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704025801-0513yasha야샤 – Yasha Collection – 동아기획/서라벌, 1992

 

 

‘조동익 밴드’의 전신

지리멸렬한 현 가요계에서 하나음악의 존재가 단연 돋보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작곡과 편곡, 연주라는 ‘기본’에 가장 충실한 음악을 들려주기 때문일 것이다. 굳이 ‘음악의 진정성’이라는 논쟁의 소지가 있는 단어를 들이밀 필요까지도 없다. 하나음악의 노래들은 음악에 있어 가장 근본적인 요소들에 지극히 충실하다. 오래 고민해서 만들어낸 아름다운 선율, 누구나 생각하지만 표현하지는 못하는 것들을 읊조리는 노랫말, 섬세하게 잘 조율된 어레인징, 그리고 군더더기 없이 딱 적확한 연주까지. 이런 요소들은 한국 가요계가 오래 전에 잃어버린 것들이다. 음악을 하는데 있어 무엇보다 필수적인 부분들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 중에서도 조동익, 박용준 등에 의해 주도되는 편곡은 국내의 다른 어느 음악집단도 범접할 수 없는 분야일 것이다. 보통 국내 주류 가요계의 음반들은 어떤가. ‘일류 작곡가’라고 불리지만 실은 그 나물에 그 밥인 송라이터들의 곡을 받아다가, 전문(매너리즘에 빠진) 편곡자에게 맡기고, 이를 샘 리나 이태윤 등의 노회한 세션맨들에게 연주하게끔 한다. ‘협업’이어야 할 작업이 ‘분업’으로 이루어지고, ‘창조’여야 할 작업이 ‘생산’으로 전락하는 격이다. 또한 편곡자들은 음표 하나하나, 악기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정성스레 새겨넣는 대신 ‘대강의 그림’만을 스케치하는데 그친다. 이렇게 되면 제아무리 능숙한 세션맨들이라도 상상력을 펼칠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적은 수의 재원들이 지나치게 혹사당하기까지 한다. 좀 잘 나간다 하는 연주자(강수호, 홍준호 등등)는 국내 거의 모든 음반의 크레딧에 등장하지 않던가. 마치 ‘사막에 물 뿌리기’ 같은 작업을 하는데 어떻게 창조적인 연주가 가능하겠는가. 결국 이런 시스템 하에서는 누가 참여하더라도 천편일률적인 연주가, 그 놈이 그놈 같은 결과물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휘황찬란한 스트링과 브라스 섹션, 기계음으로 메꿔 대중들의 눈을 흐리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러나 조동익 사단의 곡에는 웅장한 오케스트레이션, 닐리리 관악 섹션, 요란한 전자음의 장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노래를 가다듬는 손길에는 진심이 묻어 있고, 세심함과 정성이 서려 있다. 서로를 너무도 잘 아는 음악인들끼리 그 자리에 딱 들어맞는 소리들을 펼쳐 넣는다. 초원에 물을 주는 것과 같은 작업이다. 이들의 성능 좋은 스프링쿨러는 햇빛을 아련히 반사하며,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지금까지도) 빙글빙글 잘도 돌아만 간다(비록 속도는 느리고 경제적으로는 빈곤하다 하더라도).

조동익을 중심으로 한 연주 프로젝트 ‘야샤’의 1992년작 음반은 이런 하나음악의 뿌리를 돌아보게끔 한다. 여기에 함께한 네 명의 연주자는 그 면면만으로도 호화롭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그 조동익, 이승환의 초기 음반에서 탁월한 작곡가-연주자의 역량을 선보인 손진태, 기타의 장인 함춘호, 1990년대 초반의 떠오르는 신성, 혹자에겐 ‘천재’로까지 불리던 김현철이 한 자리에 모였다. 각자 두 곡씩을 만들고, 다같이 궁리해서 곡을 장식하고, 찰진 연주를 트랙 곳곳에 새겨 넣었다. 분업이 아닌 협업이며 생산이 아닌 창조였고, 마치 포플레이(Fourplay) 같은 프로젝트였다. 당시의 한국에서는 좀체 시도하기 힘든 작업이기도 했다.

