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813100733-0515choyongpil76nimiyear조용필 – 님이여/어디로 갔나요 – 킹/서라벌(SLK 1021), 1976

 

 

음악 감독 조용필의 첫 출발

조용필의 위치는 독특하다. 정상에 등극해 있는 동안 그는 일반적인 범주로는 파악하기 힘든 곳을 점령하고 있었다. 장르의 경계도, 세대의 구획도, 혹은 가수와 작가의 구별짓기도 모호한 공간을 점유한 그는 이 모든 것을 접합하고 봉인했다. 그가 오랜 기간 절대적 추종과 비판적 지지를 이끌며 확고부동한 정상을 점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경계와 구분의 ‘모호화’ 전략 때문이기도 한데, 그것이 충분한 검토의 과정 없이 이루어졌을 리는 만무하다.

[님이여/어디로 갔나요]는 그러한 전략 수립의 과정 속에 위치한 ‘실험’작이다. 몇 개월의 시차를 두고 앞서 발매되었던 영 사운드와의 스플릿 음반 [너무 짧아요/긴 머리 소녀](킹/서라벌, SLK-1009, 1976)가 대중적인 접점을 탐색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이 음반은 음악 감독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앞선 음반의 전략과는 상이한 조용필의 이면을 발견할 수 있다. 총 11곡의 수록곡 중 2곡을 제외한 9곡을 자신의 곡으로 채웠을 뿐 아니라, 모든 곡의 편곡까지 스스로 책임지고 있다는 점에서, 일단 음악감독으로서 외형적 능력은 손색이 없어 보인다.

음반에 실린 곡들은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다양한 스타일이 혼재되어있다. 베이스와 색서폰이 서로 묶여 들썩임을 만들어 가는 “보고 싶은 친구야”를 비롯해, 딜레이 된 기타가 원음과 섞여 묘한 긴장감을 만들며 시작되는 “모두 몰라요”, 색서폰의 맑은 음색이 인상적인 “생각이 나네” 같은 트랙들은 빠른 춤곡이라고까지 표현할 수는 없지만, 흥겨움을 자아내고 있다. 이 곡들은 데블스에 의해 시도된 바 있던 소울의 영향이 짙게 배여 있는 듯한데, 특히 “보고 싶은 친구야”의 경우 베이스를 비롯한 여타의 악기들이 색서폰과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곡의 흐름을 이끄는 구성이며 보컬의 의도적인 탁성(濁聲) 등은 소울의 또 다른 진원지인 스택스/볼트(Stax/Volt)와 맞닿은 듯하다.

‘플레이보이배 전국 그룹 사운드 경연대회‘에서 가수왕 상을 수상하는데 기여한 “Lead Me On”의 번안곡 “님이여”, “추억의 종이배”, “행복하지요”, “하얀 구름”, “어디로 갔나요”, “노래합시다” 등은 전형적인 가요 풍이다. 원곡에 대한 정보를 갖지 않는다면 민요의 서정을 느낄 법한 “님이여”는 굽이굽이 고개를 넘는 보컬의 절창이 놀랍도록 매력적이다. 이미 이 시기에 완성되었음을 보여주는 조용필의 보컬 능력은 1980년대 그의 폭발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소울적인 색채가 짙게 드리운 곡들과는 달리 리듬의 완급을 다양하게 포진시킨 이 부분은 클린 톤의 기타가 맛스럽게 인트로를 이끄는 “행복하지요” 같은 경쾌한 곡에서, 잔잔한 플루트의 지저귐이 귀를 당기는 “어디로 갔나요”까지 소녀 취향의, 그러나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들이 실려 있다. “님이여”와 “추억의 종이배”를 제외한 곡들이 모두 조용필의 작품으로 만만치 않은 그의 작곡 능력을 엿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트로트의 영향력이 느껴지는 두 곡이 남는다. “님이여”의 경이가 채 가시기 전에 시작되는 “옛일”은 드럼이 주조한 12비트의 리듬 위로 색서폰과 기타 솔로가 흐느끼는 전형적인 트로트 곡이다. 보컬 역시 지르고 꺾는 대목마다 정형화된 음들을 쏟아내고 있다. “즐겁던 그날”은 앞의 곡에서 좀더 진화된 곡인데, 예상처럼 고고에 얹힌 트로트 곡이다. 색서폰을 대신 해 플루트가 등장하며 미약하긴 하나 비트가 느껴진다. 이 두 곡은 애매한 표현이긴 하나 성인 취향으로 분류할 만한데, 1980년대 “허공”의 빅 히트가 우연이 아니었음을 알아차릴 수 있는 곡들이다.

음반을 감상하며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적절히 배치되고 운용되는 악기이다. 전체적으로 굵직한 곡의 느낌과는 대조적인 가느다란 플루트의 까메오(“보고 싶은 친구야”)랄지, 코러스의 배킹을 책임지는 잘게 분쇄된 심벌(“모두 몰라요”), 현이 배제된 상황에서 키보드만으로 그 향취를 만들어 내는 능력(“행복하지요”) 등은 아낌없는 갈채를 보내야할 부분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자신과 밴드의 힘만으로 완성하고 있다는 점 또한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

이 음반은 확실한 히트 곡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을 제외하곤 조용필의 긴 디스코그래피에서 상위에 랭크될 만한 작품집이다. 이는 외압이 최소화된 진공의 상황을 헤쳐 내는 그의 내공이 충실히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1976년, 그는 이미 모든 것을 탑재한 장전된 탄환이었다. 그 파괴력이 소진 없이 이어지길 빈다. 20030914 | 신효동 terror87@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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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곡
Side A
1. 님이여
2. 옛일
3. 보고싶은 친구야
4. 추억의 종이배
5. 행복하지요
6. 하얀 구름
Side B
1. 어디로 갔나요
2. 모두 몰라요
3. 즐겁던 그날
4. 생각이 나네
5. 노래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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