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725090106-0514k_hanyoungae1978한영애 – 작은 동산 – 유니버어살(SIS 78105), 19781201(재발매: 신세계음향(SIS 860268), 19860330)

 

 

한영애가 단지 ‘가수’였던 시절, 록의 뿌리 위에 노래를 얹다

[작은 동산]은 한영애가 1978년 노래모임 해바라기를 떠나 연극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던 시기에 나온 음반이다(참고로 해바라기 2집은 이보다 늦게 1979년 발매되었지만 녹음은 그 이전에 한 것이다). 한영애가 1970년대에 발표한 솔로 앨범으로는 두 번째(이자 마지막)작품이다. 하지만 이 음반은 흔히 비공식 2집으로 불린다. 보통 [여울목](1986)부터 1집으로 치는 관행상 ‘비공식’ 딱지가 붙게 된 것이지만, 한영애 역시 이 음반을 ‘정규’ 디스코그래피로 인정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왜 그럴까.

한영애의 1970년대는 해바라기 활동을 중심으로 한 포크의 시대로 알려져 있다. 음반의 문을 여는 타이틀 곡 “작은 동산”은 통기타 반주에 잔잔한 분위기의 포크 곡이다. 가사 역시 일반적인 1970년대 포크 가요처럼 “착하고 아름다운” 내용이다. 한영애의 1970년대가 해바라기 활동을 중심으로 한 포크의 시대였음을 확인해주는 순간이다.

그런데 통기타 포크는 딱 거기까지다. 이미 “작은 동산”의 노래 중간 중간, 그리고 간주에 인상적으로 울려 퍼지는 전기 기타 연주가 전조를 보여주듯이, 음반은 뒤로 갈수록 일렉트릭 사운드가 강화된다. 두 번째 곡 “별 하나 나 하나 또 하나”도 곡 자체는 1970년대 포크 가요 스타일에 가깝지만 편곡과 연주에 있어서 블루지한 기타 연주와 싸이키한 질감의 키보드가 강조된 사운드를 들려준다. 이어지는 “좋아하는 사람”도 업템포에 어쿠스틱 기타보다는 알싸한 키보드가 반주를 주도하며, “무지개 뜨는 마을” 역시 블루지한 기타 연주가 어쿠스틱 기타 스트로크를 압도한다.

이처럼 이 음반의 전반적인 사운드는 한영애의 1970년대를 통기타 포크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당혹감을 준다. 한영애가 1970년대에 이미 록을 하고 싶어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한영애 (블루스)록’의 맹아적 증거로 이 음반을 ‘발견’했다는 흥분을 맛보게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무언가 찜찜함이 남는다. 한 마디로 설명하긴 힘들지만, 맹아로 간주하기엔 이 음반과 1980년대 한영애의 솔로 음반 사이에 정서나 음악세계의 연속성이나 인과관계를 발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음반만으로는 오리무중이다. 열쇠는 배후에 감춰진 인물이 쥐고 있다. 음반 크레딧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 이름, 바로 오세은이다. 그는 1970년대 초중반 세 장의 독집을 발표한 통기타 가수로, 또 “고아”(윤연선 노래, 오세은 편곡), “설악산”(남궁옥분 노래, 오세은 곡) 같은 곡을 히트시킨 작편곡가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런데 오세은은 조동진처럼 록 그룹의 기타리스트로 경력을 시작했다(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까지 영 바이블스, 라이더스, 메가톤스 등에서 기타와 보컬을 맡으며 이태원 미군 클럽에서 연주했다). 1970년대 중반부터는 국악과 블루그래스에 천착해오며 이를 구체화한 음반들도 발표해왔다.

