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re Fire Crew – More Fire Crew CV – Go Beat, 2002 새로운 불을 찾아서 소우 솔리드 크루(So Solid Crew)가 2년 전 주류 시장에 입성한 이후 영국 거라지(UK garage) 씬은 참으로 급격한 변화와 혼란의 시기를 거쳐왔다. 이 ‘거라지 격동기’의 주인공은 단연 엠씨들이다. 런던의 해적 라디오를 통해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오는 이들 엠씨 중에는 스트리츠(the Streets)와 미즈 다이너마이트(Ms Dynamite)처럼 이미 스타덤에 올라선 이들도 있고, 여전히 런던 이스트 엔드(East End)를 전전하며 성공의 기회를 노리는 소년들도 있다. 온갖 이름의 엠씨 패거리와 엠씨들이 주류 음반 시장과 거리를 오가며 무자비한 랩을 퍼부어 대고 잡다한 사운드 실험을 진행 중인 오늘의 영국 거라지 랩(garage rap)은 더 이상 매끈한 보컬과 소울 향취로 무장한 투스텝/거라지(two step/garage)와 공통 분모를 찾기 어려운 단계에 이른 듯 하다. 모 파이어 크루(More Fire Crew)는 거라지 랩이 주류 시장 본격 상륙에 앞서 내놓은 또 다른 비장의 무기다. 20대 초반의 이스트 엔드 출신 엠씨 오지 비(Ozzie B.), 리썰 비(Lethal B), 니코(Neeko)와 네 명의 디제이로 구성된 모 파이어 크루는 2년 전 발표한 데뷔싱글 “Oi!” 단 한 곡으로 거라지 랩 벼락스타로 떠올랐다. 프레쉬(Fresh) FM, 데자 부(Deja Vu) FM 같은 간판 해적 라디오를 순식간에 강타한 이 곡은 이듬해에 전국 방송을 타며 급기야 영국 팝 싱글차트 10위 내에 진입하는 돌풍을 일으켰다. 히트곡 하나로 단숨에 정규 음반 발매 기회를 잡은 모 파이어 크루는 마침내 올해 1월 고 비트(Go Beat) 레이블을 통해 데뷔앨범 [More Fire Crew CV]를 내놓게 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Oi!”는 이 데뷔앨범의 전체 색깔을 규정하고있다. “Intro”에서 이들 엠씨 트리오는 “원 히트 원더(one hit wonder)”를 경계하고 있는데, 오히려 지나치게 몸을 사린 나머지 이 앨범은 “Oi!”에서 터득한 ‘성공 코드’에 안주한 듯한 인상을 준다. 사실 “Oi!”는 그 자체로 거라지 랩 인스턴트 클래식이자 교과서에 다름없다. 멜로디가 부재한 가운데 지속되는 둔중한 베이스라인, 날카로운 드럼 프로그래밍과 미니멀한 리듬은 기존 거라지 랩 정석을 고스란히 따르고 있는데, 의외로 청자들을 지겹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모 파이어 크루는 특유의 랩으로 창조한 ‘훅 아닌 훅’으로 자칫 맥빠질 수 있는 사운드를 즐겁게 변모시킨다. 세 엠씨가 돌아가며 마치 퍼커션 타격처럼 탁탁 세 단위로 끊어 치는 묘한 랩은 강한 영국 액센트와 함께 시종 반복되며 흥을 돋군다. 가령 중간 부의 “… Oi! ose zat N double E(Oi, who’s that N Double E). Oi! ose zat N double E… The one with the thugged out men-tal-i-tee(mentality)… ” 같은 규칙적인 ‘라임 아닌 라임’은 받아쓰면 엉터리 같지만 막상 리듬을 타며 반복될 경우 기막히게 작동한다. 대부분의 곡은 이러한 “Oi!”의 래핑 규칙을 답습하고 있는데, 사운드의 근간을 이루는 리듬 프로그래밍 또한 예외가 아니다. 프로듀스를 담당한 플래티넘 45(Platium 45) 팀은 라가, 힙합 그리고 정글에서 뽑아낸 음원으로 사운드의 뼈대를 구축하고 있다. 물론 특유의 ‘하이햇(hi-hat)-스네어(snare)-킥(kick)’의 연이은 반복 리듬으로 분명 중독적인 그루브를 제공하지만 멜로디가 부재한 채 60여분 이상 이어질 경우 듣기가 그다지 편하지는 않다. 가령 엠씨잉 조차 훅을 배제한 “Denial”이나 “Politics”는 그 불편함이 절정에 달한다. 하지만 반복해 들으면, 상당수의 트랙이 비슷한 리듬 패턴과 엠씨잉 속에서도 적절한 변주를 무난히 수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통 힙합에 가까운 파격을 단행한 “Intro”는 물론이고, 래핑 속도를 늦추고 R&B/소울의 향취를 가미한 “Soldiers Fallen”과 “Never Trust”는 미국 흑인음악에 길들여진 청자들도 거부감이 덜할 것이다. 