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영국 혹은 런던 흑인 음악의 최신 조류는 아마도 ‘블랙트로니카(blacktronica)’와 ‘거라지 랩(garage rap)’으로 대별될 것이다. 하지만 블랙트로니카의 간판 격인 스페이섹(Spacek)의 미래지향적 소울 음악보다, 스트리츠(the Streets)와 디찌 라스칼(Dizzee Rascal)의 걸쭉한 입담과 장광설을 원하는 청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걸 보면 대세는 역시 후자 쪽인 것 같다. 특히 최근 영국 시장에 정규 데뷔음반 [Boy In Da Corner]를 내놓은 ‘소년 엠씨’ 디찌 라스칼은 단연 화제 거리다. 상업적 성공과 영국 미디어의 호들갑은 말할 것도 없고, 피치포크미디어(www.pitchforkmedia.com)같은 미국 웹진까지 영국에서도 발매가 안 된 이 앨범에 대해 지난 7월초에 일찌감치 찬사를 쏟아 부었다.

영국에서의 열풍에도 불구하고 거라지 랩 신성 디찌 라스칼은 미국 시장에서는 여전히 생소한 이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라지 랩 자체는 이미 이곳에서도 시장 타진 단계를 거친지 오래다. 백인 청년 스트리츠의 데뷔앨범 [Original Pirate Material]은 비록 본국에서만큼 큰 성공을 거두진 못했지만, 미국 언디 힙합 매니아와 평자들로부터 지난 해 하반기에 열광적 지지를 얻었다. 한편 젊은 흑인 여성 미즈 다이너마이트(Ms Dynamite)는 아예 미국 시장을 겨냥한 ‘미국 힙합’ 스타일의 데뷔음반 [Little Deeper]를 발매해 상업적으로도 적잖은 재미를 봤다. 최근에 음반을 발매한 오디오 불리스(Audio Bullys)까지 포함해, 바야흐로 또 다른 하지만 전혀 새로운 ‘브리티쉬 인베이젼(British Invasion)’ 가능성까지 예고하는 이들도 있을 정도다.

아직 상업적으로나 음악적으로 검증도 안된 20세 안팎의 이들 영국 젊은이들이 내놓은 데뷔앨범에 대한 무조건적인 호평과 지나친 관심은 미국 주류 흑인 음악의 전반적인 침체를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적절한 시기에 새로운 스타일과 정체성으로 무장한 영국 거라지 랩을 대안적 흑인 음악 상품으로 미국 음반 산업과 미디어가 열렬히 반기는 것은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최근의 거라지 랩을 향한 노골적인 열광과 동경은 한편으로 이 새로운 음악에 대한 여전한 오해와 왜곡을 동반한다. 이는, 수년에 걸쳐 진행된 영국 거라지 랩의 진화 과정에 대한 제대로 된 소개는 부재한 채, 지금 부상하는 젊은 엠씨들의 정규 데뷔앨범이 급작스레 먼저 쏟아져 들어온 탓이기도 하다.

UK Garage Rap vs. UK Two-Step/Garage
거라지 랩 열풍은 때늦은 영국 투스텝/거라지(UK two-step/garage)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을 동반하고 있다. 사실 앞서 언급한 대부분의 영국 엠씨들은 거라지 랩보다 오히려 투스텝/거라지 뮤지션으로 미국에서 소개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심지어 ‘거라지’, ‘투스텝’, ‘거라지 랩’은 모두 하나의 음악 스타일을 칭하는 세 가지 다른 표현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물론 넓게 보자면 이 엠씨들은 영국 투스텝/거라지 씬의 비호 아래 성장한 게 분명하지만, 투스텝/거라지의 최근 진화 혹은 분화 과정은 스트리츠, 디찌 라스칼 혹은 모 파이어 크루(More Fire Crew) 등을 광의의 투스텝/거라지 뮤지션보다는 거라지 래퍼 혹은 거라지 엠씨로 구체적으로 정의하길 요구한다.

