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725090209-0514k_hanyoungae1977한영애 – 어젯밤 꿈/사랑의 바람(이정선 작편곡집) – 지구(JLS 1201296), 19771008

 

 

이정선 오케스트라 속의 미완의 뮤즈

한영애의 첫 번째 솔로 앨범을 1986년작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앨범은 낯선 작품일 것이다.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1970년대 후반 해바라기 시절과는 별도로 한영애가 낸 이 ‘비공식’ 솔로 앨범은, 당시 동료였던 해바라기 멤버들의 손길이 닿은 작품이다. 김의철(두 곡), 이주호(두 곡) 등도 작곡에 참여했는데, 그 누구보다도 ‘이정선 작편곡집’이라는 부제 그대로 이정선의 손길이 크다. 나머지 절반을 차지하는 작곡은 물론, 곡 전체의 편곡은 이정선이 맡았기 때문이다.

사실 이정선이 다른 가수들(가령 서로 다르기는 경우이기는 하지만 두송이, 영주와은주)의 곡을 편곡할 때 오케스트라를 대동하곤 했는데 그를 통해 깔끔하게 느껴질 법한 사운드를 만들었다(반면 이정선 본인의 음반은 거칠고 투박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깔끔하다 함은 관현악기가 전면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는 뜻이다. 필요에 따라 한두 가지 관악기나 현악기를 쓰는 정도였지 풀 오케스트라를 대동하는 일은 흔치 않았다. 그렇다면 이 음반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이정선이 다른 가수의 앨범에 비해서도 더, 오케스트라를 대동한 편곡을 한층 강화하고 있는 것 같다.

일명 ‘이정선 오케스트레이션’ 강화의 이유가 한영애를 다른 가수들과는 차별적인 작품을 만들고자 하는 의도 때문이었을까(음반 커버에 그려진 한영애의 초상이 이정선의 손길이 닿은 작품이라는 점도 그런 흔적으로 볼 수도 있다). 아니면 ‘포크’에서 벗어나고자 하는(혹은 포크를 확장하기 위한?) 전략을 심층화시키기 위해, 오케스트라 편곡을 강화시켰던 것은 아닐까. 이는 또한 일렉트릭한 세션을 사용하는 것과도 거리가 있음을 시사한다(사실 이정선이 솔로로 발표한 1974년 [이리저리] 음반에는 일렉트릭한 질감이 있었지만 그후 이런 질감들은 그의 어떤 의도 때문인지 잘 보이지 않는다). 이런 면으로 살펴보면 이 음반에서 드러나는 그의 작전은 사운드나 편곡은 일렉트릭하지 않게 진행하고, 악곡 형식이나 화성, 가창은 때때로 포크의 영역 안과 밖을 넘나드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 말한대로 포크를 벗어나는 방식이 오케스트라를 대동하는 방식을 통해서였다면 이를 한층 더 강화한 음반이 한영애의 본 음반으로 보인다.

첫 곡 “어젯밤 꿈”을 들어보자. 앞서 말했다시피, 풍성한 관현악기가 셔플 리듬 하에 곡 분위기를 이끈다. 간주에서 들리는 현악과 관악의 협주나, 보컬과 플루트(이후에는 현악기)의 협연은 대화를 주고받듯 진행된다. 이러한 셔플 리듬은 이 음반에서 많은 곡에 사용되었는데, 남성 배킹 보컬이 간간히 화음을 넣는 “사랑의 편지”, 플루트가 수식하는 “꽃피는 봄”도 넓게 보면 그런 범주의 곡이다. 그 외의 다른 분위기의 곡들, 예를 들어 비감 어린 정서의 “먼길 떠난 임”이나, 3박자의 곡들인 “작은 소망”과 “달”에서도 정도차는 있지만 관현악기가 다수 등장한다.

