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ab On Radar – The Stolen Singles – Three-One-G, 2003 더러운 레이더에 걸려들다 미국에서 가장 작은 주인 로드 아일랜드(Rhode Island) 출신의 아랍 온 레이더(Arab On Radar)는 직장에서 해고된 공장 노동자들끼리 결성한 우울한(?) 밴드이다. 이들은 각자 Steve Type A(기타), Eric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보컬), Jeff Clinical Depression(기타), Craig Obsessive Compulsive Disorder(드럼)라는 괴상한 의학용어로 개명하고 정처 없는 투어를 다니기 시작한다. 글쎄, 투어라기보다는 청중을 찾아 헤매는 무일푼의 방랑에 가까왔지만 어쨌든 이 역마살 낀 아저씨들은 무려 45개 주를 떠돌아다녔다고 한다. 아랍 온 레이더는 1994년에 결성되었지만 스킨 그래프트(Skin Graft) 레이블을 통해 두 장의 앨범 [Soak the Saddle](1999)과 [Yaweh or the Highway](2001)를 발표하는데 그쳤고 이마저도 별 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다만 “치료약이 없는 소리의 질병(sonic disease)”이라는 [Alternative Press]지의 표현이 대변하듯 이들의 기괴한 사운드는 약간의 컬트 팬들을 만들어냈나 보다. 한편, 이들의 음악적 정서는 분노이다. 스티브는 “우리도 다른 밴드들과 같이 연주하고 싶지만, 모이기만 하면 분노와 증오만이 표출될 뿐이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들의 분노는 뚜렷한 주적과 명백한 모순을 향한 어떤 에너지의 분출이 아닌 힘없는 조롱이나 혼란스런 신경질에 가까워 보인다. 밴드를 하지 않았으면 감옥에 있었을지 모를 멤버들은 “사람을 패는 것보다는 악기를 두드리는 것이 낫다”라고 고백하지만, 이들의 강박증적 정서와 병적인 음악에서는 분노와 절패감을 넘어 ‘낙오자의 마지막 열정’, 혹은 ‘음악에 대한 절박한 애증’ 같은 것도 엿보인다. 정규 앨범들의 실패 후 이들이 내놓은 편집 음반 [The Stolen Singles]는 데모 테이프와 이들이 참여한 편집음반 등에 수록되었던 싱글들을 담고 있다. 앨범 발매 후 급기야 밴드가 해체되었다는 소식이 더해져서인지도 모르지만, 도둑맞았던, 아니 그 누구도 탐하지 않았던 저주받은 단편들은 나름대로 희소가치를 지니고 있다. 물론, 이들의 음악에 잘 짜여진 구조와 참신한 파격이 없었다면 이 앨범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폐품이라 말했을 것이다. 선율감과 무드라곤 찾아볼 수 없는 기괴한 기타 음과 노래인지 잠꼬대인지 모를 보컬의 조합은 글자 그대로 고문에 가깝지만 조금만 참고 귀기울이다보면 이들의 음악이 현학적인 실험주의와 로큰롤의 천박함 모두를 절묘하게 엿먹이고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첫 곡인 “Inventor”는 꽤나 경쾌한 그루브를 지니고 있지만, 끽끽거리는 기타 톤의 자극이 리듬감을 즐길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이들의 기괴한 사운드는 세 번째 트랙인 “Kangaroo”에 이르러 본색을 드러내는데, 이 곡은 두텁고 헤비한 백킹 라인과 유순하게 길들여진 청각기관에 상처를 낼 듯한 신경질적인 기타 스크래치가 강렬한 흥분감을 조성하고 있다. 반복적인 슬라이드 주법과 와우와우 이펙터의 과장된 혼용으로 노이즈의 덤벅이 된 “Pig Roast”, 귀곡성 같은 트레몰로에 뒤이어 에릭의 보컬이 고통스럽게 울부짖는 “Piggin’ in the Pumkin Patch”, 공명이 없는 현악기를 퉁기는 듯 에스닉한 기타 연주를 들려주는 “Running for Asthma” 역시 해괴하다. 이들은 자신들에게 영향을 준 밴드로 동향 출신인 식스 핑거 새틀라이트(Six Finger Satellite)와 버쓰데이 파티(Birthday Party), 반 헤일런(Van Halen) 등을 언급하고 있지만, 그렇게 쉽게 정리되지는 않는다. 아랍 온 레이더의 지저분한 사운드는 한편으로 매우 관습적으로 들리기도 하지만, 팝 그룹(Pop Group)과 같은 아방 펑크, 쓰로빙 그리슬(Throbbing Gristle)의 그로테스크한 인더스트리얼 등 록 음악의 전위파들을 떠올리게 한다. 퍼즈 톤의 헤비 메탈 리프를 차용한 듯 들리는 “Kangaroo”와 “Samurai Fight Song” 정도만이 비교적 평이하게 들릴 뿐 대부분의 수록곡에서 스티브와 제프의 연주는 트윈 기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조화롭지 못하며 코드 진행과 패턴을 철저히 무시하는 반연주(anti-play)로 점철되어 있다. 특히 이들의 카오스적 연주가 극단화된 마지막 곡 “O. Henry”는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Dazed and Confused”의 도입부를 연상케 하는 완전한 형식 파괴의 노이즈 잼을 펼치고 있는데 중반부 이후 혼란스럽게 난사되는 기타 애드립과 소름끼치는 웃음소리는 약물에 의한 환각상태마저 의심케 한다. 아랍 온 레이더의 기괴한 로큰롤은 헛웃음을 터트리게 하다가도 오싹하도록 파괴적이다. 그리고 달콤한 소리의 느물거림에 진저리를 치던 청각의 레이더에 걸린 더러운 음의 조각들은 갈증 뒤에 마시는 썩은 물 같다. 한 번 들으면 피식 웃고, 두 번 들으면 얼굴을 찡그리게 된다. 세 번쯤 들었을 땐 자신의 낡아빠진 청각의 레이더를 부숴야겠다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평안하게 귀를 홀리는 윤기 가득한 소리들이 역겨웠던 이들이라면 기쁘게 썩은 물을 들이킬 것이다. 안락한 침상 곁에 두었던, 살랑거리는 소리들에 욕설을 퍼부으며 이토록 더럽고 무질서하게 널린 노이즈의 파편들 위에서 불길하게 몸을 뒤척이는 거부하기 힘든 기묘한 쾌감! 밴드는 해체되고 이들이 다시 공장에 들어갈지 동네 불량배로 전락할지 다시 정처 없는 방랑에 빠져들지 알 수 없지만, 갑자기 모든 소리들이 신물나게 지루하게 들릴 때쯤 나는 작동을 멈춰버린 레이더에 다시 걸려들지도 모르겠다. 20030713 | 장육 EVOL62@hanmail.net 6/10 수록곡 1. Inventor 2. Aisle 5 3. Kangaroo 4. Pig Roast 5. 7.2 6. Samurai Fight Song 7. Swimming With a Hard On 8. Piggin’ in the Pumkin Patch 9. 3 Meals Away from a Crack Whore 10. Running for Asthma 11. Miss American Hair Pie 12. O. Henry 관련 사이트 Arab On Radar 공식 사이트 http://www.arabonrada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