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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완 – 기타가 있는 수필 – 대성음반(DAS 0149), 19831015(CD 발매: 삼성뮤직, 1996)

 

 

정처없이 떠도는 딱정벌레를 빗물에 쓸어버리자

어떠한 음악에 대해서 인식하고 기억하는 방식은 때론 그것을 어떠한 시기에 접했는가에 따라서 상당한 편차를 보일 수 있다. 가령 산울림에 대해서 혹자는 라디오에서 들었던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의 전주가짤린 것에 대한 아쉬움을 이야기할 수 있고, 혹자는 무슨 냉동요리 CF에 나왔던 “어머니와 고등어”(물론 원곡을 CM송으로 변형한 것이지만)를 떠올릴 지도 모른다-개인적으으로는 소위 ‘불법복제’ 테잎으로 이들을 처음 접했던 기억이 나는데, “청춘” “회상” 등 테잎 구매의 주 목적인 이들의 히트곡들뿐만 아니라 “웃는 모습으로 간직하고 싶어” “빨간 풍선” 등등, 대략 6집에서 10집 사이의 ‘다른 의미에서의’ 대표곡들 또한 망라되어 있었던 기억이 난다(물론 그 당시 반응은 ‘산울림이 별 이상한 노래 다 불렀네’였지만).

그런데 이 테잎에는 동시에 “그래. 걷자”와 “어머니와 고등어”가 실려 있었는데, 당시 ‘구루마’에서 팔던 최신가요 테잎에도 종종 “어머니와 고등어”를 부른 이는 산울림이라는 이름으로 표기되기 일쑤였다. 물론 “어머니와 고등어”, “그래, 걷자”가 수록된 [기타가 있는 수필]는 김창완이 솔로로 발표한 앨범이지만, 이러한 표기나 심지어 라디오 DJ의 멘트(‘다음 들으실 곡은 산울림의 “어머니와 고등어”입니다’)에서도 종종 혼돈이 왔다는 것은 사람들의 인식에서 ‘김창완=산울림’이라는 등식이 암묵적으로 세워져 있었음을 이야기 해주는 것 같다.

그러나 [기타가 있는 수필]이 김창완 개인의 이름으로 나왔다는 점은 이 앨범이 산울림이라는 ‘밴드’의 음악적 특성과 약간은 거리를 두고 있음을 시사해 주는 듯하다. 이는 수록곡 대다수가 MBC의 베스트셀러극장 [내마음의 풍차]의 삽입곡이라는 용도로 만들어진 김창완의 개인작업이라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그런데 앨범을 지배하는 어쿠스틱 기타의 포근한 정서는 이후에 발표된 10집앨범과 일정 정도는 통하는 부분이 있다. 어쩌면 10집앨범부터 산울림 자체가 거의 김창완의 개인 프로젝트에 가까워진 것과도 연관될 수 있을까.

이 음반의 주조는 가장 잘 알려진 “어머니와 고등어”에서의 통기타 ‘스트로크’보다는 어쿠스틱 기타를 ‘뜯는’ 반주 쪽인데, 이러한 곡들은 외면적인 형태상으로는 “내게 사랑은 너무 써”나 “너의 의미”와 같은 산울림표 발라드들보다는 영미권의 포크음악과 더 가깝게 들린다. 아마도 “그래, 걷자”나 “비닐장판위의 딱정벌레”와 같은 곡들이 대표적일 텐데, 다른 악기 없이 어쿠스틱 기타 반주 위에서 김창완의 목소리가 가사처럼 ‘빗물에 쓸어져내리는’ 듯 흘러간다-이러한 노래들을 발표당시에 ‘금성’이나 ‘대우’표 워크맨으로 들었다면 대부분 가사를 제대로 알아들었을 리 만무하다

그런데 이러한 불명료한 느낌은 유려한 기타의 멜로디에 에코효과가 많이 걸려 있는 듯한 녹음에도 그 근원이 있다. 김창완의 약간은 졸리운 듯 나즈막한 목소리 또한 그에 일조하며, 곡의 멜로디는 비슷한 음을 계속 반복하는 읊는 느낌이다. 가사에 있어서도 간간이 비일상적이거나 옛스러운 단어들(“초야”의 ‘남포불’)이 등장하거나 낯선 비유들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그래, 걷자”의 ‘끌러버린 가방속처럼 너절한 옛일’).