[작은 동산]에서 오세은의 역할은 김추자, 김정미 음반에서 신중현의 역할과 비슷하다. 오세은은 기획, 작사·작곡, 편곡, 연주를 도맡았다. 이 음반이 ‘한영애 음반 같지 않다’고 느꼈다면 그 때문이다. 오세은이 신중현과 다른 점은 ‘소울 & 싸이키’가 아니라 블루스 지향적으로 음반을 꾸몄다는 것이다. 음반 전체에 걸쳐 오세은의 블루지한 기타가 선명하게 부각된다. 12마디 블루스나 로큰롤의 단순성과 중독성에 오묘한 매력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갑돌이와 갑순이”, “설악산”에 몸이 들썩거릴 것이다. 곡이 귀에 익어서라기보다 일렉트릭 기타가 리드하는 흥겹고 까칠한 사운드가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각각 1968년 김세레나가 부른 신민요(“갑돌이와 갑순이”), 1984년 남궁옥분의 히트 버전(“설악산”)과 비교해보면 오세은의 편곡과 기타 솜씨에서 독특한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노래하는 마음”의 기타 연주는 엽전들 시절 신중현이 국악과 블루스를 혼합한 기타 프레이즈를 연상시킨다.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이 음반은 록의 뿌리가 되는 음악 스타일들을 가요화한 다양한 실험을 접할 수 있는 음반이다. 록과 포크를 섭렵했고 작편곡 능력까지 갖춘 오세은의 작품집으로서 손색이 없다. 그렇다면 한영애의 음반으로서는? 이 음반에서 우리가 아는 한영애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탁한 음색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다르지 않지만, 카리스마적 개성은 발견하기 힘들다. “나무는 알고 있네”나 “노래하는 마음” 같은 곡의 고음부에서 한영애는 힘겨워하는 기색조차 있다. 전반적으로 곡들의 음(key)이 높기 때문에, 중저음에 장점을 갖고 있는 한영애로서는 충분한 표현을 하지 못한다.

결론적으로, 오세은의 반주 및 편곡이 한영애의 보컬과 상승작용을 일으키지 못하고 종종 보컬을 압도함으로써 서로 겉돌곤 한다. 어쩌면 이런 느낌은 이것이 ‘한영애의 음반’이기 때문에 가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 안에 남아 있는 (1980년대부터 쌓여온) 한영애에 대한 인상 때문에, ‘한영애의 음반으로서는 아쉽다 혹은 불만스럽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는 음반이다. ‘당시에는 포크나 언더그라운드 진영에서조차 ‘여가수’의 아티스트로서의 자율성은 발휘되기 힘든 환경이었다’라든가, ‘한영애의 예술적 자의식과 장악력이 희박하다’는 평가를 내릴 수도 있다. 그래서, 이 음반 이후 한영애가 음악판을 떠나 연극판에 더욱 몰두하게 되었다는 점은, 또 그렇게 8년의 외유 끝에 1985년 음악판에 복귀하여 비로소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점은 수긍할만하다. 하지만 그런 큰 틀의 판단을 떠나, 이 음반에서 느린 템포의 곡에서 오세은의 기타와 한영애의 아스라한 보컬이 빚어내는 느낌은 알싸하고 독특하다. 딱 꼬집어 얘기할 순 없지만, 그건 1960년대 미국과 1970년대 한국의 묘한 뒤섞임이다. 기묘한 울림, 그것도 그리 나쁘진 않다. 20030725 | 이용우 garuda_in_thom@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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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 이 음반은 1986년 봄 커버를 변형하고 수록곡 순서를 달리하여 재발매되었다. 이는 남궁옥분의 “설악산”(1984)의 히트, 그리고 한영애의 공식 1집 발매(1986년 1월 초)와 관련 있는(편승한?)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한영애는 재발매를 반대했다.
– 음반 뒷면에 작사 작곡자로 표시된 인물은 대부분 가공의 인물이다. “갑돌이와 갑순이”(민요/김부해 작곡), “별 하나 나 하나 또 하나”(정주훈 작사 작곡), “좋아하는 사람”(지명길 작사)을 제외하곤 모두 오세은의 작사, 작곡이다. 오세은에 따르면, “별 하나 나 하나 또 하나”의 가사도 자신이 수정한 것이며 “좋아하는 사람”의 가사도 자신의 가사를 지명길이 약간 고친 수준이라고 한다. 어쨌든 이처럼 자신의 곡에 다른 사람의 이름을 올린 이유는 검열 때문이 아니라, 변화한 인생관 때문이다. 오세은은 당시 명상 쪽으로 공부하면서 ‘나를 한번 잊어보자’는 생각을 가졌다고 밝힌다.

수록곡
Side A
1. 작은 동산
2. 별 하나 나 하나 또 하나
3. 좋아하는 사람
4. 무지개 뜨는 마을
5. 아름다운 곳에서
SIde B
1. 갑돌이와 갑순이
2. 노래하는 마음
3. 설악산
4. 나무는 알고 있네
5. 목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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