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2003년 6월 22일
장소: 홍대 앞 모처

본인의 말로는 “기다리다 지쳐서 한꺼번에” 나왔다지만, 올해 사람들은 한희정이라는 뮤지션이 참여한 두 장의 음반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두 장의 음반에서 그녀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 아닌, 음반의 색깔을 좌우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게다가 한 장은 ‘인디’ 음반이었고, 다른 하나는 ‘메이저’ 음반이었다. 독특하다 불러도 이상할 일이 아니고, 그래서 ‘푸른새벽’도 ‘더더’도 아닌 ‘한희정’과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도 이상할 일이 아닐 것이다. 창백하고 여리되 또렷한 목소리와 함께, 그녀는 차츰차츰 자신의 음악적 영역을 넓혀 가는 중이다.

노래를 통해 상상하던 것과는 다르게 한희정은 밝은 모습으로 인터뷰에 응했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가사에서 느끼곤 하던 ‘머뭇거림’은, 그녀의 대답들에도 여전히 배어 있었다. 그래서 어떤 부분은 말 사이의 의미를 느끼지 않고서는 명확히 짐작하기 어려운 점도 있었다. 그것은 ‘프로로서의 능수능란함’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었고, 그렇다고 속내를 감추는 데서 나오는 의뭉스런 태도라고 보기도 어려웠다. 원래 인터뷰는 한희정과 이루어지기로 되어 있었으나, 더더의 드러머 김태종도 배석하여 (사정상 다 실을 수는 없는) 여러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1. THe ThE – THe ThE Band

20030709043409-1[weiv]: 신보 얘기부터 할게요. 음반은 언제 제작된 건가요? 제작이 다 되고 나서도 좀 늦게 나왔다고 들었는데…
한희정: 3집 발매전후에 만들었던 곡들이 다소 수록되어 있어서 기간을 정확히 말하긴 좀 어려워요. “슬픔”을 제외하고는 다 영준 오빠의 홈 스튜디오와 제 집에 있는 녹음 장비로 녹음한 거구요. “슬픔”은 3집 작업중 임대한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트랙이에요.

[weiv]: 보컬 스타일이 변한 듯 합니다. 3집에서는 탁하고 굵은 편이었는데 이번에는 거의 그런 목소리가 들리지 않거든요. “작은 새”, “Tomorrow”의 백보컬 정도를 제외하면.
한희정: 목소리는… 제가 의도한다기보다는 노래하면서 흐르는 대로 맡기는 것이라… 바뀌었다면 그런 줄 알아야죠(웃음). 3집 같은 경우는 첫 앨범이라 아쉬움이 많이 남긴 해요.

[weiv]: 새로 보강된 밴드 멤버들(드럼의 김태종, 베이스의 이창현)은 어떤 경로로 만나게 되었는지요.
한희정: 창현이 오빠 같은 경우는 영준 오빠와 예전에 음악을 같이 했던 사이고, 태종이는… 인천에 사는 제 친구가 소개시켜줬어요.

[weiv]: 태종씨는 이 전에는 밴드 경력이 없었고요?
김태종: 스쿨밴드 정도였어요. 더더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밴드보다는 레슨 쪽에 신경을 썼어요.

[weiv]: 3집은 한희정/김영준 두 명의 멤버에 세션을 기용한 형태였는데, 지금은 밴드 체제입니다. 그 당시에도 밴드를 하고 싶었는데 여건이 허락치 않았던 것인가요 아니면 그때는 밴드의 형태를 원하지 않았던 것인가요.
한희정: 제가 더더에 들어온 뒤 듣게 된 건데… 원래 더더가 이인 체제였던 게 밴드 생활이 힘들어서 시작한 거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3집 이후 밴드로 가면 어떻겠느냐고 제가 제안을 했어요. 더더에 대한 그동안의 ‘선입견’을 어떻게든 없애고 싶었고, 라이브시 팀웍 문제도 있고…

[weiv]: 3집은 김영준의 솔로 프로젝트에 한희정이라는 보컬이 목소리를 얹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하지만 신보에서는 희정씨의 역할이 커졌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게 되네요.
한희정: 저번 음반에서도 작사는 거의 제가 했지만… 3집에 비해 이번 앨범은 스스로도 자주 꺼내서 듣게 돼요.

[weiv]: 만족스러우신 건가요.
한희정: 그걸 그렇게 말씀하실 수도 있지만…(웃음) 아무튼 제가 자주 듣게 되요.