물론 올드 스쿨 디트로이트 테크노 사운드 위에 여성 보컬 루프를 멜로디로 얹은 뒤 중반부부터 속도감 있는 랩을 쏟아 붓는 “Insecurity”도 흠잡을 데 없는 곡이다. 하지만 ‘킬러 트랙’은 단연 롤 딥 크루(Roll Deep Crew) 멤버들이 함께 작업한 “Lock Down”과 “Still The Same”이다. 와일리(Wiley)가 프로듀스한 전자가 롤 딥 크루의 수작 “Creeper”를 닮은 날카로운 베이스 라인을 전면에 내세운다면, 17세에 불과했던 디찌 라스칼(Dizzee Rascal)이 참여한 후자의 곡은 업 템포의 뒤뚱거리는 비트가 묘한 그루브를 생성하는 가운데 디찌 라스칼이 특유의 ‘히스테리성’ 라임으로 객기를 부리고 있다. 실망스럽게도 몰아치는 빠른 래핑, 파격적인 단어 사용과 언어 유희의 배후에 담긴 가사는 기존 거라지 랩의 그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라이벌 패거리 혹은 적들(the haters)은 징계되고 여성들은 희롱 당하며 갱스타들은 칭송된다. “Back Then”에서 경찰의 합법을 가장한 폭력에 태클을 건 것을 제외하면, 새로운 것은 전혀 담고 있지 않다. 이들 트리오가 빼어난 래핑 기술(skill)을 지닌 엠씨들임이 분명하기에, 그 틀을 채우는 가사의 구태의연함은 아쉬울 따름이다. 벼락 히트곡 “Oi!”의 성공에 기대어 앨범을 만든 것은 ‘안전빵’ 전략이었겠지만, 지나친 무사안일주의와 그에 따른 다소 단조로운 사운드 프로덕션과 엠씨잉은 결국 기대만큼의 상업적 성공으로 연결되지 못 했다. 기왕이면 영미권 힙합의 아우라를 보다 직접적으로 수용해, 아예 ‘거라지 합(garage-hop)’같은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기존 거라지 랩의 상투적 공식에 맞선 스트리츠의 대담한 진보 혹은 미즈 다이너마이트의 변절에 가까운 변신이 그들을 스타덤에 올려놓은 걸 상기하면, 마찬가지로 막 데뷔앨범을 내놓은 모 파이어 크루 역시 보다 색깔이 분명한 사운드 모험을 감행했어야 했다. 이번 여름 동료지기 디찌 라스칼(Dizzee Rascal)의 데뷔앨범을 접하며 이제서야 자신들의 작은 실수를 깨달았다면 이미 늦은 건 아닐까. 20030814 | 양재영 cocto@hotmail.com 7/10 수록곡 1. Intro 2. Oi! 3. Back Then (feat. Million Dollar Dream) 4. Over Now (feat. Knowledge) 5. Insecurity 6. Lock Down 7. Smokin’ 8. Burnin You (feat. Maxwell D & Wiley) 9. Still The Same (feat. Dizzee Rascal) 10. Denial 11. Never Trust 12. Politics 13. Popular 14. Haters (feat. Jookie Mundo, P & Million Dollar Dream) 15. Soldiers, Fallen (feat. N’Jay) 16. Over Now (2003 Version) (Bonus Track) 관련 글 영국 거라지 랩(UK Garage Rap)에 관한 오해와 진실 – vol.5/no.16 [20030816] More Fire Crew [More Fire Crew CV] 리뷰 – vol.5/no.16 [20030816] Streets [Original Pirate Material] 리뷰 – vol.5/no.16 [20030816] Ms Dynamite [A Little Deeper] 리뷰 – vol.5/no.17 [20030901] Dizzee Rascal [Boy In Da Corner] 리뷰 – vol.5/no.17 [20030901] Craig David [Born To Do It] 리뷰 – vol.3/no.16 [20010816] 브릿 합(Brit-Hop) 미국을 구하러오다?: 루츠 마뉴바(Roots Manuva)의 미국 상륙에 즈음하여 – vol.4/no.4 [20020216] 브리티쉬 힙합은 존재하는가? – vol.2/no.3 [20000701] 관련 사이트 More Fire Crew의 공식 페이지 http://www.morefirecrewonlin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