그러나 ‘포플레이’ 같았다는 말은 멤버들의 역량에 비해 최상의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1+1+1+1=4일지 몰라도, 1*1*1*1=1이 되지 않던가. 최상의 멤버들이 모였다고 해서 반드시 시너지 효과가 나는 것은 아닌지, 야샤의 노래들은 편안하고 느긋하기는 하되 딱 거기서 머무른다. 물론 구성원들의 역량이 있는 만큼, 연주력과 ‘가청성’에 있어서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함춘호와 손진태가 주거니 받거니 꾸려 나가는 기타 파트는 그 선율 감각만으로도 뛰어난 것이고, 한창 날선 김현철의 건반은 필요할 때마다 번쩍인다. 곡 작업도 연주도 그냥 한 게 아님을, 진지한 작업의 산물임을 듣는 즉시 감지할 수 있다. 가령 “여름날”의 인상적인 리드 기타라던가, “새벽”의 어쿠스틱 기타가 만들어내는 공명, “시드니의 겨울”에서 울려 퍼지는 건반과 기타 선율의 배합은 분명 심사숙고의 결과물들이다. 초기 김현철의 감각이 잘 살아있는 첫 곡 “눈싸움하는 아이들”에서 두 대의 기타와 신서사이저의 오밀조밀한 조화, ‘영롱하다’고 밖에는 묘사할 길이 없을 “여름날”, 팻 매스니 (Pat Metheny)를 닮아 하늘하늘 이지러지는 “영동선”은 마냥 아름답게만 들린다.

그럼에도 ‘야샤’는 주인공들에 대한 높은 기대치를 충족시키는 작품은 아니다. 우선 이지 리스닝의 성향이 너무 강하다는 점이 불만이라면 불만인데, 따뜻한 목욕물처럼 편안키는 하되 다시 들어가고 싶지는 않은 게 문제다. 또한 네 연주자들의 각기 다른 관심사와 개성이 온전히 융합하지 못했다는 점도 있다. 김현철의 매끈한 퓨전 재즈, 조동익의 당시 최대 관심사인 팻 매스니, 티 타임을 풍성하게 해 주는 함춘호·손진태의 감성. 이 모두는 따로 놓고 보면 굉장한 것들이지만, 한 음반 내에서는 무난하게 조화되지 못했다. 개별 곡들이 다 아름답고 듣기 좋음에도 하나로 엮이지 못하는 이 서먹함은, 단순히 네 참여자들에 대한 큰 기대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런 문제들 때문인지 본래 계획이 그랬는지, 야샤 프로젝트는 이 한 장의 음반으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야샤의 ‘의도’만은 1990년대를 거치며 ‘조동익 밴드’로 업데이트되어 나타나게 된다. 원래 야샤 자체가 획일적인 스튜디오 세션에 질린 뮤지션들의 모임이었다. 선율 하나라도, 기타 솔로 하나라도 좀 더 정성 들여 만들어 보자는 기획이었던 것이다. 지금의 ‘조동익 밴드’에는 이런 야샤의 본 의도가 발전적으로 나타난다. ‘조동익 밴드’는 기존의 조동익·함춘호 노장 듀오에 초창기 김현철이 고이 보존된 듯한 뮤지션 박용준, 빼어난 송라이터 윤영배가 가세해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 반짝반짝 빛나는 음악집단은 오늘은 장필순의 음반에서, 어제는 안치환의 음반에서 종횡무진 활약 중이다. 그게 그거 같은 지금의 대중음악계에서, 조동익 밴드와 하나음악이 만드는 진심과 정성이 가득한 노래들은 단연 독야청청 빛난다. 이들은 노랫말도 음표 하나도 그냥 쉬 새겨넣는 법이 없는, 대중음악계에 가장 결핍된 부분을 채워 주는 음악 집단이다. 야샤 자체는 비록 성공적이진 못했지만, 이 정도면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할 수 있지 않을까. 20030601 | 배성록 beatlebum@orgio.net

7/10

수록곡
Side A
1. 눈싸움하던 아이들
2. 여름날
3. 영동선
4. Chess
Side B
1. 다시 만날 때까지
2. 시드니의 겨울
3. 새벽
4. 소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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