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717014448-phairLiz Phair – Liz Phair – Capitol, 2003

 

 

특별하게 흔들어 주세요

“Nobody tells you where to go, baby”(R.E.M. “Drive”). [Exile In Guyville] 이후로, 리즈 페어의 경력은 계속 하강곡선을 그려왔다. 그녀를 인디 록 퀸으로 등극시켰던 전설적인 데뷔 음반이 우연 내지 기적이었을지 모른다는 주변의 우려는 사실로 드러나는 듯 했다. 범작이었던 [Whip-Smart] 이후 4년을 보낸 뒤 마타도어에서 마지막으로 발매한 [whitechocolatespaceegg]는 데뷔 음반의 거친 질감을 살려보려 노력한 흔적이 보였으나, 이도저도 아닌 난삽한 음반이 되었다. 데뷔작이 최고작이 된 많은 뮤지션들의 운명을 그녀 또한 따라가는 것 같았다.

5년이 지났다. 그녀는 최근 새 애인이 생겼고, 아들도 잘 자라고 있으며, 마타도어를 완전히 떠나 캐피틀 레코드사에 둥지를 틀었다. 그리고 드디어 네 번째 정규 음반이 나왔다. 플레이밍 립스(The Flaming Lips)와의 투어도 예정되어 있다. 셀프 타이틀은 새로운 출발에 대한 다짐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세련된 음반 커버에도 예전과는 다른 분위기가 풍긴다. 그러나 기대감은 여기까지다. 음반을 다 듣고 나면 페어가 예전의 팬을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녀는 새로운 팬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리즈 페어의 신보는 아마 그녀의 음악 인생에서 가장 큰 전환점이 될 것이다.

한 마디로, 페어는 지금까지 자신이 해왔던 음악을 모두 내팽개쳤다. 그 대가로 얻은 것은 인터넷 라디오를 틀면 하루에도 수십 곡씩 들을 수 있을 재미없는 AOR(Adult Oriented Rock)이다. 보컬 파트에는 앨라니스 모리셋(Alanis Morissette)도, 셰릴 크로(Sheryl Crow)도, 쥬얼(Jewel)도, 사라 매클라클란(Sarah Mclachlan)도, 리앤 라임스(Leann Rimes)도, 에이브릴 라빈(Avril Lavigne)도, 운만 좋다면 당신도 들어갈 수 있다. 음반에 담긴 곡들이 리즈 페어의 곡이라는 근거는 노래를 부른 사람이 리즈 페어라는 사실밖에 없다.

첫곡 “Extraordinary”는, 그래서, 평범한 록 넘버임에도 특별하게 들린다. 강하지만 부담없이 내리꽂히는 심심한 파워 코드, 에이브릴 라빈과 피트 욘(Pete Yorn)의 음반에도 참여했던 테크노 뮤지션 매트릭스(The Matrix)가 다듬어 준 매끈하고 공허한 사운드, 값싼 케이크같은 코러스, 그 케이크 위에 뿌린 후추같은 전자음, 그리고 장난감 꾀꼬리같은 페어의 목소리. 남성들에게 ‘ordinary average sane psycho’ 따위로 취급되면서도 자신을 특별하다고 여기는 여성들에게 “Who the hell are you?”라고 일갈하는 가사에서 그녀의 이전 모습을 찾아보려 노력했지만 여기 어디에도 우리를 전율케 했던 날선 통찰력은 없다. 무엇보다, 들리는 소리들이 그런 판단을 불가능하게 한다.

“Red Light Fever”를 거쳐 첫 싱글 “Why Can’t I”를 지나 “It’s Sweet”까지 듣게 되면, 이것이 메이저 레이블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이 아니었음이 분명해진다. 그녀는 이렇게 노래하는 것이 좋은 것이다. 연하의 멋진 남자와 보내는 하룻밤을 노래하는 “Rock Me”는 [앨리의 사랑만들기]를 따라하는 것 같다. 나머지 노래들은… 더 할 말이 없다. 리즈 페어의 신보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 글을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녀가 노리는 팬은 위에서 언급한 뮤지션들의 팬이지만, 음반의 내용물로 판단하건대 그녀는 옛 팬은 말할 것도 없고, 충격적인 뮤직 비디오라도 찍지 않는 한 셰릴 크로나 쥬얼의 팬들에게도 주목받을 수 없을 것이다(쥬얼은 그렇게 했음에도 실패한 것 같지만).

그러나 이렇게 노래하고 있는 그녀는 즐거워 보인다. 콘플레이크 CM송처럼 “Baby baby baby if it’s alright / Want you to rock me all night”(“Rock Me”)을 부르는 사람에게 “Fuck And Run”을 부르던 너는 어디로 갔는가, 라며 질책하는 것은 내 집착이 깊다는 것을 말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살아왔고, 이제 다른 삶을 살아보려는 것이다. 그리고 실은, 이 모습도 그녀에겐 제법 어울린다는 생각이 음반을 몇 번 듣고 나서부터 들기 시작한다. 그러니 이왕 이렇게 된 거, 미즈(Ms) 페어의 앞날이 밝게 빛나길. 다시 한 번 [롤링 스톤] 커버에 등장할 수 있길. [GQ]의 커버스토리에도 실릴 수 있길. [Now] 15탄쯤에 그녀의 곡이 실릴 수 있길. 블럭버스터 영화에 출연해서 주제가도 같이 부르길. 그래서 사람들이 그녀가 제니퍼 러브 휴이트(Jennifer Love Hewitt)처럼 뮤지션을 겸업하는 영화배우라고 생각하게 되길. 20030717 | 최민우 eidos4@freechal.com

1/10

수록곡
1. Extraordinary
2. Red Light Fever
3. Why Can’t I
4. It’s Sweet
5. Rock Me
6. Take a Look
7. Little Digger
8. Fire Walker
9. Favorite
10. Love/Hate Transmission
11. HWC
12. My Bionic Eyes
13. Friend of Mine
14. Good Love Never 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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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Liz Phair 공식 사이트
http://www.lizphai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