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애 – 여울목 – 서라벌 레코드, 1986 그녀, 비로소 노래하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 대중음악계에는 록 음악을 하는 여성 뮤지션들이 눈에 띄게 등장했고 개중에는 대중적인 성공을 이루기도 했다. 물론 그녀들은 남성 멤버들로 이루어진 밴드에서 평균 수준의 노래 실력으로 미모를 앞세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몇몇 인상적인 여성 보컬리스트들도 존재하는데, 결과적으로 그녀들은 ‘여성 보컬리스트’라는 위치를 좀 더 자유로운 실험이 가능한 지점으로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여성 보컬리스트들을 되짚을 때, 그 계보 상단 어디쯤에서 우리는 반드시 한영애라는 이름을 만나게 될 것이다. 한영애의 ‘공식 1집’인 [여울목]은 1986년에 발매되었다. 이 음반에 공식이란 수식이 붙는 이유는, 1970년대 말에 이미 한영애의 독집(해바리기 1, 2집은 예외로 하자) 두 장이 나왔기 때문이다. 비공식 1, 2집인 [어젯밤 꿈/사랑의 바람](1977)과 [작은 동산](1978)은 각각 이정선과 오세은이 주도해서 만들어진 음반이고, 사실 한영애보다는 이정선과 오세은이라는 음악감독의 존재감이 더 분명한 음반으로보아도 무방하다. 게다가 [작은 동산] 이후 1986년의 정식 데뷔까지 10여 년의 공백기에 한영애는 정작 음악판이 아니라 연극판에서 지내게 된다. 나이 서른이 넘어서야 한영애는 공식 1집 [여울목](1986)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음반은 오세은과 이정선이 주도해서 만들어졌는데, [어젯밤 꿈/사랑의 바람]과 [작은 동산] 이후 세 명의 결합은 어떤 의미에서는 마치 이들의 맺힌 한(恨)을 푸는 ‘한판 굿판’처럼 보인다. 물론 음반은 이 두 사람의 스타일로 양분되어 있지 않은데, 이는 오히려 이 음반의 미덕이 된다. 음반을 훑어보면, 우선 한돌, 구자룡/구자형, 엄인호, 그리고 이정선과 오세은의 이름이 보이고, 기타리스트 김광석과 키보디스트 김명곤, 김광민 등의 이름이 눈에 띈다. 코러스로 이광조와 징검다리가 참여하기도 했다. 이 음반의 제작자가 김영(동아기획)이라는 점도 눈에 띈다. 음반을 여는 곡은 한돌이 만든 “여울목”과 “완행열차”인데, 낭만적인 가사는 애잔한 멜로디 속에서 안정적으로 자리잡아 한돌 특유의 향토적이고 목가적인 정서를 들려주고 있다. 구자룡/구자형은 “제주도”를 통해 신서사이저의 미끌거리는 톤으로 애뜻한 향취를 흐르게 한다. 일련의 곡들에서 한영애는 서정적인 낭만과 짙은 고독의 정서를 동시에 노래한다. 특히 “여울목”의 ‘은빛 찬란한 물결 헤치고 나는 외로이 꿈을 찾는다’라는 가사는 들국화의 “그것만이 내 세상”과 더불어 당시 언더그라운드 음악가들의 상황을 가장 적절하게 묘사한 작품인데, 이 노래에 1970년대의 음악 정서를 1980년대로 이어주는 가교로서의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어 등장하는 엄인호의 “도시의 밤”과 이정선의 “건널 수 없는 강”은 작곡가들의 블루스에 대한 취향을 살피게 해주는 동시에 음반에서 한영애의 음색과 가장 잘 어울리는 곡들로 자리잡는다. 특히 “도시의 밤”은 이후 신촌블루스 1집에 “그대 없는 거리”로 재수록되기도 한다. 이 두 곡은 블루스 음악으로 향해가던, 그래서 이후 신촌블루스 활동으로도 이어지는 한영애의 개인적인 관심을 짐작하게 해주는 곡들이기도 하다. 이 음반은 오세은의 “밤이 오면”과 박현의 “젊은 날의 아픔”으로 마무리되는데, 음반을 모두 듣고 난 뒤의 느낌은, 물론 사후적인 평가겠지만, 무언가 2% 부족한 허전함이다. 마치 아귀가 안 맞는 미닫이문이 있는 자취방에 다녀온 듯한 느낌이랄까, 나름의 완결성과 동시에 정리되지 않은 어색함/불편함이 공존하는 이 음반은, 사실 한영애의 재능을 적절하게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인상이 강하다. 물론 그것은 ‘노래하는 사람’으로서의 한영애가 음반에 적절하게 반영되지 못한 까닭이다. 