[weiv]: 전체적으로 록 성향이 강한 곡은 브릿팝의 영향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멤버들이 영국 쪽 음악을 좋아하는지요.
한희정: 영준 오빠도 그렇고, 제가 특히 좋아하죠. (태종씨는?) 얘는 늙은이에요(웃음)
김태종: 창현이형 같은 경우는 디페시 모드, 큐어… 저는 블루스를 많이 들어요.

[weiv]: 이번 음반은 안정적이라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비결이라면?
한희정: 영준 오빠가 더더란 이름으로 활동한 게 10년 가까이 되는데… 말을 들어보면 순탄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아요. 오히려 그래서가 아닐까 싶어요(웃음)

[weiv]: 녹음 당시 신경을 많이 썼던 곡은 어떤 곡이 있을까요. 개인적으로는 “Save Me”와 “Alice”, “작은 새”가 그런 곡 같던데…
한희정: 공을 안들인 곡이 있으면 안되겠죠? (웃음) 하지만 신경쓴 부분이라면…… 곡들마다 스타일에 맞는 드럼 톤을 잡는 데 특히 신경을 많이 썼어요. “Save Me”는 ‘세이브’를 못해서 세 번이나 파일이 날아가는 바람에 녹음을 그만큼 다시 했던 곡이구요(웃음), “Alice”는 어쩌다 제가 멜로디를 흥얼거렸는데 그게 시작이 돼서 즉흥적으로 녹음한 곡이에요.

[weiv]: 음반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곡이 있다면요.
한희정: 멤버들은 공통적으로 “In”을 제일 좋아해요. 저 같은 경우는 “You”도 좋아하고.
김태종: “In”도 그렇고, 저는 “작은새”도 좋아해요.

[weiv]: 푸른새벽과 더더의 신보는 김영준 씨의 개인 스튜디오에서 녹음되었습니다. 제작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이점 외에 음악적인 면에서도 스튜디오를 대여하는 것보다 좀 더 나은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하시는지요.
한희정: 3집은 두 군데에서 다 녹음했었는데…… 예를 들면, 집에서 녹음한 기타 톤에 비해 녹음실에서의 톤이 마음에 안 들었던 경우가 있었어요. 사실 이번 앨범도 스튜디오를 대여할 생각을 했었지만… 어쩌다 보니 그냥 전부 다 홈 스튜디오에서 했고, 결과적으로는 그게 더 나았던 것 같아요. 덕분에 창현 오빠는 녹음실 엔지니어의 역할을 맡고 영준 오빠는 믹싱 엔지니어를 맡았죠.

[weiv]: 음반 제작시 제작사의 간섭이 있었는지요. 있었다면 어느 정도였는지…
한희정: 음반을 내놓기 전에… 타이틀곡에 대한 강박관념이 조금 있었어요. 소위 말해 ‘꽂히는 곡’을 만들어야 한다는. 하지만 곡 자체에 대한 간섭은 없었어요. 바꾸라든가, 밖에서 받아오라거나, 같은 식의 간섭은 없었던 거죠. 하지만… “그대 날 잊어줘” 라디오 에디트 트랙은 회사에서 요구한 곡이었어요. 라디오에 틀어달라고 할 때 곡이 길면 잘 안 틀어 주거든요. 할 수 없이 짧은 버전으로 하나 더 넣은 거죠

[weiv]: 공연은?
한희정: 8월중에 할 계획을 세우고 있어요.

2. 푸른새벽 – [Bluedawn]

20030709043409-2[weiv]: 이미 많이들 알고 계신 거지만, 쏘로를 만나게 된 경위를 말씀해 주실 수 있는지요.
한희정: 쏘로가 데미안이라는 팀으로 활동할 때 제 친구 소개로 공연을 보러 갔었어요. 2001년 2월인가 3월이었는데… 그 친구가 쏘로한테 제 얘기를 해서 연락이 닿았어요. 그 뒤로 이런저런 얘기도 주고받고 하다가 친해졌는데, 포크 성향의 몽롱한 음악을 하고 싶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해 보자고 그랬죠. 몽롱하고 어쿠스틱한 사운드는 저도 좋아했으니까.

[weiv]: 캬바레와 계약을 맺은 것은 누구의 주선이었나요.
한희정: 영준 오빠가 이성문 씨와 안면이 있어요. 그래서 연결이 됐어요.

[weiv]: 이 음반 역시 ‘틈틈이’ 녹음한 건가요?
한희정: 아뇨. 쏘로의 학교 문제 때문에 여름방학이 되어서 녹음을 했어요. 두 달 정도 걸렸고요.

