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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제이 소울스케이프(DJ Soulscape) – Lovers – 마스터플랜/EMI, 2003

 

 

꽃말: 당신은 나의 것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 하지만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상처받았다. 당신은 상처를 준다. 좋다. 어차피 그런 것이다. 우리는 상처받는 것 말고는 자신을 확인할 방법을 모르는 종족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남을 상처입히는 것이 사해동포주의로 충만한 자애로운 행위는 아니다. 세계의 평화는 남을 아프게 하는 정도의 간단한 일로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닌 것이다. 그러나 여기,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을 것 같은 음악이 있다. 힙합, 재즈, 소울, 훵크, 삼바-보싸 노바가 수프처럼 걸쭉하게 뒤섞인 DJ 소울스케이프의 이 우아한 잡탕 라운지-힙합은 오랫동안 숙성시킨 안온한 소리들을 담고 있다.

많은 이들이 바랬던 대로, 이번 음반의 대부분은 그의 ‘연주곡’만으로 채워져 있다. 더하여, 기껍게도, 보컬이 들어간 세 곡 중 두 곡은 노래다(“Confusion”의 각나그네가 별로라고 말하는 건 아니다. 다만 아무래도 소울스케이프의 곡에 엠씨잉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 플룻, 철금, 피아노와 같은 ‘가벼운’ 악기를 선호하는 손버릇은 여전하고, 아날로그 질감에 천착하는 사운드 메이킹 또한 변하지 않았다. “Summer 2002″를 장식하던 ‘카바레’ 풍의 색소폰은 “Love Is A Song”에서 재차 구슬피 운다.

변한 것도 있다. 비트는 오래 매만진 탓인지 두터워지고 몽롱해졌다. 사운드의 공간적 배치에도 좀 더 복잡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스피커 하울링의 활용이 인상적인 “Heartbeat”, “Where Are You”). 그럼에도 ― “Lover’s Funk 69” 정도를 제외한다면 ― ‘그루비(groovy)’하기보다는 차분하다. 몇몇 곡은 정서적 측면에서 RJD2와 닮았다는 생각이 언뜻 들지만, “Where Are You”에서 일그러진 바이올린 소리로 곡의 분위기를 섬세하게 바꾸는 솜씨는 온전히 그만의 것이다.

음반 발매 전 홈페이지와 온라인 음반판매점을 통해 먼저 공개된 “Love Is A Song”은 음반의 이번 지향점을 산뜻하게 요약하는 곡이다. 가벼운 힙합 비트로 분위기를 돋구고, 묵직한 베이스 샘플 위로 짤깍거리는 하이햇/심벌 비트와 함께 경쾌하고 인상적인 오르간 선율이 얹혀진다.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 무렵 색소폰의 텁텁한 연주가 절묘하게 끼어들고, 이내 두터운 현악 샘플과 영롱한 철금이 만드는 또 다른 선율이 곡을 삼키듯 뒤덮으면서 색소폰과 뒤섞인다. 그러나 여기에는 “Piano Suite/Loops Of Love”처럼 종종걸음하는 듯한 설렘이 없다. 곡의 후반부를 장식하는 싸이키델릭한 효과음은 가닿을 수 없는 아쉬움에 대한 표현인 듯 절정으로 치솟지 못하고 힘없이 가라앉는다.

이 분위기는 전작과의 세 번째 차별점, 즉 가볍고 들뜬 상큼함에서 내성적이고 섬약한 상태로 DJ의 정서가 이동했다는 점을 들려준다. “어쩌면” 리믹스 작업의 연장선상에 있는 “Jasmine”의 상큼한 우수를 판타스틱 플라스틱 머신(Fantastic Plastic Machine)의 [Too](2003)에서 느낄 수 있는 인공적인 ‘트로피컬(tropical)한’ 화사함과 구분할 수 있는 근거 또한 이 점일 것이다. 재즈풍의 “Wonderful”과 더불어 보컬이 실린 두 곡 다 ‘정통’ 스타일의 보컬을 기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소울스케이프가 ‘재현’에 매달리는 타입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고 말은 꺼냈지만, 막상 말하고 보니 너무 당연해서 객쩍다.

이 음반을 통해, DJ 소울스케이프는 가능성 있는 신인에서 자신만의 안정적인 스타일을 구현하는 DJ/프로듀서로 발돋움했다는 평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음반의 통일성과 구심력도 튼튼한 편이다. 아직까지 그는 자신의 능력을 소진하지 않았고, 불필요한 실험에 집착하지도 않는다. 마스터플랜은 자신들의 간판 스타 중 하나가 내놓은 성과물에 충분히 기뻐할 것이다.

……좋다.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 하지만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게 뭐 어쨌단 말인가. 당신 또한 그를 사랑하지만 그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고 있지 않은가. 연애란 얽히고 꼬인 찔레가시나무 같은 것일진대, 당신이 쿨하게 구는 척 한들 그걸 믿을 바보는 없다. 우리는 언제나 방금 시작했을 따름이다(“We’ve Only Just Begun”). 나는 다시 시작하겠다. 당신은? 20030817 | 최민우 eidos4@freechal.com

8/10

수록곡
1. People
2. Confusion (feat. 각나그네)
3. Heartbeat
4. Wonderful (feat. 홍보람)
5. Where Are You
6. Inevitable
7. Love Is A Song
8. Lover’s Funk 69
9. Gift
10. Jasmine (feat. 청안)
11. The Way We Were (In Love)
12. Memoria
13. We’ve Only Just Beg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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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제이 소울스케이프(DJ Soulscape) [180g Beats] 리뷰 – vol.2/no.22 [20001116]

관련 사이트
마스터플랜 공식 홈페이지
http://www.mphiphop.com/
디제이 소울스케이프 공식 홈페이지
http://www.djsoulscap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