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725084852-0514k_campus배리어스 아티스트 – 캠퍼스의 소리 – 서라벌(SRB 0116), 1984

 

 

‘대학가요제’가 시들어갈 때의 캠퍼스의 소리

1984년이면 ‘경연대회 형식의 대학생 가요제’가 관습이 되어버린 해이다. 그 해의 신데렐라인 이선희는 자타가 공인하는 훌륭한 가수지만 그건 가요계 주류의 관점에서 그런 것일 뿐이다. 대학생 가요제는 음반산업의 로비를 통한 신인 등용문이라는 관행을 확립해 버렸고, 따라서 1970년대 이후 한국 대중음악의 중요한 자양분이었던 ‘캠퍼스 아마추어의 신선함’이라는 특징은 급격히 소멸해 갔다. 거기에는 [젊음의 행진](KBS-TV)과 [영 11](MBC-TV)로 대표되는 지상파의 젊은이용 프로그램들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 이는 당시 대학생들과 매스 미디어 사이의 (때로는 필요 이상의) ‘적대관계’가 한몫 했지만 그건 이 자리에서 길게 말할 성질의 것은 아니다.

이런 시점에서 ‘캠퍼스의 소리’라는 제목을 걸고 나온 음반은 과연 어떤 소리를 담고 있을까. 일단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 음반이 [젊음의 행진]의 한 회분에 출연한 ‘캠퍼스 아마추어 가수’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음반에 참여한 인물들 가운데 ‘프로’로 경력을 계속하게 되는 경우는 다섯손가락과 소리두울의 멤버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 이들의 아마추어적 성격을 잘 보여준다. 그래서 이 음반은 경연대회를 경유한 것이 아님에도 ‘MBC 대학가요제’나 ‘MBC 강변가요제’의 수상곡 모음집과 비슷한 성격을 띤다. 경연대회를 경유한 것은 아니지만 두 개의 경연대회를 가진 MBC와 달리 KBS가 마땅한 경연대회를 개최하지 못했던 당시의 사정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음반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은 인기가 쇠락해 가던 ‘가요제 음반’과는 다른 소리를 들려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상이한 스타일의 곡들을 ‘전속 관현악단’의 반주로 떡칠을 해 놓은 여타 가요제 음반과는 달리 이두헌(어쿠스틱 기타), 하광훈(베이스), 박강영(드럼), 최태완(피아노, 현악기), 임형순(보컬)이 ‘세션’의 역할을 맡아서 다른 가수들의 노래에도 연주를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하광훈을 제외한 나머지가 다섯손가락을 구성한다는 사실도 덧붙일 만하다. 다섯손가락과 더불어 소리두울(김선희, 장필순)이 필요한 곡에서 코러스를 맡아준 점도 음반의 전체적 일관성을 기하는 특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곡들은 ‘1970~80년대 가요’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특히 세 트랙에서 노래를 부른 장완진의 노래는 주류 가요계의 관습을 그대로 반복하는 듯하다. 1970년대의 포크송에 많은 영향을 받은 듯한 전홍익·전창익, 박은자, 황세헌·김재우 등의 노래는 1970년대 말의 대학가요제 무대에는 어울릴지 몰라도 1980년대 중반의 시점이라면 더 이상 신선하지 않다. 권미경·장경원의 노래도 대학가요제에서 동상 정도를 받을 만한 곡 이상은 아닌 것 같다. 이런 ‘가요풍’의 곡들에서는 세션을 맡은 그룹도 연주와 편곡을 어떻게 해야할지 방황하고 고심한 것만 같다.

결국 남는 것은 다섯손가락과 소리두울의 트랙이다. “그 작은 순간들”의 경우 키보드가 날아다니는 전주에 이어 깔짝거리는 기타와 슬랩(초퍼) 베이스가 만드는 훵키한 리듬, 그리고 메이저 세븐쓰(maj 7) 코드로 시작하는 야한 화성감은 적어도 그때까지 캠퍼스 그룹 사운드의 주류와는 분명 다른 것이었다. 이런 스타일의 연주가 단지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소리두울의 화음과 조화를 이룬 “종이비행기”에서 가장 빛난다. 통기타 코드만으로 연주했다면 범상해졌을 이 곡은 재즈의 화성과 훵키한 리듬이 슬며시 가미되면서 경쾌하면서도 진지한 음악으로 재탄생한다. 역시 소리두울의 노래인 “바람에 실려온 마음”에서는 작곡과 편곡의 부조화가 드러나지만 오랫동안 입을 맞춘 소리두울의 화음으로 이를 만회하고 있다. 한편 장엄한 송가풍(‘스타디움 록’ 스타일)인 다섯손가락의 “사라진 가을”은 ‘8트랙 레코딩’이라는 이 음반의 녹음 환경에 대해 두고 두고 아쉬워 할 만한 곡이다. 특히 볼륨을 급격히 내려 버린 후반부의 기타 솔로는 녹음이 잘 되었다면 중요한 텍스트가 될 뻔한 부분이다.

사후적으로 그리고 ‘억지로’ 끼워 맞춘다면 이 음반은 새로운 ‘캠퍼스 포크 록’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음반이다. 그렇지만 다섯손가락이라는 ‘그룹 사운드’와 소리두울로 대표되는 ‘포크 중창단’의 결합은 한번의 만남을 끝으로 다시 만날 기약 없이 사라져 버렸다. 이런 가능성의 현실화는 ‘언더그라운드 프로페셔널’의 몫으로 남게 되었다. 20030722 | 신현준 homey@orgi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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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나의 기억이 맞다면 장완진은 1984년 가을 MBC 대학가요제에서 “눈물 한 방울로 사랑은 시작되고”를 부른 이유진과 동일 인물이다.

수록곡
Side A
1. 낙엽, 그것은 – 장완진
2. 밤의 여운 – 장완진
3. 창가에서 – 전흥익, 전찬익
4. 그건 – 권미경, 장경원
5. 그 작은 순간들 – 다섯 손가락
6. 숲으로 난 길을 가며 – 박은자
Side B
1. 바람에 실려온 마음 – 소리 두울
2. 사라진 가을 – 다섯 손가락
3. 종이 비행기 – 소리두울
4. 작은 사랑 – 황세헌, 김제우
5. 별 사랑 – 장완진
6. 마주 보는 눈길마다 (건전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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