사실 영국의 레이브(rave) 문화는 미국의 하우스(house) 전통과 달리 애초부터 엠씨가 중요한 역할을 차지했었다. 가령, 1980년대 후반 애시드 하우스(acid house)가 폭발하고 댄스홀(dancehall) 키드들이 휩쓸리면서, 레벨 엠씨(Rebel MC), 데몬 보이즈(Demon Boyz), 라가 트윈스(Ragga Twins) 같은 엠씨들을 중심으로 소위 ‘하이브리드 레이브 랩(hybrid rave-rap)’이 한동안 존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의 위치는 철저한 조역에 불과했다. 단지 디제이를 찬양하고 청중을 선동하는 파편적인 단어의 나열만이 그들의 임무였던 것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영국에서 거라지가 급 부상하면서 엠씨들은 차츰 보다 큰 비중을 부여받게 된다. R&B와 소울, 레게, 댄스홀(dancehall), 드럼앤베이스(drum’n’bass) 등 잡동사니 음원을 재조합하고 단단한 베이스 라인을 구축한 뒤, 매끄러운 보컬 코러스나 반복적인 외마디 엠씨잉을 덮어씌운 이 새로운 댄스 음악은 엠씨 크리드(MC Creed) 같은 스타급 엠씨를 초기에 배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더듬거리고 반복되는 외마디 엠씨잉에 관심을 갖는 클러버들은 여전히 소수에 불과했었다.

원조 거라지가 1990년대 후반 미국 주류 R&B/힙합을 지배하던 마이크로 비트와 드럼앤베이스를 보다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소위 투스텝이라는 새로운 하위 장르가 출현한다. 사실 언제부터 투스텝과 거라지가 ‘동의이음어’가 되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아마도 하드코어 스피드 거라지(hardcore speed garage)가 근년에 자취를 감추고, 한편으로 보다 속도를 늦추고 미국 R&B/소울의 향취를 한층 강화한 투스텝이 대세를 이루면서 ‘투스텝/거라지’라는 표현이 보편화되지 않았나 추측을 해본다.

근년에 이르러 드림 팀(Dreem Team)을 필두로 엠제이 콜(MJ Cole), 제드 바이어스(Zed Bias), 아트풀 다저(Artful Dodger), 우키(Wookie) 등이 투스텝/거라지의 간판 프로듀서 혹은 뮤지션으로 떠올랐고, 크레익 데이비드(Craig David)는 미국 시장에 진출해 R&B 차트를 점령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한편, 보컬 코러스 혹은 노래 뿐 아니라 엠씨잉 역시 투스텝/거라지 음악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가 되면서, 래퍼들 혹은 엠씨들 또한 투스텝/거라지 판에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20030816104551-(1)SoSolidCrew표지의 소우 솔리드 크루(So Solid Crew)
So Solid Crew – “They Don’t Know”
([They Don’t Know](2001) 중에서)

이 엠씨들이 투스텝/거라지 판의 주체 혹은 독자적 세력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2년여 전쯤일 것이다. 이들은 외마디의 무의미한 반복적 코러스에 만족하지 않고 실제로 버스(verse)를 쓰기 시작했고, 나아가 런던 내의 출신 지역 혹은 에쓰니씨티(ethnicity)를 기준으로 패거리를 형성하고 보다 조직적인 음악 활동을 하게 된다. 말하자면 미국식 ‘랩 클랜(rap clan) 모델’을 과감히 적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소우 솔리드 크루(So Solid Crew)를 필두로 지케이 올스타(GK Allstars), 뎀 롯(Dem Lott), 네이스티 크루(Nasty Crew), 패이 애즈 유 고(Pay As U Go) 같은 엠씨 패거리가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왔고, 이들은 수적으로는 오히려 디제이들을 압도하면서 순식간에 투스텝/거라지의 또 다른 주연으로 나서게 되었다.

투스텝/거라지의 이 새로운 조류는 기존 역할관계를 역전시키면서 철저히 엠씨 중심의 음악으로 발전한다. 이제 장광설 혹은 수다를 담은 엠씨잉이 사실상 감상의 키포인트가 되고, 디제이/프로듀서는 ‘반주자’ 역할에 보다 충실하게 된다. 한편으로 기존 투스텝/거라지 뮤지션들과 달리 이 엠씨들은 더 이상 클럽에 의존하지 않는다. 사실, 파편적인 코러스가 아닌 본격적인 엠씨잉은 보다 의식적이고 공격적인 가사 표현을 의미하는 것이다. 더욱이 패거리 중심의 활동은 미국식 클랜을 모방한 것이기에 이들 ‘과격’ 엠씨를 ‘댄스 클럽’이 반길 리 만무하다. 따라서 지난 2년여간 대부분 패거리들은 런던의 해적 라디오나 해적 음반가게들을 중심으로 조잡한 싱글들을 적극적으로 유통하면서 자신의 지명도를 높이는 데 주력해 왔다.

