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소극장 라이브의 참 맛인 ‘밴드와 관객과의 화합’이 최고점에 이른 공연이었다. 그야말로 명랑 밴드와 명랑 관객이 만난 하나의 잔치마당이었다. 아담한 공연장은 대략 300여명 정도 들어갈 수 있을 것처럼 보였고 실제 모인 관객 수는 그보다 좀 더 많은 것 같았다. 공연은 스탠딩이였는데 2층에는 의자를 두어 원하는 사람은 2층에 앉아서 관람할 수 있게 하였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공연장에 들어서는 순간 다른 공연과는 낌새가 틀렸다는 점이다. 관객들은 불독맨션을 아주 친숙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마치 자기가 속해 있는 노래 동아리의 공연을 보러온 것처럼 들떠 있었다. 처음에는 다른 공연에선 느낄 수 없었던 이러한 낌새에 대해 이유를 알 길이 없어 의아했었으나 시간이 지나갈수록 그 이유에 대해 짐작할 수 있었다. 불독맨션은 상당히 소박했다. 컨셉이라는 것도 신비스러움이라는 것도 없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았고 “나는 뮤지션입니다”라는 분위기를 은근히 풍기며 가오 잡는 것도 없었다. 같은 동아리에서 허구한날 함께 어울려 다니던 동기나 선후배들의 공연 모습을 지켜보는 것처럼 편안하고 친숙했다. 잔뜩 즐길 채비를 마친 관객들은 불독맨션이 입장하자마자 고무되기 시작했다. 첫 곡으로는 의외로 “Buenos Aires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연주하였다. 물론 이렇게 보슬보슬한 곡으로 오프닝을 할 것이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원곡과 달리 간주에 기타 솔로를 두어 강렬함을 보강하였고 관객들에게 흥분을 줘야하는 오프닝 곡은 위압감을 주지 않는 선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신명나게 시작되었다. 이 곡이 끝난 후에는 “Hello”라는 이 콘서트를 위해 만든 테마송을 들려줬다. 가사는 시종일관 ‘Hello Baby’이고 코드는 단조롭게 반복되며 길이도 밴드 마음이다. 이 노래가 나오면 어김없이 멘트를 했는데 앨범의 “Room#” 시리즈와 같은 맥락을 하고 있었다. ‘Hello Baby’라는 가사는 멘트 뒤를 흐르는 코러스 같았고 컨셉이 비슷한 두세 곡들 사이마다 들어와서 다음 컨셉에 대한 복선 역할을 했다. 예를 들어 라틴 풍의 리듬을 넣어 편곡된 “Hello”가 나오면 다음 곡들은 그 리듬을 그대로 받아 연주되었다. 공연장 안은 시작부터 관객들의 열띤 반응으로 후끈하게 달아올랐고 화려한 드럼 솔로와 섹스폰 연주로 막을 올린 네 번째 곡 “아침에 문득”에 와서는 이한철의 살사 스텝과 막춤이 여지없이 선보여졌다. 1부 중간쯤 유재하의 “우울한 편지”와 김현철의 “춘천 가는 기차”를 메들리로 엮었는데 “우울한 편지”는 곡조도 곡조지만 엇박으로 그루브를 타며 타이트하게 연주된 드럼이 이 노래 특유의 ‘청승맞은 감성’을 더욱 조장하였다. 후반부로 갈수록 모든 악기의 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노래가 화려해졌는데 초반에 느껴졌던 그 서글픔은 온데간데없어지고 현란함만이 남아서, 경쾌하게 편곡된 “춘천 가는 기차”로 그 분위기를 이어갔다. 그루브감이 한껏 들어간 “춘천 가는 기차”는 고즈넉하고 쓸쓸한 원곡과는 달리 잔뜩 들뜬 기분으로 떠나는 기차여행을 연상시켰다. 게스트로는 넬과 프랙탈이 나왔다. 게스트에대한 정보도 전혀 없었고 게다가 넬이 워낙 말도 별로 없고 조용조용해서 이전의 분위기에 취해있던 관객들이 금새 적응하긴 힘들었다. 연주는 상당히 힘찼는데 악기 하나하나의 소리가 너무 크고 자세하게 들려서 서로 어울리고 있지 못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넬이 퇴장한 후 이한철이 사장으로 있는 튜브앰프 소속 가수인 프랙탈이 나왔다. 별로 준비 없이 등 떠밀려 나온 듯한 인상을 마구 풍기며 MR에 맞춰 노래를 했는데 앨범과는 너무 다른 라이브 실력을 보여주었다. 