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z Phair – Exile In Guyville – Matador, 1993 Fuck You Guyz, Sadly 알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이고 인터넷에도 모두 있는 사실이지만, 낯선 독자(혹은 게으른 독자)도 있을 것이니만큼 간략하게 서술해 보자. 본명 엘리자베스 클락 페어(Elizabeth Clark Phair). 1967년 4월 17일 코네티컷의 뉴 헤븐에서 태어났으며, 부유한 집안의 입양아였고, 많은 입양아들이 그랬듯 십대 시절에 그 사실을 알고 방황의 시기를 거쳤다. 훗날 인디 밴드 컴(Come)의 기타리스트가 되는 크리스 브로코(Chris Brokaw)와 만나 음악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카고로 건너가 걸리사운드(Girlysound)라는 자체 레이블을 만들어 자가제작한 데모 테이프를 공원에서 팔았지만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프로듀서 브래드 우드(Brad Wood)를 만나게 되었고, 그는 페어를 마타도어 레이블에 소개시킴과 동시에 데뷔 음반의 프로듀서를 맡았다. 1993년 5월에 발매된 데뷔 음반 [Exile In Guyville]은 빌보드 앨범 차트 196위까지 오르는 데 그쳤지만 결국 그 해 말까지 인디 레코드로서는 드문 20만장이라는 판매고를 기록했으며, 각종 음악잡지에서 그 해의 음반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게 되면서 페어는 순식간에 스타덤에 올랐다(결국 이 음반은 골드 레코드를 따냈다). 리즈 페어의 전설적인 데뷔 음반에 대해 이야기할 때 흔히 사용되는 몇 가지 상투구가 있다. 인디-로파이, 얼터너티브, 롤링 스톤스(The Rolling Stones), 페미니즘, 그리고 마지막으로 섹스에 관한 노골적인 가사들이다. 이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며, 이 글의 목적은 ‘소개’이므로 아주 자세한 언급은 피하려 한다. 더구나 그녀를 유명하게 만든 가사의 문제는 분명 영어권 국가가 아닌 이곳에서 온전히 소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할 수 있는 한 간략하게 말함으로써 이 글의 기능을 충족시켜보고자 한다. 우선, 인디-로파이와 얼터너티브. 언뜻 들었을 경우, 이 음반은 쉽사리 장점을 파악하기 어려운 쪽에 속한다. 음반의 소리들은 조악하며, 그 중 일부는 걸리사운드 시절의 데모 테이프를 손질한 것이다. 최근의 신보를 듣고 페어를 알게 된 사람들에겐 믿기지 않는 사실일지도 모르겠지만 굵고 가식없이 중얼거리듯 노래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노래를 예쁘게 만드는 데는 그리 관심이 없는 것처럼 들리며, 노래 또한 청자에게 아부할 생각은 별로 없는 것처럼 들린다. 버스와 코러스의 구분은 명확치 않고, 눈에 띄는 선율도 발견되지 않는다. 무심하게 툭툭 떨어지는 드럼과 단순한 기타 스트로크로 시작하는 “6’ 1″”에 대한 첫인상은 ‘미국 대학생들이 점심시간에 스치듯 들었을 컬리지 록’이라는 것이다. 싸구려 드론 사운드가 웅웅거리는 “Shatter”나 특징없는 포크-컨트리 록처럼 들리는 “Mesmerizing” 또한 무척 단순해 보인다. 그 인상은 두어 번 되풀이해 듣는 순간부터 천천히 무너진다. 각각의 곡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감정을 흐트러뜨리지 않은 채로 무척 잘 구성되어 있으며, 들을수록 매혹적으로 다가서고, 아울러 음반에 매설된 갖가지 소리들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게 된다. 이를테면 “Mesmerizing” 끝부분의 사악한 중얼거림은 아주 작게 처리되었지만, 거기에 주의를 기울일 때와 기울이지 않을 때의 곡의 분위기는 거의 다른 곡에 가깝게 변하는 것이다. 거의 변화없이 진행되는 “Girls, Girls, Girls”를 떠도는 코러스도 같은 맥락이다. 특징없던 사운드는 듣게 될수록 음습하고 차갑게 변하고, 음반은 뒤로 갈수록 점점 더 차가워진다. 싸늘한 전자음과 어린아이들의 합창 속에서 아무 감정 없이 포르노그래피적 상상을 읊조리는 “Flower”를 들어 보라. 다음으로, 롤링 스톤스. 금방 알아챌 수 있는 사실이지만, 이 음반의 제목은 롤링 스톤스의 걸작 [Exile On Main Street](1972)를 비꼰 것이다. 음반의 수록곡이 스톤스의 음반과 똑같은 18곡이라는 사실을 남성적 록의 정점에 서 있는 스톤스의 음반에 대한 직접적인 대답으로 해석하고 싶은 것은 당연하나, 이는 우연의 일치이다. 직접적인 비유는 단지 제목까지다. 