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말띠 해의 전설들
아마 지난 해가 말띠 해였던 것 같다. 그래서 따져 보니까 1954년, 1966년, 1978년, 1990년, 2002년이 말띠 해였다. 이 50년 사이에 한국 사회의 변화는 너무도 급격한 것이었다. 상징적인 변화라면 베이비 붐이라면 남부럽지 않은 나라에서 출산율 세계 최저국으로 급변한 것이리라. 그건 그렇고.

이 말띠 해에 무슨 일들이 있었을까. 한국 대중음악의 궤적을 뒤져 보면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운세(運勢)를 발견할 수 있다. 힌트부터 준다면 1954년 말띠 해에 태어난 사람들의 이야기다. (사실 뭐 이런 이야기야 재미로 해 보는 것이니 시비걸지는 말길.)

Chapter 1: 1978년
지금부터 25년 전 8월의 일이니 정확히 4반세기가 되었다. 아, 세월 한 번 징그럽다. 어쨌든 그때 지금은 사라진 동양방송(TBC)에서 주최한 ‘제1회 해변가요제’라는 행사가 있었다. 이듬해부터는 ‘젊은이의 가요제’라고 이름을 바꾼 경연대회다. 이를 통해 블랙 테트라(열대어)와 런웨이(활주로)라는 ‘캠퍼스 그룹 사운드’가 스타가 되었다.

여기 참가한 블랙 테트라의 ‘노래와 연주'(당시 MC의 멘트였다)인 “구름과 나” 그리고 활주로의 노래와 연주인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는 그랑프리를 차지하지 못했지만 스매시 히트를 기록하면서 라디오에서 줄창 흘러 나왔다.

Chapter 2: 1954년
1954년이면 한국전쟁이 끝나고 피비린내가 가시면서 ‘베이비 붐’이 시작된 해이다. 이 해에는 유난히 슈퍼스타급 음악인들이 많이 태어났다. 오늘의 주인공들인 송골매의 주역들도 이 해에 세상의 빛을 보았다. 구창모와 김정선이 그렇다. 아쉽게도 배철수는 1년 전인 1953년에 태어나서 ‘오늘의 운세’에 협조를 해 주지 않았지만 이 정도 오차는 신뢰도 범위 내에 있다고 생각한다. 아, 1954년 생이 누가 더 있냐고? 김창완, 송홍섭, 김석규, 박동률, 전영록, 전인권, 최성원, 등등…

Chapter 3: 1966년
기타리스트 강근식의 주도로 홍익 캄보라는 이름의 대학생 그룹이 탄생했다. 또한 항공대학교에서 ‘기악반’으로 런웨이가 탄생했다는 기록이 있다. 한 석사학위논문을 보니 다음과 같은 문장이 등장한다.

“5년간의 연륜을 갖고 있는 본교 런웨이의 연주가…”라는 1971년의 항공대 학보의 기사(1971년 5월 3일 522호)로 보아 이들이 처음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66년이다. (안성민, [캠퍼스 그룹 사운드 붐],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석사학위 논문, p.33)

저자는 이 기사를 보고 역산을 한 모양이다. ‘1971 – 5 = 1966’ 식으로… 한국인의 관행 상 1966년보다는 1967년일 확률이 더 크다(배철수의 증언으로 미루어 보아 1967년으로 보인다. 1966년이면 캠퍼스 그룹 사운드는 고사하고 직업적 그룹 사운드도 몇 개 안 될 무렵이니까…). 하지만 ‘한끝 차이’ 정도는 눈감아 주도록 하자. ‘키 보이스와 애드 훠 중에 누가 먼저냐’라는 논쟁 비슷하게 ‘홍익 캄보와 항공대 활주로 가운데 누가 먼저냐’라는 것도 흥미로운 논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논쟁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1954년 말띠 오빠들이 중학생이 될락말락하던 무렵 대학교에서 캠퍼스 그룹 사운드가 태동했다는 점, 이들이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 서울 시민회관을 비롯하여 극장과 생음악 살롱에서는 ‘보컬 그룹 경연대회’ 같은 행사가 봇물 터지듯 열리면서 ’10대들의 열광’을 낳았다는 점이다. 그 가운데 하나는 TBC에서 개최한 ‘전국 남녀 대학생 재즈 페스티벌’이라는 행사였다. 여기에 정성조가 이끈 정성조 쿼텟이나 강근식이 이끈 홍익 캄보가 참여했다는 사실도 우리의 기획을 열심히 읽은 사람이라면 언젠가 한번 들어보았을 것이다.

