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는 브리더스가 드디어 오랜 침묵을 깨며 음반을 냈고 프랭크 블랙은 백밴드 캐쏠릭스(The Catholics)와 더불어 여전히 다산(多産)에다 분주한 일정에 쫓겨다니는 가운데, 올 여름에는 마침내 픽시스의 재결합설마저 떠돌면서 팬들의 분위기는 한껏 치솟아 있다. 쇠는 달구어져 있을 때 때리라는 말도 있으니, [weiv]의 픽시스 특집은 그야말로 시의적절하다고 할 밖에. 소닉 유쓰(Sonic Youth), R.E.M., 허스커 두(Husker Du)와 더불어 픽시스를 1990년대 미국 얼터너티브 록의 부상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4인방으로 꼽는다 해도 아마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앞의 두 밴드가 그 시류를 타면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반면, 뒤의 두 밴드는 그런 혜택을 누리지 못한 것은 불공평한 일임에 틀림없다. 그래도 허스커 두에 비한다면 픽시스는 그 잔해 속에서 쏘아올린 브리더스의 “Cannonball”이 과녁을 적중하는 히트를 거둠으로써 간접적으로나마 보상이라도 받은 셈이지만. 어쨌든 상업적 성공이나 대중적 인지도와 어느 정도는 반비례 관계에 있는 소수 음악광들의 이른바 ‘컬트적 추종’으로 따진다면 픽시스의 지위는 다른 세 밴드들에 비해 한 수 위에 있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 The Pixies, “River Euphrates” from [Give Me Ecstasy](1994) 그 하나의 증거는 2001년 브리더스가 활동을 재개하면서 미국 일부 도시에서 가진 일련의 ‘깜짝 공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새 앨범 [Title TK]가 나오기도 거의 1년 전, 쌍둥이 자매 킴(Kim)과 켈리 딜(Kelley Deal)이 마침내 재결합한 브리더스는 LA에서 ‘비밀리에’ 공연을 가졌고, 이윽고 시카고에서도 홍보나 선전이 거의 전무한 상태에서 공연을 치렀다. 어쩌다 운좋게 소식을 접하게 되어 찾아간 시카고의 공연장 빅 씨어터(Vic Theater)에는 어떻게 알고 왔는지 팬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고, 뒤늦게 찾아온 많은 이들은 표가 없어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당시 한창 상종가를 치던 로우(Low)가 오프닝을 맡았고, 브리더스의 차례가 되자 스티브 알비니(Steve Albini)가 만장의 박수와 함께 무대에 올라왔다. 그리고 그가 킴과 켈리의 부모님을 소개했을 때는 밴드와 관객들 모두 주체할 수 없는 감격에 사로잡힌 모습이었다. 킴 딜과 스티브 알비니 연주하는 와중에도 엄청나게 피워대던 담배 덕분에 무대를 온통 자욱하게 만들어버린 이 ‘골초 자매’가 뿜어내는 에너지는 과연 들을거리였지만, 관객들은 정작 음악보다도 오랜만에 그들을 함께 본다는 사실을 더 즐기는 것 같았다. 하긴 그걸 누가 비난할 수 있으랴. 아마도 킴과 프랭크가 그동안의 갈등을 청산하고 픽시스 재결합 투어라도 한번쯤 돌아준다면 이들에게는 더 이상 바랄 나위가 없을 것이다. The Breeders, “Tipp City” at the Reading Festival, UK, 2002 프랭크 블랙이 여전히 블랙 프랜시스(Black Francis)란 ‘예명’으로 알려졌던 1990년대 초반, 이미 픽시스 내부에서는 여러 균열의 조짐이 나타났고, 킴의 브리더스 결성에 맞대응이라도 하듯 블랙 또한 솔로 활동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물론 당시 그의 솔로 레퍼토리는 곧 픽시스의 레퍼토리였고, 바로 그 점이 밴드의 해산을 불러온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하지만. 1991년 런던에서 가진 그의 공연은 한 해 지나 [The Dream Is Over]라는 매우 시의적절한 제목을 단 부틀렉으로 비공식 발매되었다. 