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916030920-0517krock_sanullim13th

산울림 – 무지개 – 지구, 1997

 

 

전설의 가면을 벗어던진 산울림은?

산울림의 13집 [무지개](1997)는 6년 만에, 그리고 삼형제의 음반으로는 13년 만에 등장한 밴드의 재결성 앨범이다. 정황을 보면 1990년대 들어서 점차로 록음악에 대한 담론이 형성되기 시작하고 신중현과 산울림 등 한국 록의 선구자들에 대한 재조명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1996년경 메탈 밴드 중에서는 가장 강한 대중 장악력을 가진 넥스트(N.EX.T)가 TV에서 산울림과 함께 조인트 공연을 했다. 넥스트의 리더 신해철은 “내 마음(나의 마음은 황무지)”를 영화 [정글 스토리(OST)](1996)에서 리메이크하며 산울림에 대한 후배로서의 공경의 자세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산울림 재조명 담론 형성은 지금 돌아보면 “우리 음악 역사에도 이런 밴드가 있었다”라는 식에 그쳐 부자연스러운 점도 없지 않다. 그러나 적어도 “대학 나온 딴따라”였던 산울림이 이제 “아는 사람들은 아는”(아는 사람들만 아는) 위대한 밴드로 자리매김되기 시작한 시점임에는 사실이다. 산울림의 재결성과 13집의 발매가 이러한 붐에 영향받았는가를 따지는 것은 그다지 영양가 없는 일이다.

다만 산울림이 1990년대 당시 한국에 형성되기 시작한 인디 밴드들의 활동에 고무된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1977년 데뷔 당시 산울림이 음악을 하는 자세는 1990년대의 인디씬의 그것을 선도하는 것이었다. “연주를 못하면 못하는 대로 음악을 잘 할 수 있다”라는 한국 인디의 엔진 역할을 한 펑크 마인드의 활력은 산울림에 있어서 이미 “외국 음악 사조에 대한 추종 없이” 보여졌다. 델리 스파이스나 언니네 이발관 등이 보여준 예리하고 관조적인(소위 ‘쿨’한) 정서 – 성인적인 비관과 유아적인 낙관 – 등은 이미 산울림이 1970년대적인 형태로 보여준 매력이었다. 산울림의 1970년대적 정서는 1990년대의 세대의 정서에 와닿는 면이 있었다. 10년 터울을 둔 ‘동시발생(synchronicity)’이라고 해야 할는지. 1970년대에서도, 1980년대에서도 섬으로 존재하며 적통의 선조도, 후예도, 심지어 동료도 없었던 산울림은 1990년대에서 비로소 자신들과 친숙한 정서의 흐름을 발견한 것은 아닐까.

13집 [무지개]는 앨범 커버부터 기존 앨범들의 동화적인 회화에서 탈피해 차갑고 세련된 실사 이미지로 구성되어 있다. 그것은 연장선에 대한 강조라기 보다는 변화에 대한 강조다. 김창완은 인터뷰에서 “새로운 밴드로 보이고 싶다”라고 말한 바 있는데, 이러한 의도는 앨범의 수록곡에서 충실하게 보여지고 있다. 첫 곡 “내가 왜 여기 있는지 몰라”는 김창훈 작사, 작곡에 그의 거친 창법이 돋보이는 “내 마음”(3집)의 뒤를 잊는 트랙이다. 그것은 기존 퍼즈 톤의 무더운 황량함이 아니라 앨범 커버의 차가운 욕실 사진을 연상시키는 차갑고 냉정한 사운드이다. 13집이 가장 산울림 형제들의 의도에 가깝게 나온 사운드일지 모른다고(인터뷰 참고) 말하는 것을 보면 이 곡은 “내 마음”이 가졌어야 할 사운드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는 당대 인디 밴드들이 연주하는 펑크에 가까운 트랙이다. 그러나 역시 간주에서 등장하는 사이키델릭한 애드립은 ‘산울림 표’의 그것이다. 지속적인 사랑을 받는 노래가 된 “무지개”는 그들의 “안녕”(11집) 등의 연장선에 있는, 팬들에게 바치는 노래다. “부탁”은 “내가 왜 여기 있는지 몰라”와 함께 김창훈의 작곡 역량이 여전히 쇠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Fax 잘 받았습니다”는 본작의 가장 뛰어난 곡 중 하나로 산울림의 베스트에 당당히 낄 수 있는 멋진 트랙이다.

