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reets – Original Pirate Material – Atlantic/Warner, 2002 장님, 코끼리를 만진 뒤 용을 그리다 스트리츠는 마이크 스키너(Mike Skinner)의 일인 프로젝트다. 15세 때부터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이 런던 출신 백인 청년의 성공담에 대해서 굳이 다시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의 억센 영국식 억양(이를 ‘코크니 방언(Cockney Dialect)’이라 하던가)으로 내뱉는 ‘스포큰 워드(spoken word)’와 ‘플로우’ 사이 어딘가에 있는 듯한 엠씨잉에도, 툭하면 튀어나오는 추임새인 ‘Oi, Oi!’와 낯설기 그지없던 단어인 ‘geezer’에도 다들 익숙해졌다. 시간이 다소 지난 지금 돌아보면, 스트리츠의 이 음반은 통상적인 거라지/투스텝의 표현 양식을 벗어나려는 시도를 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R&B/소울의 기름진 분위기, 애시드 하우스를 근간으로 하여 각종의 언더그라운드 스타일을 뒤섞은 몽환적인 비트, 코러스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노래하는 하우스 풍 ‘디바 보컬’을 거라지/투스텝의 기본 요소라 할 수 있다면, 스트리츠의 데뷔 음반은 우선 이러한 요소들을 효과적으로 운용한다. R&B(“Has It Come to This?”), 드럼 앤 베이스(“Sharp Darts”), 레게/라가(“Let’s Push Thing’s Forward”), 훵크(“Who Got the Funk?”), 하우스(“Weak Become Heroes”) 등등의 각종 스타일은 거라지/투스텝의 기본 공식에 맞춰져 변형되고 배치된다. 여기에 더하여 그만의 독특한 조리법이 발휘된다. 미국 힙합의 단단한 다운비트를 강조하고(“Don’t Mug Yourself”, “The Irony of It All”, “Stay Positive”), 디바의 소울풀한 보컬 대신 ‘Oi, Oi!’라는 외침과 함께 쏟아져 나오는 재빠른 랩을 올려놓는다. 마지막으로, 스트리츠 특유의 싱코페이션 강한 비트와 굳건한 베이스라인, 날카로운 현악 사운드가 밑에 깔린다. 자, 이제, Enter. 이도저도 아닌 혼합물이 아니라 어디에나 속하면서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특한 ‘흑인음악’ 음반이 나왔다. 어떤 이들은 “The Irony of It All”에서 보이는 우 탱 클랜(Wu Tang Clan)에 대한 ‘오마주’를 근거로 이것을 힙합이라 부를 것이고, 어떤 이들은 “Has It Come to This?”의 매끄럽고 소울풀한 분위기를 근거로 이것을 R&B라 부를 것이며, 어떤 이들은 각종의 샘플과 비트를 탁월하게 엮어내는 솜씨를 근거로 이것을 일렉트로니카라 부를 것이다. 무엇이건간에, 거라지/투스텝이라는 스타일에 매어놓을 수는 없다. 더불어 이 음반의 의의를 말할 때 래퍼의 ‘일관되고 정리된’ 의식을 거라지 랩의 영역에 최초로 도입했다는 평가를 뺄 수는 없을 것이다. TV와 플레이스테이션에 둘러싸인 채 불안한 복지제도와 높은 실업률 속에서 방황하는 지저분한 런던 거리의 청년들, ‘geezer’들의 무료한 의식을 그의 가사는 노골적으로, 동시에 차분히 응시(gaze)한다. 클럽에서 새벽까지 놀다 나와도 무료할 따름이고(“Geezer’s Need Excitement”), 알콜과 정크 푸드로 몸을 망쳐가지만 그렇다고 다른 출구가 있는 것도 아니다(“Too Much Brandy”). 배신한 연인 앞에서도 ‘bitch’란 욕 한마디 못한 채 쓸쓸히 돌아설 뿐이다(“It’s Too Late”). “Be brave, clench fists”(“Turn The Page”)라며 호기있게 음반의 문을 열고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라는 격려의 말(“Stay Positive”)로 마무리하는 음반의 내용치고는 어둡다. 다만 그 방관자적인 시선에 이해와 공감이 담겨 있다는 점을 말하지 않으면 공평하지 않을 것이다. [빌리지 보이스(The Village Voice)]에서 적절히 지적한 바, 그는 ‘영국의 에미넴’이 아닌 것이다. 투스텝/거라지의 발전적 계승과 새로운 스타일에 대한 갈망 사이에서, 스트리츠는 R&B, 소울, 힙합, 일렉트로니카 팬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비범한 혼합물을 내놓았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잡다하고 파편적인 요소들을 모아 새로운 음으로 바꿔 귀에 들이밀 때, 요즘같은 ‘하이브리드’의 시대에 경이로움을 느끼기는 어려울 것이다. ‘최신 유행 조류의 서막을 장식하는 음반’이라는 말로 맺기 싫은 것도 그 때문이다. 제목의 의미에 딱 들어맞는 음반이다. 20030814 | 최민우 eidos4@freechal.com 9/10 수록곡 1. Turn The Page 2. Has It Come to This? 3. Let’s Push Thing’s Forward 4. Sharp Darts 5. Same Old Thing 6. Geezer’s Need Excitement 7. It’s Too Late 8. Too Much Brandy 9. Don’t Mug Yourself 10. Who Got the Funk? 11. The Irony of It All 12. Weak Become Heroes 13. Who Dares Wins 14. Stay Positive 관련 글 영국 거라지 랩(UK Garage Rap)에 관한 오해와 진실 – vol.5/no.16 [20030816] More Fire Crew [More Fire Crew CV] 리뷰 – vol.5/no.16 [20030816] Streets [Original Pirate Material] 리뷰 – vol.5/no.16 [20030816] Ms Dynamite [A Little Deeper] 리뷰 – vol.5/no.17 [20030901] Dizzee Rascal [Boy In Da Corner] 리뷰 – vol.5/no.17 [20030901] Craig David [Born To Do It] 리뷰 – vol.3/no.16 [20010816] 브릿 합(Brit-Hop) 미국을 구하러오다?: 루츠 마뉴바(Roots Manuva)의 미국 상륙에 즈음하여 – vol.4/no.4 [20020216] 브리티쉬 힙합은 존재하는가? – vol.2/no.3 [20000701] 관련 사이트 스트리츠 공식 사이트 http://www.the-streets.co.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