이 점은 이후에 자신의 음악에 대한 욕심이 숨김없이 드러나는 2집 [바라본다](1988)와의 비교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점이기도 하다. 한영애의 첫 음반, [여울목]의 의미는 사실, 그녀의 존재를 세상에 본격적으로 알리게 된 계기였다는 점 뿐 아니라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독창적인 여성 보컬리스트의 탄생을 알리게 된 계기였다는 점으로서도 의미심장하다. 여성 보컬리스트로서의 한영애는 ‘예쁘고 상냥한’ 여성 목소리의 대안으로 흔히 생각되는 ‘허스키한 여성의 목소리’를 넘어서는 아우라(aura)를 획득하고 있다. 이러한 특성은 특히 음절과 음절 사이, 연음의 독특한 (이를테면 ‘ ’음을 길고 묘하게 끌어당기는) 발성을 통해 드러난다. 그것은 일종의 독창적인 곡 해석력과 타고난 음색덕분이라 생각할 수 있는데, 1집 음반에서는 “여울목”의 절정부와 “건널 수 없는 강”의 종지부에서 잘 드러난다. 아쉬움도 남는데, 그것은 다름아니라 1집 음반은 한영애의 보컬과 맞는 스타일의 음악을 찾는 탐색기의 의미를 가지지 않나 하는 판단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1988년에 발표한 2집 [바라본다]는 좀 더 완숙한 느낌이 든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음반으로 유추할 수 있는 또 하나는 1980년대 후반 언더그라운드 음악을 관통하던 서정적이고 개인적인 정서다. 이른바 1980년대 후반은 (신촌)언더그라운드 정서가 수면 위로 폭발한 시점이다. 들국화나 어떤날, 김현식과 신촌블루스 같은 음악가들이 거의 동시에 등장해서 보헤미안적인 정서를 배경으로 개인과 세계와의 관계의 고민을 풀어놓곤 했다. 가사는 회상과 아쉬움이 스민 한(恨)스러운 정서를 드러내는 어휘로 구성되었고 블루스, 록, 재즈 스타일의 사운드가 이를 뒷받침했다. 1980년대 후반은, 따라서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가장 다채롭고 풍성한 시절이었다. 그것이 다만 표면적이었다고는 해도,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들이 공존하고 있던 것은 사실이다. 그 중에서도 한영애는 여성 보컬리스트이자 블루스/록 음악가로서 매우 독보적인 자리에 위치한 존재임에 분명하다. 20030723 | 차우진 lazicat@empal.com 8/10 수록곡 Side A 1. 여울목 2. 완행열차 3. 제주도 4. 도시의 밤 5. 어젯밤 꿈 Side B 1. 건널 수 없는 강 2. 밤이 오면 3. 젊은 날의 아픔 4. 기분 좋아 5. 산에 산에는 관련 글 한영애 vs 장필순: 한국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여성적 측면(Female Sides of Korean Underground Music) – vol.5/no.14 [20030716] 원으로 돌아 시작에서 멈추고, 그리고 또 다시…: 한영애와의 인터뷰 – vol.5/no.14 [20030716] 해바라기 1집 [해바라기 노래모음 제1집] 리뷰 – vol.5/no.14 [20030716] 한영애 비공식 1집 [어젯밤 꿈/사랑의 바람(이정선 작편곡집)] 리뷰 – vol.5/no.14 [20030716] 한영애 비공식 2집 [작은 동산] 리뷰 – vol.5/no.14 [20030716] 해바라기 2집 [뭉게구름/여름] 리뷰 – vol.5/no.14 [20030716] 한영애 2집 [바라본다] 리뷰 – vol.5/no.14 [20030716] 한영애 3집 [한영애 1992(말도 안돼)] 리뷰 – vol.5/no.14 [20030716] 한영애 4집 [불어오라 바람아] 리뷰 – vol.5/no.14 [20030716] 한영애 5집 [난다 난다 난다] 리뷰 – vol.1/no.2 [19990901] 한영애 6집 [Behind Time: A Memory Left at an Alley] 리뷰 – vol.5/no.14 [20030716] 관련 사이트 한영애 팬 사이트: 코뿔소 http://www.hanyoungae.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