앨범에서 김창완은 깔끔하고 차가운 디스토션 계열의 이펙트를 사용하고 있다. 사운드는 그들이 보여준 것 중 가장 세련된 것이고, 초기 앨범의 지저분하고 조악한 사운드를 들려주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는 것 같다. 그것은 그들이 ‘데뷔 당시부터 원했지만 이루지 못했던 사운드’라고 김창완은 말하고 있는데 그에 따르면 13집은 가장 밴드의 의도에 부합하는 프로듀싱이 이루어진 음반일 것이다. 그와 함께 이들은 “과거의 산울림을 좋아하던 사람들이 한 장씩 사주겠지”라는 생각도 가지지 않은 듯하다. “변해야 한다, 나도 너처럼 / 그만두어야 한다, 나도 너처럼 / 버려야 한다, 나도 너처럼”(“나도 너처럼”)이라는 외침은 이번 앨범에 대한 그들의 각오다. 이 앨범은 그렇게 새로운 출발선에 놓여 있으면서도 과거의 자신들에 대한 ‘복원’이기도 하다.

이 음반에서 김창완은 처음으로 ‘에둘러’ 말하지 않는다. 이전에 그는 뭔가 말하고 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밝히는 일은 애써 피한 체 “말하는 태도와 방법”만을 제시한 것에 다름 없다. 이러한 모호함은 산울림의 음악에 아름다움을 부여하였지만, “언제나 산에서만 울렸다”라는 아쉬움이 일견 없었던 것도 아니다. 13집에서도 김창완은 여전히 구체적인 일상어를 사용하여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에서 말하지만(“Fax 잘 받았습니다”), 한편으로는 명확히 누구에게 무엇인가를 말하려 한다. “내가 왜 여기 있는지 몰라”의 소외의 발언은 김창훈 특유의 것이지만 그 뒤를 잇는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는 단순한 자유분방한 상상이 아니라 그것이 현실도피의 소외임을 말하고 싶어하고 있다. 이 앨범에서 소위 ‘신세대’에 대한 그들의 발언이다.

그것은 “네가 슬플 땐 나를 찾아와 줘 / 너를 감싸안고 같이 울어 줄게”라는 “무지개”의 가사 같은 것이다. 이 음반의 가사에는 전에 없는 절실함이 있고, 이는 이 앨범이 단순히 시대의 변화에 적응한 산물이 아님을 이야기한다. 다만 이들의 신세대에 대한 이해에는 “보이는 대로 들리는 대로 상상하는 대로 싸이버”처럼 엇나가는 어색함이 발견되기도 한다. 그것은 김창완이 신세대의 감성에 스스로를 동조하여 이해하려고 하는 순간이며, 그 이해는 아쉽게도 표피적인 것에 그친다. “높은 구두에, 키커 보이게, 선그라스에, 주름 안 지게”(“외출”)라는 김창훈의 가사도 동일한 선에 있다. 반면 “무지개”에서처럼 성공적으로 빛나는 순간도 있다. “니가 친구와 같이 있을 때면 구경꾼처럼 휘파람을 불께 / 모두 떠나고 외로워지며는 길동무가 되어 같이 울어줄께” 그것은 그가 창작인으로서 1990년대의 청중을 상대로 하는 절실한 발언이다. 그들이 노래로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말하려고”하는 순간은 진귀한 것이다. 더구나 그것이 허무가 아닌 진취적인 정서로 드러나는 순간은 더욱 그렇다. 동시대에 대해서 허무주의와 냉소로 일관했던 이들은 1990년대에 있어서는 오히려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것은 단지 나이들었기 때문일까.

전설로 대우받던 밴드 혹은 뮤지션이 과거의 곡들을 재생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전설로 남아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팬들의 폭력이지만 밴드는 그 폭력에 순응한다. 전설의 보호막을 벗어던지는 것은 무섭다. 시대의 간극으로 보호받는 부분을 순식간에 없애버리기 때문이다. 이 앨범에서 산울림은 시대와 전설의 보호를 집어던져버리고 자신들의 알몸을 청중에게 노출시킨다.