이들 새로운 엠씨 패거리의 여태까지의 진화 혹은 분화 과정으로 판단하건대, 이제 이들은 기존 투스텝/거라지로부터 너무도 먼길을 달려온 것 같다. 크레익 데이비드나 엠제이 콜 같은 투스텝/거라지 스타들과 엠씨 패거리들 사이의 좁힐 수 없는 음악적 간극은, 결국 후자를 더 이상 투스텝/거라지 일반에 묶어두기 보다는 거라지 랩이라는 새로운 스타일의 주체로 구분하기를 재촉한다. 물론 ‘거라지’ 랩이라는 표현 자체가 여전히 이들의 음악에 대한 적절한 언명이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UK Garage Rap vs. Brit-Hop
엠씨 패거리 혹은 패거리 출신 엠씨들이 최근 영국 주류 음반시장 전면에 나서면서 거라지 랩은 진정 독자적 행보를 걷는 듯 하다. 사실 소우 솔리드 크루가 2년 전 “21 Seconds”와 “They Don’t Know”로 영국 팝 싱글 차트를 정복할 때만 해도, 이 곡들은 그저 또 다른 투스텝/거라지 히트곡 이상의 평가를 받지 못 했다. 하지만 30여명이 넘는 이 대규모 패거리는 하드코어 레이브와 힙합, 라가(ragga)의 베이스라인을 결합한 공격적인 사운드와 거칠 것 없는 엠씨잉으로 이미 거라지 랩의 새로운 부상을 예고하고 있었다. 더욱이 같은 해 10월 그들의 공연에서 발생한 총격 사고는 소우 솔리드 크루를 ‘영국식 갱스타 래퍼’로 각인하기에 충분했다.

모 파이어 크루의 ‘라가/힙합/투스텝 짬뽕’ “Oi!”가 팝 싱글 차트를 기습한 2002년은 한편으로 스트리츠와 미즈 다이너마이트가 화려한 스타로 변신한 해이기도 하다. 발매 전부터 화제의 대상이던 마이크 스키너(Mike Skinner) 혹은 스트리츠의 데뷔앨범 [Original Pirate Material]은 지난해 말 영미권 대중음악 미디어 대부분이 ‘올해의 앨범’ 중 하나로 꼽을 정도로 유난한 조명을 받았다. 특히 이 앨범은 이전까지 싱글이나 컴필레이션에 한정되어 있던 거라지 랩이 정규 앨범으로도 충분히 상업적으로나 음악적으로 성공할 수 있음을 입증해 보였다.

스트리츠의 데뷔앨범이 엠씨잉이나 사운드 프로덕션 모두 투스텝/거라지에서 진일보한 거라지 랩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면, 미즈 다이너마이트의 데뷔앨범 [Little Deeper]는 거라지 랩이 더 이상 기존 투스텝/거라지의 범주에 머물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듯 하다. 스티키(Sticky)와 함께 투스텝/거라지 고전 “Booo!”를 내놓으며 클럽 가에 이름을 등록했던 미즈 다이너마이트는 정규 데뷔앨범에서 놀라운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로린 힐(Lauryn Hill)과 루츠 마누바(Roots Manuva)의 행복한 결합이라는 평가에 걸맞게, 이 앨범은 영미권 힙하퍼들과 흑인음악 팬들로부터 폭넓은 사랑을 받았지만, 동시에 골수 투스텝/거라지 매니아들에게는 큰 실망을 안겨 주기도 했다.