Interlude: 1973년
1954년 말띠 생이라면 1973년은 대학교에 입학할 나이다. 73학번이라는 이야기다. 물론 한국에는 법무부 나이랑 교육부 나이가 따로 있고 이런저런 개인적 사정도 있을 터이니 1954년 생이라고 다 73학번은 아닐 것이다(한 예로 김창완은 ‘빠른 54년 생’인데 학번은 한해 더 빠른 71학번이다). 그건 그렇고…

이 해 여름 연포에서 TBC 주최로 ‘전국 대학생 보컬 경연대회’가 열렸다. 대상은 서울대 치대를 주축으로 한 스푸키스가 차지했고, 항공대학교 런웨이는 3위에 입상했다. 조덕환과 이영재가 소속된 고려대학교 그룹 사운드 코리아 스톤스(고인돌)도 여기 참여했다고 한다. 관련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1주일 동안 연포에서 ‘히피처럼 놀았다’고 한다.

그 뒤로도 캠퍼스 그룹 사운드들은 서울 일대의 고고 클럽과 맥주 살롱 여기저기서 ‘알바’를 했다. 물론 대학 캠퍼스 내에서 ‘정기발표회’를 하거나 축제에서 고고 파티를 할 때 연주하는 것이 이들의 주된 무대였다.

Chapter 4: 1978년(reprise)
1977년 9월 제1회 MBC 대학가요제에서 서울대학교 농대 그룹 사운드 샌드 페블스가 “나 어떡해”로 대상을 차지했다. 이 곡의 작곡자는 다름 아닌 김창훈. 그의 형 김창완과 동생 김창익과 더불어 함께 한 3인조 그룹 사운드 산울림은 엄밀한 의미에서 ‘캠퍼스 그룹 사운드’는 아니었지만 캠퍼스의 감성을 가진 록 그룹으로 1970년대 말을 풍미했다.

그러니 블랙 테트라와 활주로는 그룹 사운드 붐을 불꽃놀이처럼 연발의 폭발음을 울린 존재였다. 물론 이들만이 아니었다. 휘버스(열기들), 블루 드래곤(청룡), 벗님들, 옥슨(황소), 마그마 그 외 수많은 캠퍼스 그룹들이 ‘가요제’를 통해 세인에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급기야 1세대 그룹 사운드를 밀어내고 그룹 사운드의 주류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비유는 비유일 뿐이지만 이들은 캠퍼스 그룹들은 영미권에서 ‘뉴 웨이브’가 했던 것과 비슷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 가운데 블랙 테트라와 활주로가 ‘화학적으로’ 결합한 송골매는 1980년대 중반까지 대중음악계의 주류에서 정상의 지위를 차지했다. 아마도 송골매는 1980년대에 가장 바쁜 존재였을 것이다. 어쩌면 조용필보다도 더…

Chapter 5: 1990년
1978년 이후 다시 말띠 해인 1990년이 돌아오기까지 세상은 여러 면에서 많이 변했다. 그걸 어디 한 마디로 말할 수 있으랴. 1978년에 ‘젊음의 상징’이었고 그 뒤에도 영원한 대학생일 것 같던 말띠 오빠들은 1990년에 30대를 흘려보내게 되었다. 그래서 1990년은 여러 의미에서 한 시대의 종언이었다.

송골매는 9집을 마지막으로 활동을 중단했고 송골매를 끝까지 지키던 배철수는 이후 라디오 방송의 DJ가 되었다. 송골매를 탈퇴한 뒤 성공적인 솔로 경력을 이어가던 구창모는 1989년 다섯 번째 솔로 앨범을 마지막으로 대중음악계를 떠났다. 산울림도 1991년 12집을 마지막으로 오랜 공백기를 가졌고, 김창완은 CF와 드라마에 얼굴을 내비치는 탤런트가 되었다. 이들이 예전에 무엇을 했는지 모르는 젊은 사람들은 그렇게만 알고 있다.

