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 블루스 – 신촌 블루스 I(그대 없는 거리/아쉬움) – 지구, 1988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향하다 한국에서 (홍익대학교 근처를 포함하는) 신촌 일대는 문화적으로 생기발랄한 기운이 자라던 곳이었다. 대학가와 번화가가 구분없이 붙어있어 유동인구가 많은 까닭이기도 했겠지만, 홍대(미대)와 그 근처 화랑들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었기에 신촌 일대는 미술가와 음악가들, 소위 당시의 기인들이 몰려들던 곳이었다. 물론 당시 명동도 그러했다지만, 당시 활동하던 음악가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명동과 신촌은 ‘공기가 다른’ 곳이었다는 진술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를테면 명동이 화사하고 트렌디한 분위기였던 반면, 신촌은 우울하고 염세적이고 혹은 보헤미안적인 공기가 흐르고 있던 곳이었다는 식이다. 그것이 역설적으로 문화적인 생기를 발생시켰을지라도, 가난한 예술가들이 포장마차에서 밤새 소주잔을 기울였다던 당시의 회고는 신촌의 우울한 공기를 충분히 연상할 수 있게 만든다. 그래서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에 한국 대중음악을 즐겨 들었던 연배의 사람들에게는 한영애, 김현식, 김광석과 같은 가수들의 이름이 신촌이라는 공간과 관련한 어떤 추억의 페이지로 기억될 지도 모른다. 그 기억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면, 엄인호와 신촌블루스를 만나기도 할테고. 엄인호와 이정선 아래, 다양한 보컬리스트들이 거쳐가고 다양한 음색을 만들어내던 프로젝트 팀 신촌블루스는, 드나드는 사람들의 개성을 ‘신촌블루스’라는 이름으로 넉넉히 품는 듯한 인상이라는 의미에서 차라리 공간으로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독보적인 블루스 필의 가요(이하에서 ‘가요 블루스’라고 부르겠다)를 만들어내던 신촌블루스라는 그룹은 대학문화와 대중문화가 조화롭게 융화되던 신촌이라는 공간과도 겹쳐진다. 1988년에 발매된 신촌블루스의 첫 음반은 이러한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는 음반이기도 하다. 음반은 크게 이정선과 엄인호의 스타일로 나뉜다. 특히 그 차이는 가사에서 뚜렷해지는데, 엄인호의 서정성은 보헤미안적인 감수성, 이를테면 은유적이고 낭만적인 노랫말의 곡들에서 빛난다. 블루스 기타의 음색과 한영애의 허스키한 음색이 귀를 잡아끄는 감상적인 노랫말의 가요 블루스 “그대없는 거리”와 애뜻한 감정이 절제된 가사로 드러나는 “아쉬움”, 정공법의 이정선 기타 주법과는 확연하게 다르게 들리는 엄인호의 ‘마구리’ 기타의 매력이 가감없이 드러나는 “바람인가” 등이 쓸쓸한 감성의 엄인호 스타일을 대변한다면, 컨트리 풍의 기타 톤과 하모니카 연주로 상대적으로 밝은 느낌을 주는 “오늘같은 밤”이나 블루스 기타 톤의 깊은 음색이 매력적인 “한밤중에”, 블루지한 느낌이지만 어딘지 살롱 음악같은 느낌을 주는 “바닷가에선들”의 곡은 이정선이 만든 곡과 엄인호가 만든 곡의 차이를 어렴풋이 느끼게 해준다. 사실 명동에서 주로 활동하던 이정선(해바라기)과 신촌에 있던 엄인호의 스타일은 비슷한 듯 다를 수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들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의 상이한 스타일이 신촌블루스라는 공간에서 융화되거나 엇갈리는 과정을 통해 신촌블루스 스타일이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박인수가 부른 “봄비”의 연주는 속 깊고 아련한 가요 블루스 정서의 범례다. 결과적으로 신촌블루스는 이정선과 엄인호의 닮은 듯 다른 스타일의 경계에서 뭔가 정리가 안된 인상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로 훌륭한 가요 블루스 음반을 만들어내었다. 게다가 신촌블루스는 1집 이후 엄인호가 동아기획으로 터를 옮기고, 몇몇 곡이 대중적으로 성공하면서 신촌 언더그라운드 음악 공동체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엄인호와 이정선의 보컬 뿐 아니라, 한영애와 정서용, 박인수의 보컬을 발굴한 음반이기도 한 신촌블루스 1집은 결과적으로 미국의 블루스 음악을 모방 수준이 아닌, 가요적인 해석을 덧붙여 그들의 스타일로 재창조한 음반이 되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시대가 바뀌고 사람이 바뀌어도 이 음반이 결국 살아남게 되는 이유 중 하나이다. 20030607 | 차우진 lazicat@empal.com 0/10 수록곡 1. 그대없는 거리 2. 오늘 같은밤 3. 나그네의 옛이야기 4. 한밤중에 5. 아쉬움 6. 봄비 7. 바닷가에 선들 8. 바람인가 9. Over Night Blues 관련 글 엄인호 vs 조동익: 후광보다 더 밝게 비친 언더그라운드의 두 불빛 – vol.5/no.13 [20030701] 10년의 고독, 20년의 블루스, 30년의 방랑: 엄인호와의 인터뷰(1) – vol.5/no.13 [20030701] 10년의 고독, 20년의 블루스, 30년의 방랑: 엄인호와의 인터뷰(2) – vol.5/no.13 [20030701] 조동진 vs 이정선: ‘한국형’ 싱어송라이터의 두 개의 초상 – vol.5/no.11 [20030601] 예외적 포크 싱어, 어쿠스틱 블루스맨 : 이정선과의 인터뷰 – vol.5/no.11 [20030601] 풍선 [너무나 속상해/불새야 동산으로] 리뷰 – vol.5/no.13 [20030701] 장끼들 [별/첫사랑] 리뷰 – vol.5/no.13 [20030701] 신촌블루스 [신촌블루스 II(황혼/골목길)] 리뷰 – vol.5/no.13 [20030701] 신촌블루스 [신촌블루스 III(이별의 종착역)] 리뷰 – vol.5/no.13 [20030701] 엄인호 [환상/골목길] 리뷰 – vol.5/no.13 [20030701] 엄인호 [Sing The Blues] 리뷰 – vol.5/no.13 [20030701] 엄인호/박보밴드 [Anthology/Rainbow Bridge] 리뷰 – vol.5/no.13 [20030701] 관련 사이트 신촌블루스, 장사익, 박보 팬 사이트 http://cafe.daum.net/junggam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