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725084542-0514k_jangpilsoon1장필순 – 어느새/내 작은 가슴속에- 동아기획/서라벌(VIP 20088), 1989

 

 

베테랑 신인이 이 도시에 부치는 송가

대중음악은 도시를 근거로 성장한다. 이것은 대중음악이라는 형태의 음악이 생긴 이후, 크게 달라지지 않은 사실에 속한다. 그러나 대중음악이 도시에서 성장했다는 것과 이것이 도시 특유의 감각과 느낌을 제대로 전달한다는 것은 분명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대학생 음악 창작 동아리 ‘햇빛촌’과 여성 듀오 ‘소리두울’을 거친 베테랑 신인 장필순의 데뷔 앨범은 고도성장기 무한질주를 거듭해온 대도시의 감각, 분위기, 그리고 그 이면의 정서를 담은 ‘도시를 위한 도시의 송가’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상의 8할 이상은 스모그에 에워싸인 희뿌연 도시풍경과 닮은 그의 보컬 톤 때문이라 할 수 있다. ‘허스키하다’는 말로 간단히 표현되는 그의 음색은 단아하면서도 명징한 음색이 필요할 여성 포크 듀오에게는 지나치게 무거운(혹은 텁텁한) 소리였지만, 그를 위한 음반에서는 단연 빛을 발하고 있다.

그러나 농익은 데뷔 음반의 개성이 그의 목소리에서 시작하여, 이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당시 대중음악계의 손꼽히는 ‘젊은피’이자,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스타일리스트였던 김현철은 이 음반의 색깔을 결정지은 또 하나의 주역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동아기획 사단’이라 불렸던 선배 세대와 영.미 대중음악의 트렌드를 적재적소에 수용하는 탁월한 감각을 공유하였지만, 그들 음악에 서린 신산스러움은 말끔히 제거했다. 요컨대 유년 시절이 투사된 서울 어느 후미진 뒷골목에 대한 기억은 김현철에 이르러 휘황한 조명 아래 자태를 드러낸 압구정동에 대한 응시로 바뀔 수 있었다.

보사노바를 대중적으로 알린 타이틀 곡, ‘어느새’는 퓨전 재즈의 다양한 스타일을 탐색하는 김현철의 음악적 기호와 장필순의 개성있는 보컬이 만들어낸 최상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절정부없이 포말처럼 점점이 흩어져 페이드 아웃되는 이 곡은, 단번에 FM 라디오 프로그램을 장악했고, 도심의 카페를 장악했다. 모호한 여운을 남기는 그의 목소리는, 장필순에게 날한 여성성을 여과없이 뿜어내는 주류 여가수들과는 차원이 다른 격조를 부여하였다. 약간의 억측을 곁들이자면, 장필순의 데뷔 앨범을 둘러싸고 조성된 일련의 감성은 도시 젊은 여성의 취향에 정확히 부합하는 것이었다.

이 앨범에는 이후 그의 음악적 방향을 예고하는 곡들이 배치되어 있다. 관현악 편성을 한 영가 풍의 곡 ‘내 작은 가슴 속에’는 세상을 따듯하게 관조하는 그의 음악적 성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곡이다. (이 곡의 작곡자 손진태는 후속작의 음악적 파트너였다.) 이 앨범이 프로듀서이자, 타이틀 곡 ‘어느새’의 작곡자인 김현철의 앨범이 아닌, 장필순의 앨범으로 기억될 수 있는 이유는 상당 부분 그의 과거 그리고 이후의 음악을 성찰할 수 있는 이런 곡의 존재에서 찾아볼 수 있다. 20030722 | 박애경 ara21@nownur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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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곡
Side A
1. 어느새
2. 빨간리본
3. 점점 더
4. 잊고 싶을뿐
Side B
1. 내 작은 가슴속에
2. 나는 여기에
3. 내 마음 언제까지나
4. 잊지 말기로 해
5. 사랑은 이렇게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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