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725083322-0514k_ohjangpark오석준·장필순·박정운 – 내 가슴에 아직도 비가 오는데 / 또 하루를 돌아보며 – 뮤직 디자인, 1990

 

 

찾아오지 않을 내일을 찾던 시기의 희망

영화 [굿모닝 대통령]의 O.S.T.를 겸한 음반이고, 음반의 주인공은 오석준, 장필순, 박정운 3명, 한때 ‘오장박’이라고 불린 프로젝트 팀이다…라는 것이 이 음반에 관한 기본 정보일 것이다. 따라서 각자가 노래한 트랙들을 분류해서 설명하도록 하겠다. 순서는 편의상 박정운 -> 장필순 -> 오석준으로 잡겠다.

앨범을 여는 트랙은 박정운의 곡 “내 가슴에 아직 비가 오는데”이다. 어쿠스틱 기타의 아기자기한 핑거링과 신씨사이저의 웅장한 소리에 이어 굉음과 더불어 ‘하드 로킹’한 사운드와 박정운의 샤우팅이 등장한다. 그를 발라드 가수로만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뜻밖의 곡이자 “오늘같은 밤이면”으로 인기가수가 되기 직전의 그의 면모를 볼 수 있다. 박정운의 또하나의 작품인, 영어 가사로 부르는 “It’s All Right”도 록의 감성을 가진 사람이 부르는 발라드곡이다.

두 번째 트랙으로 장필순이 부르는 “방랑자”는 작곡자가 가수의 목소리를 미리 배려하여 만들어진 예쁘고 사랑스러운 곡이다. ‘쓰리 핑거 반주의 포크송’이란 이미 유행이 지난 지 오래된 시점이었지만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의 편곡으로 포크가 어떤 형식으로든 살아남아 있음을 보여주는 트랙이기도 하다. 수잔 베가(Suzanne Vega)의 영향을 떠올릴지 여부는 청자의 판단에 맡겨 둔다. 한편 오석준과 부르는 ‘사랑의 듀엣’풍의 “내 마음은 그대 곁에”는 그녀의 디스코그래피 어디에서도 듣기 힘든 이색적인 곡이다. 또한 세 명이 입을 모아 부르는 “내일이 찾아오면”은 발랄하면서도 정감 있는 곡으로 지금도 FM 라디오에 적절한 곡이다.

나머지 트랙들에서는 오석준의 색깔이 확연히 드러난다. 그 색깔을 짧게 표현한다면 ‘신선하면서도 무난한’ 스타일이고, 영미권 평단의 용어를 이용하면 MOR(middle of the road)나 AOR(adult-oriented rock)이라고 할 만한 스타일이다. 게다가 영화의 사운드트랙이라는 특정한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작품이니만큼 그의 솔로 음반에 비해 신선함보다는 무난함이 더 부각된다. 따라서 개별 작품에 대한 미시적 해설보다는 거시적 총평이 어울릴 것 같다.

오석준의 작곡 스타일은 포크나 록뿐만 아니라 퓨전 재즈, 레게, 보싸 노바 등의 이색적(exotic) 장르들의 리듬과 화성을 적절히 도입한다. 물론 이런 도입의 목적은 멜로디를 풍성하게 장식하는 것 이상은 아니다. 추측컨대 버트 바카락(Burt Baccarach), 배리 매닐로우(Barry Manilow), 루퍼트 홈스(Rupert Holmes)같은 인물들이 그의 작곡 스타일의 자양분이 된 것으로 보인다. 회고해 보면 이는 1980년대 말 ~ 1990년대 초 등장한 신예 작곡가(혹은 싱어송라이터)의 암묵적 합의 같은 것이었는데, 이 합의에는 장르나 스타일뿐만 아니라 신씨사이저와 기타의 이펙팅, 그리고 그때부터 일반화된 디지털 레코딩을 이용한 화려하고 세련된(때로는 웅장한) 편곡과 프로듀싱도 포함된다.

이런 스타일의 음악은 ‘발라드와 댄스 사이의 과도기'(혹은 ‘조용필과 서태지 사이의 과도기’)의 틈새를 장식했다. 황당하게 들릴지는 몰라도 이 과도기는 ‘군부독재와 문민정부 사이의 과도기’이기도 했다. 이 과도기의 특징을 어떻게 표현할지는 적절한 언어가 떠오르지 않지만 과도기라는 것이 늘 그렇듯 이 시기도 ‘모호하다’는 특징을 갖는다. 모호하다는 말은 ‘전형’이 없다는 말이고, 그래서인지 한시적 프로젝트로 뭉쳤던 3인의 이후의 행로는 천차만별이 되었다. 오석준은 한 대기업 음반사의 직원을 거쳐 직업적 작곡가의 길을 걸었고(박기영의 히트곡 “시작”이 그의 대표적 작품이다), 박정운은 인기 가수로 등극한 뒤 지금은 소식이 뜸해진 상태이고, 장필순은 ‘언더그라운드’나 ‘얼터너티브’라는 단어에 어울리는 아티스트의 길을 걸었다. 그래서 이 앨범은 이때가 아니면 모이기 힘든 세 사람이 한데 모일 수 있었던 특별했던 시기의 스냅 사진처럼 다가온다. ‘내일’은 “내일이 찾아오면”의 희망찬 가사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찾아왔기 때문에… 20030723 | 신현준 homey@orgi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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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곡
Side A
1. 내 가슴에 아직도 비가 오는데 – 박정운
2. 방랑자 – 장필순
3. 내일이 찾아오면 – 오석준, 장필순, 박정운
4. 그대 내 마음속에 – 오석준
Side B
1. 또 하루를 돌아보며 – 오석준
2. 내 마음은 항상 그대 곁에 – 오석준, 장필순
3. It’s Alright – 박정운
4. 젊음이 남아있는 동안 – 오석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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