지난 후 나온 12집은 산울림의 이름을 빈 김창완의 프로젝트 앨범 중에서도 마지막에 해당된다. 결과적으로 이 앨범 이후, 긴 침묵 끝에 다시 삼형제의 밴드 산울림으로 돌아왔으니 말이다. 그 흔한 말처럼 혼자는 외로웠던 것인지…. 이 앨범은 5년이라는 시간적 거리 이상의 의미심장한 변화로 가득 차 있다. 푸른 하늘 이고, 꽃신 신고 함께 뛰자는 누나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침묵 속의 아련한 존재로 바뀌어 가듯 동심도 세월의 흐름을 비끼기는 어려웠던가 보다. 원만구족한 삼박의 예기치 않은 허전함이 유난히 크게 들리는 것은 “누나야”가 마지막 곡이어서만은 아닐 것이다.

타이틀 곡 “꿈꾸는 공원”에서부터 마지막 곡 “누나야”에 이르기까지 이 앨범은 사라져 가는 것, 그 흔적이 남겨준 관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앨범을 여는 순간, 잠시 귀를 의심하게 하는 드럼 비트와 신서사이저가 어울려 빚어내는 불협화음 그 사이에서 들리는 아르페지오 기타의 몽환적인 선율만으로 그 순간까지 산울림을 규정해왔던 익숙함과의 단절로 들린다. 박제화된 꿈,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린 동화를 추억하는데 왈츠만큼 적당한 조합이 있을까? 동심을 구현하던 명징한 왈츠는 이 앨범에 와서 사라져버린 동화의 저편을 응시하는 내면을 반추하는 쓸쓸한 거울이 되고 있다.

동심이 사라진 흔적을 관조하던 시선은 중년의 현실에 대한 응시로 이어진다. 송가 풍의 경건함마저 느껴지는 “내가 돌아갈 곳은”은 스러진 꿈의 공간에서 현실로의 복귀를 알리는 곡이다. 민요조의 단선율로 일관하는 건조한 노래가 첼로의 풍부한 선율과 불안하게 공존하는 “불안한 행복”은 꿈과 현실의 경계에 선 중년의 독백이라 할 만하다. “동창생”에서 보이는 일말의 낙천성은 고해성사 후의 안도감이라 할까?

변한 건 내면풍경만이 아니다. 앨범을 여는 첫 곡부터 신서사이저의 다양한 사용이 앨범 전면에 걸쳐 나타나는가 하면, 사운드 이펙트를 이용한 변주도 인상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단순 소박한 민요에서부터 몽환적인 나른함까지 삼박의 변주도 다채롭게 펼쳐진다. 무엇보다도 어눌하고 담백한 김창환의 창법이 곡마다 색깔을 달리하며 무르녹아가는 것을 확인하는 재미도 만만치 않다.

세월의 공백은 이렇게 동심의 추억을 관조로, 튀어 오르던 감각을 무감각으로, 명징함을 모호함으로, 청량감을 무거움으로 바꾸어 버렸다. 흥행의 참패는 당연한 결과인지 모른다. 삼형제의 에너지에서 ‘김창완 표 발라드’로 유지해오던 시장의 지지는 이 앨범에서 확연히 빠져버렸다. “불안한 행복”이 “불행한 축복”으로 바뀌었다고 하면 조금은 위안이 될는지 모르겠다. 20031101 | 박애경 vivelavie@hanmail.net

8/10

수록곡
Side A
1. 꿈꾸는 공원
2. 내가 돌아갈 곳은
3. 불안한 행복
4. 동창생
5. 배추 꽃 메밀꽃
Side B
1. 추억
2. 무감각
3. 슬픈 편지
4. 사랑의 종곡
5. 멈추지 않는 눈물
6. 누나야

관련 글
‘해변가요제’ 4반세기를 기념하며… – vol.5/no.17 [20030901]
김창완과 배철수 – vol.5/no.21 [20031101]

개구쟁이 로커와의 한낮의 몽중대화: 김창완과의 인터뷰 – vol.5/no.17 [20030901]
황무지에 울려 퍼진 산울림, 또는 산울림의 독백: 김창훈과의 인터뷰(1) – vol.5/no.17 [20030901]
황무지에 울려 퍼진 산울림, 또는 산울림의 독백: 김창훈과의 인터뷰(2) – vol.5/no.22 [20031116]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아마추어 기타리스트의 후일담: 샌드 페블스(6기)의 이영득과의 인터뷰 – vol.5/no.17 [20030901]

산울림 1집 [아니 벌써] 리뷰 – vol.5/no.17 [20030901]
산울림 2집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리뷰 – vol.5/no.17 [20030901]
산울림 3집 [내 마음/그대는 이미 나] 리뷰 – vol.5/no.17 [20030901]
산울림 4집 [특급열차/우리 강산] 리뷰 – vol.5/no.17 [20030901]
산울림 5집 [한낮의 모래시계/이렇게 갑자기] 리뷰 – vol.5/no.17 [20030901]
산울림 6집 [조금만 기다려요/못잊어/어느 비 내리던 날] 리뷰 – vol.5/no.17 [20030901]
산울림 7집 [가지 마오/하얀 달/청춘] 리뷰 – vol.5/no.17 [20030901]
산울림 8집 [새야 날아/내게 사랑은 너무 써] 리뷰 – vol.5/no.17 [20030901]
산울림 9집 [웃는 모습으로 간직하고 싶어/멀어져간 여자] 리뷰 – vol.5/no.17 [20030901]
산울림 10집 [너의 의미/지금 나보다/꿈이야 생각하며 잊어줘] 리뷰 – vol.5/no.17 [20030901]
산울림 11집 [그대 떠나는 날에 비가 오는가/슬픈 장난감] 리뷰 – vol.5/no.17 [20030901]
산울림 12집 [Adagio(꿈꾸는 공원/불안한 행복/동창생)] 리뷰 – vol.5/no.17 [20030901]
산울림 13집 [무지개] 리뷰 – vol.5/no.17 [20030901]
김창훈 [요즘 여자는/딸과 인형] 리뷰 – vol.5/no.17 [20030901]
김창완 [기타가 있는 수필] 리뷰 – vol.5/no.17 [20030901]
김창완 [Postsctript] 리뷰 – vol.5/no.17 [20030901]
김창완 [Cadeau De Papa(아빠의 선물)] 리뷰 – vol.3/no.11 [20010601]
배리어스 아티스트 [제1회 ’77 mbc 대학가요제] 리뷰 – vol.5/no.17 [20030901]
샌드 페블스(화랑) [달빛 속에서(저 새)/달려라] 리뷰 – vol.5/no.17 [20030901]

관련 사이트
산울림 팬 사이트: 산울림 즐기기 2
http://sanullim.na.fm
산울림 팬 사이트: 산울림 팬 페이지
http://www.sanulim.com
산울림 팬 사이트: 산울림 추억하기
http://my.netian.com/~wets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