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725084146-0514k_jangpilsoon4장필순 – 하루 – 킹(KSC 4137A), 199503

 

 

또 다른 곳으로 향한 여행

장필순 4집인 [하루]에 대한 평가는 크게 두 가지 지점에서 나온다. 하나는 장필순이 ‘작곡’한 곡이 들어가기 시작한 작품이라는 것이다(작사는 예전에도 있었다). 통상 ‘싱어송라이터=아티스트’라는 관행적 등식에 따르면 장필순은 이 앨범부터 보컬리스트에서 아티스트로 진입한 것이다. 또 하나는 사운드적으로 과도기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음반은 ‘포크’적 감수성에서 모던 록적인 감수성으로 진화될 토대를 형성한다(모던 록적 사운드는 5집에서 본격화되었다).

이와 같은 두 가지 방향의 작업이 가능했던 것은 장필순 본인이 조동익과 함께 음반 전체의 진행과 기획을 맡았기 때문이었다. 즉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자유롭게 음반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새로운 인맥들의 진용이 보이기 시작한다. 김현철, 손진태, 정원영 등이 장필순의 이전 앨범의 주역이었다면 이 무렵부터 유재하 가요제 출신의 윤영배, 고찬용, 이무하 같은 새로운 얼굴들이 작곡과 연주를 맡으며 부각되기 시작한다. 윤영배는 특히 장필순의 4집 앨범부터 기타 세션 연주와 작곡에 참여하기 시작해 조동익과 더불어 일종의 하나뮤직 ‘밴드’로 활동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 앨범이 이전 앨범과 차별적인 지점은 어디일까. 이전까지 자주 사용되곤 했던 신서사이저는 잘 사용되지 않거나 부차적인 수단으로 변한 것 같다. 대신 다양한 분위기와 주법으로 연주되는 기타 중심의 사운드로 조정되었고, 간간이 다른 악기들이, 때때로 배킹 보컬의 하모니가 그 빈자리들을 채워주고 있다. 이전에 이런 악기나 백업 보컬이 사용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라, 이 음반에서는 전면에 부상한 다채로운 기타 톤과, 빈 공간을 메우는 배킹 보컬 등의 협업이, 장필순의 이전 음반에서 주도적이었던 신서사이저의 미끈하고 풍성한 사운드를 대신한 것처럼 들린다는 말이다(보컬 하모니가 많이 사용되었어도 장필순이 “잊지 말기로 해” 등과 같이 발라드로 들릴 법한 남녀 듀엣 송은 존재하지 않는다. “노란 모자”에서 잠시 남녀 두 사람이 부르기도 하지만 이 역시 남성 보컬의 역할은 보조적일 뿐이다).

그렇다면 장필순의 이전 앨범과 구체적으로 어떻게 차별되는지 살펴볼 차례다. 장필순이 작곡한 곡들 중 빠른 곡부터 들어보자. “나를 찾아서”는 피아노의 모토릭한 전주, 레게 리듬이 도입된 기타 연주가 특징적이다. “허물 수만 있다면”의 경쾌한 분위기 역시 피아노와 기타의 터치에 의해 주도된다. 이 두 곡에서 장필순의 보컬은 귀엽고 발랄한 분위기를 준다. 어떤날 시절의 조동익의 두 곡이 리메이크되어 있다는 것도 한 가지 특징인데, “하루”는 간주부나 후주부에서 기타와 스캣을 벌이는 등 경쾌하고 리드미컬한 분위기로, “비오는 날이면”은 느리고 서정적인 분위기로 편곡되었다.

무엇보다도, 마라카스와 타악기가 보싸 노바 리듬에 흥겨움을 실어주는 “나누니니나”(고찬용 곡), 챙챙거리는 기타와 그루브감 넘치는 베이스가 인상적인 “아쉬운 시간”(조동익 곡)은 이 앨범에서 다채로운 느낌의 업템포 곡으로 특기할 만하다. 이때 장필순의 목소리는 “나누니니나”의 건조하고 메마른 톤, “아쉬운 시간”의 친근하고 따뜻한 위무의 톤을 오간다. 이런 곡에서의 스케일이나 화성, 악곡 구조는 통상적인 어법에서 묘하게 이탈하는 듯 들리는데 장필순과 조동익이 마음대로 작업할 수 있었다는 조건이 나타나는 대목이 아닐까.

다시 장필순의 곡으로 돌아와 보자. 장필순 자신의 뿌리인 포크에 기대고 있는 곡에는 어쿠스틱 기타 (흔히 3핑거 주법이라고 알려진) 연주가 들리는 “순간마다”가 있다. 조동익의 곡 “혼자만의 여행”도 이런 어쿠스틱 기타(풍) 노래들에 속할 것이다. 윤영배의 곡도 기타 중심으로 연주되는데, “노란 모자”에서는 기타의 빠른 아르페지오 연주와 공간적 깊이를 주는 프렛리스 베이스 기타가 하늘거리는 목소리와 협연하며, “상경”에서는 느린 템포의 어쿠스틱 기타만으로 연주된다. 간소한 편성으로 부르는 또 하나의 곡인 “길”은 피아노 위주로 연주되는데 간주에서 오보에가 멜로디를 연주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가사들은 어떤가. 대략 ‘여행’이라는 컨셉트로 모아진다. “혼자만의 여행”, “나를 찾아서”, “길”, “상경” 같은 곡들은 제목부터 명시적이다. 이때 장필순의 목소리는 때로는 아쉬운 슬픔이(“상경”), 쓸쓸하지만 담담함이 서려 있고(“길”), 때로는 경쾌하고 발랄하다(“나를 찾아서”). 그 여행에서는 “잊었던 친구를 만나 깜짝 놀랄 때 내가 보게 되는 건 어쩌면 자신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순간마다 변해가는 내 모습’에 대한 성찰과 사색이(“순간마다”), “그대가 돌아오는 지친 언덕 위에 따뜻한 바람 불었으면 하얀 꽃잎 날릴 수 있도록” 기원하고 위로하는(“혼자만의 여행”) 풍경이 교차한다.

총평하자면, 이 음반은 장필순의 디스코그래피에서 다소 이탈된 것으로 들리지만 어떤 변화의 흐름에서 연속선상에 있다. 다시 말해 다른 지점으로 이행하기 위한 도약대이자, 과도기적인 음반인 것이다. 건조하게 뮤트된 스트러밍으로 시작해 다양한 톤으로 변모하는 기타, 비감한 경고의 목소리가 어우러지는 “상상해 보셨나요”는 5집에서 나타날 모던 록적 향방을 예시라도 하는 듯하다. 20030731 | 최지선 fust@dreamwiz.com

8/10

* 녹음한 곳은 리드 사운드(Lead Sound). 이 곳에서 한영애의 4집 [불어오라 바람아]나 양희은의 앨범 [1995 못다한 노래/내 나이 마흔 살에는]이 녹음되기도 했다. 리드 사운드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장필순과의 인터뷰를 참고하길…

수록곡
Side A
1. 하루
2. 나누니니나
3. 순간마다
4. 아쉬운 시간
5. 노란 모자
6. 길
7. 나를 찾아서
8. 허물 수 있다면
9. 혼자만의 여행
10. 상상해 보셨나요
11. 비오는 날이면
12. 상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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