대부분의 곡들에 있어서 강세가 정박에 오는 경우가 드문 것도 그 한 이유라 생각되는데, 곡이 진행되면서 이는 미묘하게 흐트러진다-“그래, 걷자”의 첫 소절과 같은 사례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으리라. 작곡뿐만 아니라, 이 음반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들 중의 하나는 ‘외면적으로 두드러지지 않는’ 어쿠스틱 기타연주의 아름다운 선율일 것이다. 아마도 “비닐장판위의 딱정벌레”의 중반부에 등장하는, 거의 한 음 한 음을 조율하듯 ‘뜯는’ (가끔은 가야금같은 느낌마저 주는) 연주에 의해 만들어지는 사운드의 ‘빈 공간’이 이 음반의 정서를 관통하고 있는 쓸쓸함과 연관되어 있는 탓이 아닐까.

가사에 있어서 드러난 주된 관심은 앞서 언급한 ‘끌러버린 가방속처럼 너절한’ 옛일에 대한 쓸쓸한 관조와 같은 것이다. 하지만 김창완의 이전 곡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관조적이고 차분해진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초야”, “나는 기다리네”라든가 김창완의 내레이션이 마치 한편의 동시를 읊는 듯한 “꿈”과 같은 곡들에서 드러나는 따뜻한 감성들도 그렇다. 이는 앞서 이야기한 산울림 10집의 정서와 만나는 부분인데, 다른 사람의 가사이지만 “너의 의미”와 같은 곡에서 등장하는 ‘뭉게구름 위의 성’이라든가, “동화의 성”에 등장하는 추억에 대한 그리움과 같은 정서는 이후 11집에 수록된 “슬픈 장난감”이나 “안녕”과 같은 곡들과 이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바라볼 때 김창완(및 산울림)의 동요작업들은 다른 의미로 느껴질 수도 있다. “어머니와 고등어”나 “무슨 색을 좋아해도” 같은 비교적 발랄한 곡들은 아마도 이러한 측면이 이어져 온 결과물처럼 생각되는데, ‘성숙한 어른’으로서 추억에 대한 그리움을 묘사하는 것이 아닌, 아이의 시점으로 사물을 묘사하거나 받아들이는 방식은 산울림의 이전 노래들에서 종종 등잤했던 엉뚱하고 때로는 퇴행적으로 보이는 감성들이 동일한 흐름에서의 다른 표현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동요와 같은 멜로디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은근히 “어머니와 고등어”의 멜로디가 마치 구전가요와 유사한 느낌처럼 자연스럽게 다가온다는 점일 것이다. 또한 오래된 “최신가요” 악보 위에 쓰인 ‘Slow Go Go’를 연상하기 딱 좋은 단순한 연주 또한 그러한 친숙함을 배가시켜 주는 부분인데, 이는 가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무슨 색을 좋아해도”에서 ‘샛노란 색을 좋아한다고 샛노랗게 말할 수는 없잖아’처럼 특이한 발상은 가사가 ‘의도적인 엉뚱함’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그러한 상상력을 지극히 일상적인 부분에서 체화된 감정으로 끌어내고 있다는 지점이며, 이는 몇몇 김창완(및 산울림)의 가사에 영향받은 근래의 한국 인디 밴드들의 ‘의도적 파격’이 허전하게 느껴지는 지점일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 음반은 앞서 이야기한 영미권의 포크음악의 외형만을 빌려왔을 뿐 ‘김창완’이라는 각인이 정확하게 새겨진다. 어떤 의미에서는 퇴행적(부정적인 의미가 아님)인 느낌으로 도달할 수도 있는 “빗소리”(재발매된 CD에만 실린)와 같은 예외적인 곡도 김창완이라는 개인의 음악적 특성 안에서 고개를 끄떡일 수 있게 만든다(물론 그 노래가 나온 피자광고 인상이 너무 박혀 있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20031014 | 김성균 niuuy@unitel.co.kr

10/10

수록곡
Side A
1. 그래 걷자
2. 초야
3. 내방을 흰색으로 칠해주오
4. 당신이 날 불러지기 전에는
5. 꿈
6. 어머니와 고등어
7. 내게 다가와 주세요
8. 비닐 장판의 딱정벌레
Side B
1. 계절이 끝날 무렵
2. 식어버린 차
3. 내 화가여
4. 그대여
5. 무슨 색을 좋아해도
6. 나는 기다리네
7. 내 그림자 속에
8. 시장에 가면(건전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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