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zzee Rascal – Boy In Da Corner – XL, 2003 비열한 거리 스트리츠(a.k.a 마이크 스키너)는 그가 (거라지 랩의) ‘미래’라고 했다. 사이먼 레이놀즈(Simon Reynolds)는 그가 “트리키(Tricky) 이후 가장 인상적이고 도발적인 영국 MC”라고 했다. 인디 음악 웹진 [피치포크미디어]는 그가 피트 타운센드(Pete Townshend), 자니 로튼(Johnny Rotten), 모리세이(Morrissey) 급의 뮤지션으로 성장하길 기대한다고 했다. 이는 모두 롤 딥 크루(Roll Deep Crew) 출신의 딜란 밀즈(Dylan Mills), 디찌 라스칼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는 올해 18살이 된 깡마른 흑인 소년에게 바친 말이다. 2002년 영국 언더그라운드 씬을 떠들썩하게 했(다)던 싱글 [I Luv You]에 이은 그의 데뷔 음반은 그 찬사에 온전히 값하고도 남는다. 라가의 업비트와 덥으로 만든 앙상한 골격, 힙합의 다운비트에서 기름기를 완전히 제거한 베이스라인, 때로 비디오게임의 그것을 닮은 싸늘하고 황량한 신서사이저 효과음, 남극에서 주워 온 듯한 무채색의 앰비언트, 광폭한 속도를 버린 가빠(gabba)의 터질 듯한 긴장감. 디찌 라스칼의 데뷔음반은 폐소공포증적인 소리들로 꽉 차 있다. 빌리 스콰이어(Billy Squire)의 “The Big Beat”에서 샘플을 따온, 라스칼 버전의 “We Will Rock You”라고 할 수 있는 “Fix Up, Look Sharp”이나 록 기타 리프를 활용하고 있는 “Jus’ A Rascal”도 장쾌하다기보다는 갑갑한 쪽에 가깝다. 사운드에 대한 호오(好惡)를 떠나, 분명한 점은 이것이 그 동안 들어보지 못한 잘 짜인 소리라는 것이다. 이 회색빛 소리 속에서 그는 ‘그저 앉아 있다.'(“Sittin’ Here”) 슈팅 게임 효과음과 비슷한 경찰차 사이렌 소리와 총소리가 팡팡 터지는 가운데 그는 거리에 앉아 소년 갱들이 펼치는 유혈 활극을 무감하게 바라본다. 가빠 스타일의 신스 효과음으로 시작해서 건조한 베이스라인과 차가운 현악 샘플, 상승하는 반음계의 선율로 꽉 짜인 무드를 빚어내는 “Stop Dat”이나 현악 샘플의 스타카토로 뭉툭한 그루브를 만드는 “2 For”, 퉁퉁거리는 싸구려 전자음으로 붕 뜬 듯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Wot U On”도 주목할 만한 트랙이다. 물론 과장된 합창 속에서 밉지 않게 자신을 자랑하는 “Jus’ A Rascal”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가장 인상적인 곡은 16세 때 만들었다는 첫 싱글 “I Luv You”이다. ‘I luv you’라 속삭이는 여성의 목소리가 불길한(atmospheric) 효과음과 잘게 썰린 하이햇 비트에 둘러싸인 채 갈가리 찢겨나가는 도입부는 한 번 듣는 순간 절대 잊을 수 없다. 곧이어 공허한 비트가 깡통으로 만든 채찍을 휘두르는 것처럼 날아다니고 금속성 신서사이저 버블이 마구 터지며 싸늘한 라가 베이스라인이 사정없이 움직이는 동안 라스칼의 히스테릭한 래핑이 자기가 15살 짜리 여자애를 임신시켰다는 사실을 팝콘 튀기듯 고백한다. 그년이 매일 전화하고 징징거리고 집까지 찾아오는데, 라스칼 나리께서는 죽을 노릇이다. 여기에는 ‘비치’를 후리는 데 성공한 마초 MC의 허세(bravado)와 사랑을 알기도 전에 사랑없는 섹스를 먼저 누렸던 소년의 비참한 짜증이 날 것 그대로 드러난다. ‘I luv you’라는 부드러운 속삭임은 끔찍하게 변한다. 