이 앨범에 대한 논란은 이전의 산울림의 걸작 앨범에 비해 못 미친다는 것이다. 사실 ’70년대의 정서와 70년대의 사운드, 70년대의 연주’는 ’90년대의 청중’들의 귀에 신기하고 다시 재현할 수 없는 아우라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전설은 시대가 부여하는 것이다. 시대의 간극을 넘지 못한 몇몇 가사에 대한 문제를 제외하면 김창완/김창훈이 보여주는 창작력과 송라이팅의 수준은 과거에 비해 뒤지지 않을 뿐더러, 곡 하나하나의 편곡 센스와 함량, 앨범 전체의 완결도는 과거의 걸작 앨범들보다 오히려 낫다. “13집이 가장 뛰어난 앨범이라고 생각한다”라는 김창완의 말은 결코 허투로 들리지 않는다. 이 음반은 산울림이 1990년대에 현역 ‘인디 밴드’로서 어느 정도를 해낼 수 있을지 보여주는 팝 앨범이다. 그 결과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이들의 13집은 산울림 트리뷰트 앨범보다 뛰어나다”는 말이면 충분할 듯하다. 20031014 | 김남훈 kkamakgui@hanmail.net

8/10

수록곡
1. 내가 왜 여기 있는지 몰라
2.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
3. 나도 너처럼
4. 잔인한 아침
5. 무지개
6. 외출
7. 오줌싸개
8. 142434
9. 부탁
10. 고양이 사냥꾼
11. FAX 잘 받았습니다
12. 내 마음은 황무지(Live)
13. 가지 마오(Live)

관련 글
‘해변가요제’ 4반세기를 기념하며… – vol.5/no.17 [20030901]
김창완과 배철수 – vol.5/no.21 [20031101]

개구쟁이 로커와의 한낮의 몽중대화: 김창완과의 인터뷰 – vol.5/no.17 [20030901]
황무지에 울려 퍼진 산울림, 또는 산울림의 독백: 김창훈과의 인터뷰(1) – vol.5/no.17 [20030901]
황무지에 울려 퍼진 산울림, 또는 산울림의 독백: 김창훈과의 인터뷰(2) – vol.5/no.22 [20031116]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아마추어 기타리스트의 후일담: 샌드 페블스(6기)의 이영득과의 인터뷰 – vol.5/no.17 [20030901]

산울림 1집 [아니 벌써] 리뷰 – vol.5/no.17 [20030901]
산울림 2집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리뷰 – vol.5/no.17 [20030901]
산울림 3집 [내 마음/그대는 이미 나] 리뷰 – vol.5/no.17 [20030901]
산울림 4집 [특급열차/우리 강산] 리뷰 – vol.5/no.17 [20030901]
산울림 5집 [한낮의 모래시계/이렇게 갑자기] 리뷰 – vol.5/no.17 [20030901]
산울림 6집 [조금만 기다려요/못잊어/어느 비 내리던 날] 리뷰 – vol.5/no.17 [20030901]
산울림 7집 [가지 마오/하얀 달/청춘] 리뷰 – vol.5/no.17 [20030901]
산울림 8집 [새야 날아/내게 사랑은 너무 써] 리뷰 – vol.5/no.17 [20030901]
산울림 9집 [웃는 모습으로 간직하고 싶어/멀어져간 여자] 리뷰 – vol.5/no.17 [20030901]
산울림 10집 [너의 의미/지금 나보다/꿈이야 생각하며 잊어줘] 리뷰 – vol.5/no.17 [20030901]
산울림 11집 [그대 떠나는 날에 비가 오는가/슬픈 장난감] 리뷰 – vol.5/no.17 [20030901]
산울림 12집 [Adagio(꿈꾸는 공원/불안한 행복/동창생)] 리뷰 – vol.5/no.17 [20030901]
산울림 13집 [무지개] 리뷰 – vol.5/no.17 [20030901]
김창훈 [요즘 여자는/딸과 인형] 리뷰 – vol.5/no.17 [20030901]
김창완 [기타가 있는 수필] 리뷰 – vol.5/no.17 [20030901]
김창완 [Postsctript] 리뷰 – vol.5/no.17 [20030901]
김창완 [Cadeau De Papa(아빠의 선물)] 리뷰 – vol.3/no.11 [20010601]
배리어스 아티스트 [제1회 ’77 mbc 대학가요제] 리뷰 – vol.5/no.17 [20030901]
샌드 페블스(화랑) [달빛 속에서(저 새)/달려라] 리뷰 – vol.5/no.17 [20030901]

관련 사이트
산울림 팬 사이트: 산울림 즐기기 2
http://sanullim.na.fm
산울림 팬 사이트: 산울림 팬 페이지
http://www.sanulim.com
산울림 팬 사이트: 산울림 추억하기
http://my.netian.com/~wets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