캠퍼스 그룹 사운드와는 출신 성분이 다르지만 들국화와 시나위가 활동을 중단한 것도 이 무렵이다. 1990년은 ‘한국 록이 죽었다’고 말할 수 있는 해일까. 살았든 죽었든 40대 이후 한국인의 삶이 그렇듯 세월은 빠르게 흘러갔다. 쏜살 같이. 1997년 산울림은 오랜만에 13집 [무지개]를 발표하고 공연도 가졌지만 결과는 ‘절반의 실패’였다. 세상은 많이 변해 버렸다. 이제 이렇게 그냥 끝나 버리는 것일까.

Chapter 6: 2002년
다시 한번 12년이 지난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가 한국에서 열린 해가 또다시 말띠 해였다. 12년 사이 한국의 대중음악은 ‘초토화’되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 사이 한국의 록 음악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고 실효는 별로 없는 상황이 지속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소리소문 없이 송골매에 대한 헌정 앨범 [Tribute To Songolmae With Originals]가 나왔다. 그리고 이듬 해 느닷없이 신문지상에 배철수가 송골매를 재결성한다고 말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구창모도 함께 한다는 말과 함께… 배철수의 말처럼 ‘더 추해지기 전에 마지막으로’라는 것이 계획이었다. 한때 그들의 지위를 고려한다면 참 소박한 꿈이다. 그러면 이제 그들이 원대한 꿈을 품었던 시절로 돌아가 보자. 그 전에 흰소리 하나 더 하고…

Outro: 2014년
1954년에 태어난 인물들이 환갑을 맞이한 해다. 그러나 의학의 발전과 식생활의 개선으로 인해 요즘 환갑을 맞이한 사람들은 더 이상 ‘노인’ 같지 않다. 더구나 고령화 사회가 진전됨에 따라 요즘의 60세는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젊은 것이 사실이다. 즉, 과거에는 60대 이상의 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무시할 만한 것이었으나 지금은 40%에 육박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60세의 사람이 연령의 위계서열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1960~70년대의 40세와 비슷하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대중음악계에서는 올해 환갑을 맞이한 인물이 이끄는 록 그룹 세 팀이 한 자리에 모여 연합 공연을 성공적으로 가졌다. 울림산, 송매골, 들화국 세 그룹이다. 이전 같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들이 전성기를 누린 1980년대 이들은 강한 자존심으로 서로 경원시하는 분위기조차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마음이 너그러워졌는지 이번 공연에서 이들은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었다.

사실 이들은 1990년대에는 이렇다 할 활동을 보이지 않았는데 2000년대 중반 이후 속속 재결합하면서 ‘제2의 전성기’라고 부를 만한 활발한 라이브 활동을 펼쳐 왔다. 이는 이들의 활동 못지 않게 40~50대에 접어든 팬들의 활발한 지원이 큰 몫을 했다. 특히 ‘빠줌마’라고 불리는 극성 여성 팬들은 높아진 구매력을 바탕으로 공연장을 자주 찾아 이들의 재기를 도와주었다. 북한과의 문화교류가 자연스러운 것이 됨에 따라 이들을 전혀 모르던 북한 아줌마들의 새로운 가세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

더욱 중요한 요인이 있다. 2000년대 초중반까지 전성기를 구가하던 10대 위주의 대중음악계가 2000년대 후반 이후 쇠퇴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세계 최저 수준이 된 출산율의 결과 10대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감소함에 따라 ’10대 시장’이 자연소멸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청년기부터 카드빚에 시달린 현재의 30대 이상의 계층도 구매력이 거의 없어서 이들을 대상으로 한 대중음악도 크게 위축된 지 오래다.

불행히도 최근 들어 5~60대 음악인을 중심으로 한 공연장의 열기도 다소 수그러든 느낌이 없지 않은데 이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국민연금 정책이 완전 수포로 돌아가 한때 386세대라고 불리던 초로의 세대들이 노후의 삶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분석되고 있다([남조선일보], 2014년 8월 30일). 20030825 | 신현준 homey@orgi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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