나름대로 최선은 다했지만 자신을 보러온 관객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 의식하는 듯 했다. 1부가 “Stargirl 내 맘을 받아다오”의 절정 후렴구에서 갑자기 끝났었는데 예상했던 것과 같이 그 후렴구를 마저 부르는 형식으로 2부가 시작되었다. 1부 오프닝보다 훨씬 신나게 시작된 2부는 비교적 널리 알려진 “Funk”와 “Destiny”로 고조된 분위기를 이어나갔다. 좁은 공간에 꽉 들어 찬 사람들은 흥분하여 제각기 들고뛰기 시작했는데 붉고 푸른 조명을 차례대로 받아 마치 파도처럼 일렁이는 장관을 연출하였다. 필자가 자리잡은 곳은 2층이었는데 1층 맨 앞에서부터 맨 뒤까지 뛰지 않는 사람은 눈에 띠지 않았고 심지어는 2층도 3분의 2정도는 일어나서 반응하였다. 아무리 그 가수가 좋아서 온 관객이라 하지만 대개는 앞에 반정도만 열렬하게 반응하고 뒤쪽에 있는 사람들은 다소 관조하며 관람하는 게 보통 분위기인데 불독맨션의 공연에서는 느긋하게 공연을 지켜보는 사람을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 원곡보다 훨씬 더 처절하게 소화해낸 “Apology”는 클라이막스가 되는 끝음 부분에 에코를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이 넣어서, 표현하고자 했던 감성을 극대화시켰다. 다행히도 에코 사용을 남발하지 않은 덕분에 의도한 바가 잘 드러났음은 물론 곡의 클라이막스가 음반을 듣는 것처럼 매끈하게 처리되었다. 색소폰 애드립을 트로트 버전으로 연주해 의도적으로 느끼함을 더한 “눈물의 ChaCha”도 불독맨션다운 장난끼를 느낄 수 있었다. 이 공연의 마지막 곡인 “We All Need A Liftime Too”와 “피터팬”에서는 관객들이 노래를 따라한다던지 관객과 밴드가 원곡과 똑같이 애드립을 주고받는다던지 하면서 서로의 교감을 절정으로 끌어 올렸다. 이런 상황은 관객의 주도하에 이루어졌으며 이것은 라이브 공연의 모범적이 사례라 볼 수 있다. 결국 두 번의 앵콜을 받고서야 두 시간 반만에 공연이 끝날 수 있었다. 사실 관객석에 불만 안 켜졌더라도 앵콜이 더 들어왔을 분위기였다. 공연을 보기 전에는 청명하고 반듯한 그들의 사운드가 노이즈와 땀이 혼재하는 라이브 무대에서 얼마나 정갈하게 뽑아 질 수 있을까 의문을 품었었다. 하지만 흥분의 도가니 속에서도 너무나 안정된 연주를 보여주었고 무엇보다도 이한철의 보컬은 라이브에서 비로소 진가를 발휘했다. 정말 앨범보다 훨씬 잘한다. 앨범으로 들었을 땐 보컬이 특별히 뛰어나다고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대단히 의외였다. 공연 내내 특별한 퍼포먼스는 없었지만 준비는 많이 한 것 같아 보였다. 샌님같이 예쁘장하던 사운드는 사람들과 어울려 놀기 위해 아주 신나고 강하게 편곡되고 연주되었다. 라이브 공연을 본 후 앨범을 들으면 좀 심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거의 모든 곡이 원곡보다 파워풀했고 재미있었다. 불독맨션을 잘 모르는 이들이 공연에 왔어도 충분히 그 분위기에 동화될 수 있을 만큼 공연장 분위기는 아주 화기애애했고 ‘어우러짐’ 그 자체였다. 어차피 사람들과 함께 공감할 수 있는 흥겨운 음악을 하고 싶은 것이 본인들의 의사라면 자신들의 진면목이 마구 드러나는 라이브 앨범을 하나 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30731 | 홍마녀 contributor(hong-e0122@hanmail.net) 관련 글 불독 맨션(Bulldog Mansion) 인터뷰 – vol.4/no.22 [20021115] 불독 맨션(Bulldog Mansion) [Funk] 리뷰 – vol.4/no.21 [20021101] 불독 맨션(Bulldog Mansion) [Debut EP] 리뷰 – vol.2/no.12 [20000616] 관련 사이트 불독맨션 공식 사이트 http://www.bulldogmansi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