싸이프러스 힐(Cypress Hill)과 제이 지(Jay-Z)를 뒤섞어 고속 탈수기로 돌린 뒤 꺼낸 듯한 그의 엠씨잉은(그가 제이 지 영국 공연의 오프닝을 섰던 것도 이 때문이 아니었을까) 미국 힙합의 통통 튀는 플로우와 거라지 특유의 재빠른 구어체 랩이 적절하게 뒤섞여 있다. 딱히 ‘멜로디’라 할 만한 것이 없는 음반의 전체적인 분위기 속에서 그의 랩 스킬은 단연 돋보이는데, 특히 “Fix Up, Look Sharp” 같은 곡에서는 랩 자체로 만드는 절묘한 훅을 보여 준다. 때로 거만하게 자신의 ‘마초성’을 뽐내기도 하는 (“2 For”) 그가 묘사하는/사는 세계에서는 소년 갱들이 총을 들고 서로의 구역으로 ‘원정’을 나가고(“Brand New Day”), 십대 미혼모가 거리를 떠돌며(“Jezebel”), 이에 아랑곳없이 육욕에 휩싸인 소년들은 사랑도 우정도 실종된 거리에서 그저 소녀들을 탐할 뿐이다(“Round We Go”). 이 모든 것을 낱낱이 까발리면서, 그는 마침내 화제가 되었던 그 구절을 읊조린다. “나는 토니 블레어의 문제거리지(I’m a problem for Anthony Blair)” (“Hold Ya Mouf”) 이 음반은 독창적인 사운드와 거친 가사를 통해 젊음의 불안과 분노, 좌절을 잔혹하리만치 생생하게 드러내고 있다. 동시에 그것들을 극복한 뒤 성장하려는 의지를 고통스럽게 표현한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영원히 잠들었으면 싶다”(“Do It”)라고 중얼거리는 이 래퍼는 “사랑은 모두에게 말을 하지만 돈은 더 많은 말을 하는”(“Wot U On?”) 세상의 진실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언젠가 어른이 되리라는 사실을 또렷이 알고 있으며(“Brand New Day”) 그에 따른 책임도 만만치 않음을 안다(“Do It”). 나는 내가 결코 가질 수 없었던, 그의 젊은 성숙함에 기대를 걸겠다. [Boy In Da Corner]는 올해 최고의 데뷔 음반이 될 것이다. 20030831 | 최민우 eidos4@freechal.com 10/10 수록곡 1. Sittin’ Here 2. Stop Dat 3. I Luv U 4. Brand New Day 5. 2 Far 6. Fix Up, Look Sharp 7. Cut ‘Em Off 8. Hold Ya Mouf 9. Round We Go (Ain’t No Love) 10. Jus’ A Rascal 11. Wot U On? 12. Jezebel 13. Seems 2 Be 14. Live O 15. Do It 관련 글 영국 거라지 랩(UK Garage Rap)에 관한 오해와 진실 – vol.5/no.16 [20030816] More Fire Crew [More Fire Crew CV] 리뷰 – vol.5/no.16 [20030816] Streets [Original Pirate Material] 리뷰 – vol.5/no.16 [20030816] Ms Dynamite [A Little Deeper] 리뷰 – vol.5/no.17 [20030901] Dizzee Rascal [Boy In Da Corner] 리뷰 – vol.5/no.17 [20030901] Craig David [Born To Do It] 리뷰 – vol.3/no.16 [20010816] 브릿 합(Brit-Hop) 미국을 구하러오다?: 루츠 마뉴바(Roots Manuva)의 미국 상륙에 즈음하여 – vol.4/no.4 [20020216] 브리티쉬 힙합은 존재하는가? – vol.2/no.3 [20000701] 관련 사이트 “Fix Up, Look Sharp” 비디오 클립 http://www.cissme.com/bgroup/rm/xl/dizze/video/xls167cd-01_rvh.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