20030816104551-(2)MoreFireCrew올해 초 정규 데뷔앨범을 발매한 모 파이어 크루(More Fire Crew)
Sticky & Ms Dynamite – “Booo!”
([Crews Control](2002) 중에서)

미즈 다이너마이트가 지난해말 머큐리 음악 상(Mercury Music Prize)을 수상하면서 사실상 거라지 랩은 ‘지하세계’ 꼬리표를 완전히 떼어내었다. 올해 초에는 모 파이어 크루가 데뷔앨범 [More Fire Crew CV]를 내놓았고, 가장 최근에는 롤 딥 크루(Roll Deep Crew) 출신으로 XL 레이블에 영입된 디찌 라스칼이 드디어 화려한 신고식을 치렀다. 패이 애즈 유 고 패거리의 수장 와일리(Wiley)나 엔드(the Ends) 패거리의 근래 활약까지 감안하면 실로 거라지 랩의 앞길은 전혀 거칠 것이 없어 보인다.

최근 쏟아져 나오는 거라지 래퍼들의 앨범은 대부분 엠씨잉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한편으로 기존 투스텝의 유연한 소울 감성을 지양하고 보다 ‘무자비하고’ 단단한 비트 중심의 프로덕션을 점차 선호하는 편이다. 기존 투스텝/거라지와 거라지 랩의 연계 자체가 더 이상 무의미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은 바로 이런 연유다. 덕분에 거라지 랩은 기존 영국 힙합, 즉 브릿 합(Brit-Hop)과 차츰 동화되는 게 아닌가 하는 때 이른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미즈 다이너마이트의 [Little Deeper]는 말할 것도 없고, 실제로 모 파이어 크루의 [More Fire Crew CV]나 디찌 라스칼의 [Boy In Da Corner]는 브릿 합의 영향을 어느 정도 수용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거라지 래퍼들은 런던의 해적 라디오에서나 들을 법한 싸구려 댄스 비트와 로파이(lo-fi) 프로덕션을 여전히 선호한다는 점에서, 댄스홀 혹은 라가의 직접적인 영향을 미국 힙합에 녹여낸 듯한 기존 브릿 합 사운드와는 여전히 거리를 두는 듯 하다.

무엇보다 양자간의 가장 큰 차이는 엠씨잉 자체에 있다. 브릿 합 엠씨 대부분이 자메이칸 토스트(toast)를 노골적으로 빌리되 리듬을 타는 라임에 여전히 천착한다면, 거라지 래퍼들은 기본적으로 ‘텍스트 토크 엠씨잉(text-talk MCing)’을 특징으로 한다. 이들의 주무기는 의도적인 라임을 지양한, 빠르게 몰아치는 구어체의 ‘침튀기는’ 달변이다. 덕분에 각 개인 엠씨 특유의 맛깔스러운 어법이 거라지 랩 감상의 가장 큰 묘미가 된다. 스트리츠나 모 파이어 크루의 엠씨잉에서 엿보이듯이, 이들의 전형적인 영국식 액센트와 발음은 예전에 미국 힙합이나 브릿 합에서는 들을 수 없던 것이다. 특히 거라지 래퍼들이 특유의 액센트로 ‘gutter’, ‘stinking’, ‘disgusting’, ‘thugsy’ 같은 과장되면서도 심술궂은 단어들을 구사하며 목구멍을 꽉꽉 채우는 랩을 할 때는 듣는 재미가 최고조에 달한다.

Garage Rap의 미래
거라지 랩은 투스텝/거라지의 경계를 확장하고 동시에 브릿 합의 영향을 창조적으로 흡수하면서, 이제 독특한 음악적 스타일과 태도로 거듭나고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순탄하지만은 않다. 특히 그들의 랩을 채우는 가사나 음악외적인 사건들 때문에 거라지 래퍼들은 종종 ‘공공의 적’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사실 거라지 랩의 가사는 대부분 폭력과 성적인(sexual) 복수, 개인의 개인에 관한 무조건적인 적대감을 주 내용으로 한다. 물론 그러한 분노가 영국 사회에 대한 원형적인 불만으로부터 비롯된 것은 사실이다. 노동당 정부에 대한 불신, 만성 불경기, 공공 기관 노동자의 파업, 극우 정당의 부상, 무엇보다 팽배한 인종간 긴장 등 이 모든 상황은 런던 하층계급 출신이 대부분인 이들 거라지 래퍼에게 적잖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감정적 분노와 사회적 좌절을 표출하는 방식은 1970년대 중, 후반 펑크 밴드의 그것과는 다소 다르다. 즉, 거라지 래퍼들은 범죄에 대한 개인적 환상이나 스타덤에 대한 동경에 만족하며, 정치적 영역에 대해서는 아예 방관하는 편이다. 따라서 그들의 엠씨잉은 언어적 유희와 독특한 어법을 통해 듣는 즐거움은 주지만 그 이상의 함의는 찾기 어렵다.