[weiv]: 소리는 겨울 소린데, 녹음은 여름에 하셨군요. 작사 작곡을 거의 전담한 듯 한데, 개인적으로는 이 경험이 더더의 네 번째 음반에서 음반에 나타나는 ‘존재감’의 바탕이 되었던 듯 합니다.
한희정: 사실 제가 이 푸른새벽을 ‘경험상’ 시작한 건 아니었거든요. 그저 더더에서 하지 못한.. 제가 개인적으로 하고 싶었던 음악을 하고 싶었고, 또 그 덕에 어떤 ‘대리만족’ 같은… 음악에 대한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어요. 지금은 많은 분들이 아시지만… 그때는 푸른새벽이 제 안식처와 같은 곳이었거든요.

[weiv]: 드럼은 김태종 씨가(오렌지 드링크라는 가명) 치셨네요, 그러고보니.
김태종: 네. 특히… “소년”이란 곡에서는 좀 다른 방식으로 녹음을 했어요. 일반적으로는 드럼 치고 그 위에 노래를 얹는 건데, 그 곡 같은 경우는 이미 곡이 다 완성되어 있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노래에 맞춰 드럼을 쳤는데, 그걸 그대로 갖다 쓴 게 아니라 거기다 이펙팅을 걸어서 다시 입히고 그랬어요.

[weiv]: 음반 홍보는 ‘드림 팝’이라고 되어 있는데, 막상 들었을 때는 포크 성향의 인디 팝이라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포크 쪽도 좋아하시는지요.
한희정: 저와 쏘로 둘 다 몽롱한 사운드를 좋아해요. 그래서 한번 그렇게 만들어 보자 했었는데, 다 만들고 나선 둘 다 ‘이게 드림 팝이야?’ 그랬었어요(웃음). 포크 쪽도 좋아하고요.

[weiv]: 음반을 듣다 보면 ‘일렉트로닉’한 효과음도 들립니다. 그럼 그건 프로듀싱을 맡은 김영준씨 취향인지?
한희정: 쏘로의 취향도 그래요. ‘노이지’ 한 것도 좋아하고…

[weiv]: 더더의 가사도 그랬지만, 거의 대부분의 가사에서 ‘머뭇거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할 말이 아직 남아 있는 것 같은데 핵심을 비켜간다는 인상인데요, 가사를 쓸 때 어떤 점을 염두에 두면서 쓰게 되는지요.
한희정: 가사에 자신의 정치적 성향이나 독설을 직접적으로 담아내는 뮤지션도 물론 있지만… 전 직설적인 표현 같은 걸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요. 뭔가 말하려 하다가도 관두게 되고… 또 가사를 쓸 때는 어떤 것을 써야지, 하고 맘먹고 쓰는 게 아니라 그때그때 떠오르는 느낌이나 이미지 같은 것을 갖고 쓰는 경우도 많거든요… 그래서 때로는 써놓고도 나중에 봤을 때 이게 무슨 말이야, 싶을 때도 있어요(웃음). “시념” 같은 경우 그랬어요. 물론 들으시는 분들이 잘 알아서 판단하시겠지만요.

3. 한희정

20030709043410-3[weiv]: 기본적인 인적 사항에 대해 여쭤보겠습니다. 생년월일/가족관계/성장하신 곳/다니신 학교는?
한희정: 1979. 6.3 / 1남 2녀 중 장녀 / 서울 / 추계초등학교 – 중앙여중 – 금란여고 – 숭실대 중퇴

[weiv]: 언제, 어떤 계기로 음악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음악을 시작할 때 영향을 준 주변인물이 있었다면 누구인지요.
한희정: 어릴 땐…… 동요를 잘 부르고 싶었어요. 그런데 생각만큼 잘 되진 않았죠. 목소리가 곱질 못해서…(웃음). 피아노는 6살 때부터 배웠고, 친척 중에 바이올린으로 독일 유학을 간 언니가 한 분 계세요. 그 언니를 통해서 바이올린도 배우고… 전공할 생각도 했었지만… 그 때는 자의가 아니라 타의여서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은 갖지 않았던 것 같아요.

