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813100916-0515choyongpil_youngsound조용필/영사운드 – 너무 짧아요/긴 머리 소녀 – 킹/서라벌(SLK 1009), 1976

 

 

조용필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가 담긴 비밀의 문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실린 이 음반은 조용필의 첫 출세작이다. 예상치 못한 이 곡의 히트로 조용필은 짧은 스타덤을 경험하게 되나,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몇 년간 금지된 가수 목록에 자신의 이름을 올려놓는 불운을 동시에 겪게 된다.

1976년 킹 레코드의 박성배 사장에 의해 제작된 이 음반은 ‘국민 가수’로 등극할 조용필의 재기(才氣)를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아직은 ‘조용필’이 확실한 브랜드가 되기 이전이기 때문에 음반은 조심스럽게 안치행(영 사운드의 리더) 편곡집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으며 뒷면 역시 영 사운드의 몫으로 배당되어 있다. 조용필과 영 사운드로 나뉜 음반의 앞뒷면은 가수와 그룹사운드라는 별개의 정체에 조응하여 유기적으로 편성되어 있는 듯하다. 즉, 조용필로 포장되어 있는 트랙들이 한 가수의 반주를 위한 음악으로 편곡, 연주되고 있는 반면 영 사운드의 노래와 연주는 그룹 사운드다운 구성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조용필로 포장된 여섯 트랙의 면면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첫 수록곡인 “너무 짧아요”는 자신의 곡에 윤철이라는 작가의 노랫말이 더해진 곡으로, 선명한 킥 드럼의 백비트와 두둥거리는 베이스가 만들어내는 리듬이 잘 어우러진 로킹한 곡이다. 인트로의 멜로디를 장식하는, 거친 숨결로 몰아치는 듯한 플루트나 간주부의 오르간은 싸이키델릭에서 하드 록까지 조용필이라는 인물이 딛고 있는 영역을 여실히 보여주는 듯하다. 음반의 첫 곡으로 자리매김된 것으로 보아 대중적인 지지를 갈망하는 곡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만든 곡으로 “생각이 나네”를 하나 더 추가하고, 나머지 곡들은 기존 작곡가들의 것을 실었다. 나훈아의 1972년 히트 곡 “해변의 여인”과 “정” 등 대중적으로 친밀한 기존 곡과 독집 음반 [스테레오 힛트 앨범 제1집](1972)에 실린 바 있긴 하나 알려지지는 않은 “돌아와요 부산항에”와 “돌아오지 않는 강” 등은 자작곡과 더불어 신곡으로 기능하고 있다.

이러한 선곡은 깔끔한 편곡과 연주 그리고 다양한 악기가 표현해내는 음색이 더해지며 깨끗하게 갈무리되어 음반을 채우고 있다. 무엇보다 중심에 놓인 것은 진성과 가성을 넘나들며 다양한 요소들을 한데 아우르는 조용필의 절창이다. “너무 짧아요”와 같은 로킹한 트랙부터 기승전결의 전형적인 트로트의 멜로디 구성을 보이는 “돌아와요 부산항에”까지, “해변의 여인”과 같이 12비트의 장조 곡에서 “정”과 같이 단조의 곡까지 조용필의 목소리는 모든 요소들의 지배자로 군림하는 느낌이다. 이는 ‘조용필’이라는 음악적 정체의 한 단면이기도 한데, 이는 오랜 시간동안 자타가 공인하는 ‘국민 가수’라로 불리는 까닭이기도 하다.

이 음반에서 단연 대중적으로 두각을 나타낸 곡은 “돌아와요 부산항에”다. 2/4박자에서 4/4박자로, 남녀의 사랑 노래가 주제인 애가(哀歌)에서 형제애를 강조한 가사의 변화, 그리고 고고라는 당시 청년들의 지지를 듬뿍 받고 있던 리듬의 차용까지, 사후적인 평가이긴 하나 요소 요소가 ‘한 방’을 터뜨리기에 충분한 듯싶다. 처음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으나, 끝내 서서히 전국을 장악하는데 성공했고 급기야 1978년 [돌아와요 부산항](제작: 대영흥업, 감독: 김성수, 출연: 김희라, 유정희)이라는 제목으로 만들어진 영화까지 만들어지는 등 그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당시 청년들이 선호하는 멜로디는 아니었지만 몸을 들썩이게 하는 리듬에 묘한 감동이 일었다’는 당시 청년기를 보낸 한 방송관계자의 진술은 이 곡이 왜 대중적인 인기를 받게 되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도록 해 준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한 평론가의 표현처럼 ‘트로트의 왕정 복귀’라는 시대적 흐름을 이끈 선구적 곡이다. 또한, 이 곡의 편곡을 담당했던 안치행은 영 사운드라는 그룹에서 물러나 안타 기획이라는 자신의 기획사를 설립하며 작곡가이자 제작자로 나서 이 후 비슷한 풍의(트로트와 고고가 결합된) 노래를 만들어 내며 한 시대를 풍미하게 된다. 1975년 대마초 파동이 가져 온 그룹 사운드의 몰락은 아이러니컬하게도 풍성한 그들의 자양분(나이트 클럽의 수많은 레퍼토리들을 상상해 보라)을 통해 그룹이 연주하는 트로트라는 한국판 ‘하이브리드’를 탄생시킨 것이다. 그 선두 주자가 부산항으로 돌아온 그리운 형제였다. 그러나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스매시 히트는 불행히도 조용필의 과거 대마초 관련 경력을 들추어냈고, 이는 은퇴라는 극단적인 처방을 통해 대중들로부터 자신의 모습을 감추어야만 하는 비련을 만들어 내고 말았다.

1980년, 조용필을 진정한 이 땅의 국민 가수로 자리잡게 한 그의 공식 1집 [창 밖의 여자/단발머리](지구, 1980)는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비롯해 이 음반에 실린 4곡을 재수록함으로 이 음반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를 마무리짓는다.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안겨준 아픔은 그 성공에 비할 바는 아니었던 것 같다. 20030816 | 신효동 terror87@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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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곡
Side A
1. 너무 짧아요
2. 돌아와요 부산항에
3. 정
4. 돌아오지 않는 강
5. 생각이 나네
6. 해변의 여인
Side B
1. 긴 머리 소녀
2. 아름다운 밤
3. 옛추억
4. 사랑은 샘물처럼
5. 꿈속의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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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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