한편 상당수의 거라지 랩 패거리들은 미국식 갱스타 래퍼나 그 패거리의 태도와 행동을 노골적으로 차용하길 즐긴다. 덕분에 패거리간의 긴장과 갈등은 아슬아슬하기 그지없다. 심지어 엠씨잉을 통한 ‘비프(beef)’ 차원을 넘어 물리적 폭력과 충돌도 빈번하다. 앞서 언급한 소우 솔리드 크루 공연의 총기 사고는 물론이고, 최근 롤 딥 크루 출신 디찌 라스칼이 칼에 찔린 사건의 배후에도 소우 솔리드 크루가 있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영국 문화 장관(Culture Secretary) 킴 하웰스(Kim Howells)가 거라지 랩 간판 패거리 소우 솔리드 크루를 “마초 멍청이 래퍼들(macho idiot rappers)”이라고 비난한 것은 기성 세대 혹은 주류 사회의 거라지 랩에 대한 기본적인 입장을 대변하고도 남는다.

20030816104551-(3)GarageCompil거라지 랩 컴필레이션 앨범 [Crews Control](좌)과 [Garage Rap Vol.1]
GK Allstars – “Garage Feeling”
([Garage Rap Vol.1](2002) 중에서)

런던 클럽 가의 거라지 랩에 대한 배척 또한 날로 심화되고 있다. 이스트 런던의 스트랫포드 렉스(Stratford Rex) 같은 클럽을 제외하면, 대부분 클럽은 잦은 폭력 사고를 이유로 ‘거라지 나이트’ 주최를 꺼리는 추세다. 거라지 랩을 흔히들 ‘스트리트 거라지(street garage)’라고 부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덕분에 이들 패거리는 최근까지도 린스(Rinse) FM이나 데자 부(Deja Vu) FM 등 해적 라디오와 블랙마켓 레코드(Blackmarket Records) 같은 거라지 랩 전문 음반 가게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거라지 랩에 대한 이러한 적대적 환경은 때론 다소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음반 산업이 거라지 래퍼들을 대담히 영입하고 마케팅 하는데 호재로 작용하기도 한다. 가령 디찌 라스칼이 칼에 찔리는 사고가 음반 발매 2주전에 발생한 것에 대해 ‘음모론’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무엇보다 거라지 랩의 언더그라운드 생산 메커니즘은 이 새로운 음악 스타일이 당분간 사그러들지 않을 것임을 보여준다. 실제로 런던의 해적 라디오는 거라지 엠씨 지망생들에게는 보고(寶庫)와도 같다. 라가와 가빠(gabba)부터 최근 유행하는 일렉트로(electro)와 미국식 더티 사우쓰(Dirty South) 힙합에 이르는 다양한 음원을 조합한 온갖 비트 실험이 아무 여과 없이 방송을 타고 있다. 덕분에 이들 엠씨 지망생은 심지어 싸구려 신쓰 인스트루멘탈까지 솔로 프리스타일이나 로파이 싱글 제작에 마음껏 활용하고 있다. 거라지 랩을 내건 잡다한 해적 음반들이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Outro
사실 투스텝/거라지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에 앞서 거라지 랩 음반들이 미국 시장에 먼저 들어오면서 투스텝/거라지와 거라지 랩에 대한 명확한 구분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게 지금 이곳의 현실이다. 게다가 영국 힙합 혹은 브릿 합에 대한 본격적인 소개가 되기 전에 거라지 랩이 유입되면서, 심지어 거라지 랩을 브릿 합과 동일시하는 이들도 있다. 이는 국내 청자들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투스텝/거라지와 브릿 합을 양 축으로 삼아 지금까지 거라지 랩을 비교, 논의한 것은 바로 이런 오해들을 바로잡기 위함이다.