이 때에 이르면 요정들의 꿈은 거의 끝났고, 동화 속의 악당 마술사 이름처럼 들리던 블랙 프랜시스는 프랭크 블랙이라는 아주 현세적인 이름으로 둔갑한다. [The Dream Is Over] 표지 Frank Black, “Weird At My School” from [The Dream Is Over] 1990년대 이후의 미국 대중음악계에 남긴 커다란 족적에도 불구하고 픽시스가 함께 한 시간은 실제로 그리 길지 않으며, 그동안 나온 정규 LP도 엄밀히 따지면 네 장에 불과하다. 그에 비한다면 비공식으로 찍혀나온 픽시스의 부틀렉은 올뮤직 가이드(allmusic.com)에 소개된 것만 세더라도 7종에 이른다. 팬들이 녹음한 공연 부틀렉은 구글(google.com)같은 검색 엔진에다 ‘pixies bootleg’을 쳐보면 알 수 있듯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널려 있다. 따라서 최근 픽시스 초기 데모 및 싱글 B 사이드 모음의 잇단 공식 발매는 때늦은 감마저 있다. 4AD에서 나온 [Complete B-Sides](2001)도 이미 [B-Side File]이라는 부틀렉이 제 4판(4th edition)까지 나온 걸 감안하면 그 제목이 다소 무색해진다. The Pixies, “Born In Chicago” from [B-Side File: 3rd Edition] 어쨌든 올 여름은 픽시스의 ‘절딴난'(mutilated) 서프 록을 다시 듣게 될 기회가 있을까 하는 기대와 바램을 갖고 보내게 될 것이다. 팬들이 정말로 운이 좋다면 그들은 전미 순회 공연, 더 나아가 세계 순회 공연을 가질 것이고, 아마도 정확히 공연한 횟수만큼의 부틀렉 녹음들이 인터넷을 떠돌아다니게 될 것이다. 아니, 요즈음의 최첨단 음악 상품화 전략에 따르면 아마 공연이 끝나자마자 출구에서 그날의 실황 녹음 CD를 파는 것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지나친 공상이라고? 즉석 CD 구이 장사까지는 아니더라도 공연 라이브 음원을 녹음해다가 그 다음날 곧바로 인터넷을 통해 판매하는 것은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누가 그렇게 발빠르게 나섰냐고? 과거에 블랙 프랜시스로 알려졌던 아티스트, 요정들의 우두머리. 20030717 | 김필호 antioedipe@hanmail.net The Pixies, “Surf of Mutilation” from [Rough Diamonds] 관련 글 Intro : 우리들의 일그러진 요정들 – vol.5/no.16 [20030816] Bootleg Galore 4: 요정(妖精)들의 행방은? — The Pixies, The Breeders, Frank Black Pixies [Come On Pilgrim] 리뷰 – vol.5/no.16 [20030816] Pixies [Surfer Rosa] 리뷰 – vol.5/no.16 [20030816] Pixies [Doolittle] 리뷰 – vol.5/no.16 [20030816] Pixies [Bossanova] 리뷰 – vol.5/no.16 [20030816] Pixies [Trompe le Monde] 리뷰 – vol.5/no.16 [20030816] Pixies [Pixies] 리뷰 – vol.5/no.16 [20030816] Pixies [Complete ‘B’ Sides] 리뷰 – vol.5/no.16 [20030816] Frank Black [Frank Black] 리뷰 – vol.5/no.16 [20030816] Breeders [Pod] 리뷰 – vol.5/no.16 [20030816] Breeders [Last Splash] 리뷰 – vol.5/no.16 [20030816] Breeders [Title TK] 리뷰 – vol.4/no.20 [20021016] 관련 사이트 4AD 레이블의 Pixies 페이지 http://www.4ad.com/artists/catalogue/pixies/index.htm Alec Eiffel : Pixies 프랑스 팬 사이트로 부틀렉을 포함해 방대한 디스코그라피가 잘 정리되어 있다. http://membres.lycos.fr/alec/index.html Breeders 공식 사이트 http://www.noaloha.com/breeders Elektra 레이블의 Breeders 페이지 http://www.elektra.com/elektra/thebreeders/index.jhtml 4AD 레이블의 Breeders 페이지 http://www.4ad.com/artists/breed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