다만 시대도 변했고 사람도 변했으나 남성적 록이라는 절대명제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한 반작용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좀 더 그럴듯한 해석으로 보인다. 좀 더 논의를 확장하자면 이를 후일의 릴리쓰 페어(Lilith Fair) 페스티벌과도 연계지어 말할 수 있겠지만 이는 이 글의 범위를 넘어선다. 다만 여기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적어도 당시의 페어가 자신의 위치, 즉 남성적 록의 영토에서 활동하고 있는 자신에 대한 또렷한 의식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섹스와 가사. “나는 내 삶을 사랑하고 / 널 증오해”라며 매몰차게 문을 여는 “6’ 1″”부터 그녀의 태도는 심상치 않다. 화자는 밤마다 문을 잠그면서 “I memorize their stupid rules”라고 또렷이 중얼거리다가도(“Help Me Mary”) 어느새 세례 요한과 살로메를 재치있고 날카롭게 끌어다 쓰고(“Dance of the Seven Veils”), “꼬나보지도 / 똑바로 보지도 마 / 주머니에 손 넣고 있잖아, 걱정 말란 말야 / 난 나쁜 짓 한 거 없거든?”(“Never Said”)이라고 냉소적으로 노래한다. 제목 때문에 유명해진 “Fuck and Run”은 그 제목이 주는 선동적인 느낌이나 “I want a boyfriend / I want a boyfriend / I want all that stupid old shit / Like letters and sodas” 같은 ‘거만한’ 언사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는 관계와 소통의 불가능성에 대한 슬픔을 담고 있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음반의 제목이 총론이라 할 때 가사는 각론이다. 여성으로서의 성적 욕망, 여성으로서의 관계에 대한 희망들은 계속해서 ‘그들의 룰’에 의해 억압받는다. 그로 인한 분노와 슬픔은 이 음반에서 낮고 격렬하게 그르렁거린다. 이 모든 것들은 공격적인 듯 하다가도 싸늘하게 가라앉는 사운드와 완벽하게 조응하면서 음반을 더없이 황량하게 만들고 있다. 음반 속지 사진에서 마치 포르노 배우처럼 포즈를 잡고 있는 페어의 모습은, 그래서, 남성적 타자의 시선에 대한 조롱이자 분노이고 슬픔이다. 인형처럼 예쁜 그녀의 얼굴은 그 모순을 극대화시킨다. 포르노그래피적 욕망 자체가 그렇다는 것을 사운드와 가사로 이렇게 정직하게 짚어낸 음반은 없었다. 페어의 시작은 성공적이었지만, 그 뒤는 그러지 못했다. 이듬해 나온 음반 [Whip-Smart](1994)는 전작에 비해 팝적인 감성을 강화한 음반이었고, “Chopstick” 같은 뛰어난 곡을 담고 있었지만 여러 면에서 급조되었다는 느낌이 강한 음반이었다. 이 음반은 마타도어의 대대적인 홍보와 “Supernova”를 매일같이 틀어대는 MTV의 지원, [롤링 스톤] 커버에 실린 그 유명한 네글리제 사진에 힘입어 골드 레코드를 따내는 데 성공했지만 평단도, 대중도, 심지어는 레코드사조차도 실망스런 빛을 감추지 않은 음반이었다. 4년의 시간을 보낸 뒤 발매한 세 번째 음반 [whitechocolatespaceegg](1998)은 [Exile In Guyville]에 대한 자기복제처럼 비칠 뿐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Exile In Guyville]이 거둔 성과에 흠집을 내지는 않는다. 이 음반은 이미 그 자체로서의 역사를 살기 시작했고, 지금도 살고 있으며, 아마 앞으로도 살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걸로 좋은 것이다. 여전히 당신은 이 음반과 함께 할 수 있다. 그것이 유일한 진실이라 해도, CD를 손에 쥔 우리로서는 그리 가슴아픈 진실이 아닐지도 모른다. 20030717 | 최민우 eidos4@freechal.com 10/10 수록곡 1. 6′ 1″ 2. Help Me Mary 3. Glory 4. Dance Of The Seven Veils 5. Never Said 6. Soap Star Joe 7. Explain It To Me 8. Canary 9. Mesmerizing 10. Fuck And Run 11. Girls, Girls, Girls 12. Divorce Song 13. Shatter 14. Flower 15. Johnny Sunshine 16. Gunshy 17. Stratford-On-Guy 18. Strange Loop 관련글 Liz Phair [Liz Phair] 리뷰 – vol.5/no.14 [20030716] 관련 사이트 Liz Phair 공식 사이트 http://www.lizphai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