거라지 랩의 사운드 진화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 지 여전히 오리무중이기에, 이제 막 주류 음반시장에 부상한 거라지 랩의 생존 가능성은 참으로 점치기 어려운 듯 하다. 하지만 스트리츠에서 디찌 라스칼에 이르는 거라지 랩 스타들의 범상치 않은 데뷔음반으로 보건대 최소한 거라지 랩은 영미권 대중음악의 최신 트렌드로 당분간 적잖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것이다. 그래서 웨이브의 이번 거라지 랩 특집은 시류에 편승한 것이기보다, 새로운 대중음악 조류에 대한 참으로 시의 적절한 소개와 평가가 아닌가 싶다. 20030814

부록: ‘핵심 체크’ 거라지 랩 컴필레이션 앨범
이번 특집에서 리뷰되는 앨범들을 포함한 소수의 음반을 제외하면 여전히 거라지 랩 정규 앨범을 찾기는 힘든 편이다. 사실 상당수의 거라지 래퍼들은 여전히 수면 아래에서 부상을 기다리는 상태다. 소우 솔리드 크루가 최고의 거라지 랩 패거리라는 이유로 싱글 모음에 가까운 그들의 2년 전 공식 데뷔앨범 [They Don’t Know](2001)를 구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보다는 양질의 거라지 랩 컴필레이션을 들어보는 것이 훨씬 좋은 방법이다. 여기에선 이미 고전이 된 거라지 랩 ‘명곡’들이 대거 포진한 2장의 컴필레이션 앨범을 소개하고자 한다.

1. [Crews Control](2002, Warner)
영국 워너(Warner)에서 출시된 음반으로 2장의 시디에 무려 40곡이 들어있다. 곡을 하나씩 뜯어보면 엄밀한 의미의 ‘거라지 랩 정선’은 아니라고 볼 수도 있지만, 패이 애스 유 고와 지니어스 크루(Genius Cru)부터 소우 솔리드 크루까지 총 망라된 리스트는 실로 화려하기 그지없다. 앨범을 여는 하틀리스 크루(Heartless Crew)의 “The Heartless Theme”, 지니어스 크루의 “Course Bruv”, 퍼플 헤이즈(Purple Haze)의 “Messy”는 거라지 랩 입문을 위한 필청곡이다. 물론 모 파이어 크루의 “Oi!”, 미즈 다이너마이트의 변절하기 전 목소리를 담은 “Booo!” 역시 보장된 거라지 랩 명곡들이다.

2. [Garage Rap Vol.1](2002, Eastside)
거라지 랩 가이드로 단연 최고의 앨범이라 할 수 있다. [Crews Control]이 방대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선곡의 불균형으로 인해 곡을 골라듣는 노력을 감수해야 한다면, [Garage Rap Vol.1]은 한 장의 앨범에 보다 최신판의 우수한 거라지 랩 싱글 18곡을 엄선해 놓았다. 전문 레이블답게 이스트사이드(Eastside)는 뎀 롯, 스티키, 퍼플 헤이즈 등 실력파 거라지 래퍼들의 곡을 적절히 배치해 최근 조류를 한 장의 앨범으로 어느 정도 감지하게 한다. 그 중에서도 와일리와 롤 딥(Roll Deep)의 “Terrible”과 지케이 올스타의 “Garage Feeling”은 압권이다.

관련 글
영국 거라지 랩(UK Garage Rap)에 관한 오해와 진실 – vol.5/no.16 [20030816]
More Fire Crew [More Fire Crew CV] 리뷰 – vol.5/no.16 [20030816]
Streets [Original Pirate Material] 리뷰 – vol.5/no.16 [20030816]
Ms Dynamite [A Little Deeper] 리뷰 – vol.5/no.17 [20030901]
Dizzee Rascal [Boy In Da Corner] 리뷰 – vol.5/no.17 [20030901]
Craig David [Born To Do It] 리뷰 – vol.3/no.16 [20010816]
브릿 합(Brit-Hop) 미국을 구하러오다?: 루츠 마뉴바(Roots Manuva)의 미국 상륙에 즈음하여 – vol.4/no.4 [20020216]
브리티쉬 힙합은 존재하는가? – vol.2/no.3 [20000701]

관련 사이트
투스텝/거라지 인터넷 라디오
http://www.majorfm.com
So Solid Crew의 공식 페이지
http://www.sosolid.com/
The Streets의 공식 페이지
http://www.the-streets.co.uk/
Ms Dynamite의 공식 페이지
http://www.msdynamite.co.uk/
More Fire Crew의 공식 페이지
http://www.morefirecrewonlin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