이처럼 관현악기에 의해 주조되는 분위기 덕에 대부분은 일렉트릭한 면이 없지만, 그런 소스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사랑의 바람”과 “그 얼굴”에서는 플렌저 같은 이펙트가 걸린 기타 사운드가 역동적인 음형을 그리는 베이스 하에서 현악 사이를 비집고 흘러나온다. 반면 이와는 다른 식으로, 오케스트라의 비중을 떨어뜨리면 해바라기에서 보여준 포크 계열의 사운드가 흘러나온다. 앞서 말한 것처럼 악곡 형식 자체는 포크로부터 나왔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이런 유형은 이주호가 작곡한 곡들, 즉 “기다림 속에서”, “마음 깊은 곳에 그대로를”(1985년 이주호 유익종의 해바라기 2집과 한영애 3집에 재수록)에 강하다. 어쿠스틱 기타의 아르페지오 음형을 중심으로 오보에나 플루트, 현악기가 ‘간간이’ 선율을 담당하는 것도 그렇고, 위에서 언급한 오케스트라 중심적 곡과는 대비한다면 성긴(심심한) 결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렇다. 김의철 두 곡 “영원한 사랑”, “촛불을 켜세요”는 찬송가라고 이를 만한데 ‘주님’, ‘신앙’이라는 명시적인 가사뿐 아니라 곡 구성이나 숭엄한 보컬과 연주 분위기가 주조를 이룬다.

그렇다면 한영애의 보컬은? 사실 해바라기에서 한영애가 중창단의 한 멤버로 1/4 정도의 역할에 그쳤다면 이 솔로 음반에서 그녀의 역할이 더 커졌을 것이라고 기대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 음반에서 그녀의 흡입력은 그렇게 크지는 않은 듯하다. 이는 한영애 자신이 내공을 쌓고 자신의 목소리를 확립한 훗날과 대비해 보면 명백히 대비된다. 이정선의 곡을 부른 “이어도”(한영애 3집)나 “너의 의미”(한영애 4집) 등처럼. 멀리 갈 것도 없이 이 음반의 첫 곡 “어젯밤 꿈”으로 돌아와 보자. 1986년 한영애가 발표한 공식 1집 [여울목]에 재수록된 버전은 찰랑거리는 기타가 주도하는 반주나 보컬의 흔적이 이 음반의 버전과는 상이하다. 그렇다면 이 음반을 두고 ‘절친한 음악적 사부이자 동료인 이정선과 보컬리스트인 한영애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 이 음반에서 그렇게 조화롭지 않았고, 때문에 한영애의 진정한 목소리가 남겨져 있지 않았다’고 말하면 그만일까.

그런데 한영애의 목소리는 분명 당시 포크 (여성) 가수에게 흔히 나타났던 영롱하고 투명한 목소리와는 차이가 있다. 특색있는 목소리를 소유했다는 것은 앞날까지 이어질 수 있는 어떤 생명력을 잉태하고 있다는 뜻도 된다(물론 부단한 노력이나 외적 요소 등이 필요하겠지만). 한영애에게는 이 당시가 어떤 카리스마가 잠재되어 있던 시기였지만, 그 끼가 분출되려면 다소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고 이 음반을 들으면 그녀의 목소리는 또 다르게 들린다. 그녀의 허스키한 목소리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다소 맥이 풀린 듯 비슷한 톤으로 부르는 것 같다가도 그녀의 목소리는 곡의 분위기, 즉 경쾌한 곡(가령 “어젯밤 꿈”), 비감한 곡(“먼길 떠난 임”), 숭엄한 곡(“촛불을 켜세요”) 등에 걸맞는 각기 다른 분위기의 목소리를 연출하는 것처럼 들려온다. 착각일까. 그렇다면 한영애의 이 음반은 ‘다양한 스타일의 노래를 잘 소화한다’는 세평에 어울리는 음반이라는 뜻이 되겠지만… 20030731 | 최지선 fust@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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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곡
Side A
1. 어젯밤 꿈
2. 먼길 떠난 임
3. 작은 소망
4. 기다림 속에서
5. 영원한 사랑
Side B
1. 사랑의 바람
2. 마음 깊은 곳에 그대로를
3. 달
4. 촛불을 켜세요
5. 그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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