[weiv]: 더더 활동을 시작하기 이전에는 전혀 음악 활동을 하지 않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어쩌다가 프로로 데뷔하게 되었는지요.
한희정: 웹보드에서 저와 맞는 밴드를 찾던 중에 영준 오빠가 올린 글을 봤어요. Musician’s Webboard라는 곳이었는데… 영준 오빠가 보컬을 찾는다는 광고를 냈었거든요. 더더라는 말은 없었고. 경험있는 사람 찾는다길래 선뜻 연락은 못하고, 누군 뭐 처음부터 경험이 있느냐, 연락을 기다리겠다, 그런 내용의 글을 전화번호와 같이 남겼죠. 그러다 2주 후에 연락이 와서 오디션을 본 건데… 벌써 4년 전이네요.

[weiv]: 그래서 학교도 관두신 거고요?
한희정: 네.

[weiv]: 예체능계였나요?
한희정: 아뇨. 인문계였어요(숭실대 행정학과).

[weiv]: 큰 결심 하셨네요(웃음). 어떻게든 졸업장은 따두자, 는 게 일반적인데.
한희정: 사실 크게 신경쓰지 않았어요. 공부는 나중에 다시 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솔직히 말씀드려서, 공부하기 싫어서 그만뒀어요(웃음). 제가 그때 배우고 있던 게 행정학인데… 배워두면야 쓸모가 있겠지요. 하지만 그땐 그걸 공부하는 것이 제게 어떤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weiv]: 음악을 시작할 당시 가장 좋아하셨던 뮤지션은 누구였는지요.
한희정: 더더 시작할 당시에는… 가리지 않고 다 들었는데, 특히 토리 에이모스를 좋아했고… 피오나 애플, 수잔 베가도 좋아했어요. 메이지 스타도 좋아했고요. 지금은 타히티 80 많이 들어요. 이번 신보도 좋았구요.

[weiv]: ‘여성이 프론트를 맡고 있는 모던 록 밴드’에 대한 전형적인 시선이나 요구사항 (‘예쁘게 보여야 한다’ 같은) 때문에 밴드 뿐 아니라 자신이 피해를 본 적이 있다고 느낀 적이 있나요. 홈페이지에 쓰신 글 같은 걸 보면 가끔씩 회의를 느끼시는 것 같아서…
한희정: 음… (잠시 생각한 뒤) 얼마 전에 방송국에서 보아를 봤어요. 리허설 하는 걸 보는데, 정말 잘 어울리는 거에요. 아 얘는 천상 이쪽바닥에서 먹고살아야 할 애다, 그런 생각이 팍 들더군요. 그에 반해 전 제 모습에 회의를 많이 느꼈죠……네.(웃음)

[weiv]: 근래의 활동을 보면, 싱어 송라이터라는 자신의 영역을 꾸준히 넓혀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과 방송활동을 조화시키는 게 어렵다는 생각을 하시는 건가요.
한희정: 음…… (다시 생각한다) 예를 들면 자우림의 김윤아씨는 그런 걸 잘 하는 것 같아요. 외모나 음악적으로 자신을 돋보이게 할 줄 알고, 이미지를 잘 가꿔서 그걸 사람들에게 내보일 줄도 알고. 그런데 저 같은 경우는.. 푸른새벽이 더 잘 어울린다고 주변에서 많이들 그러죠.(웃음)

[weiv]: 그런 점에서 푸른새벽 활동이 어떤 ‘위안’이 되었겠지만, 인디 쪽에서도 나름의 실망 같은 걸 겪으셨던 게 아닌가 생각도 들었습니다. 홈페이지에 ‘불만’을 터뜨리신 적이 있었는데…
한희정: 푸른새벽이 한참 알려지게 됐을 때, 저에 대한 인신공격을 하는 사람들이 두어 명 있었어요. 푸른새벽 홈페이지에 들어가는 건 저로서는 집에 가는 것과 마찬가지였는데, 그런 글들이 올라와 있어서 화도 나고, 그러다보니 오버나 언더나 다 똑같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화도 나고… 그랬어요. 사람들이 저를 잘 모르면서도 익명을 이용해서 함부로 글 올리시는 걸 보고 좀 그랬죠… 물론 제가 ‘앞에 나서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것들은 감내해야겠지만, 여전히 상처도 받고 그래요. 하지만, 만약에 더더가 잘돼서… 메이저에서 메이저라 할 수 있을 정도의 밴드로 성장한다 해도, 아마 저는 푸른새벽 같은 활동을 계속 하려고 할 거에요.

[weiv]: 그런 걸 장기적인 목표라고 생각해도 될까요?
한희정: 글쎄요… 저는 어디서 뭘 하든지 계속 음악을 할 것 같아요. 생활수단으로 다른 일을 한다고 해도 음악에 관련된 일은 계속 하지 않을까 싶네요. 20030629 | 최민우 eidos4@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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