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익 – 동경 – 킹레코드(KSC 40058), 1994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1984년 [우리노래 전시회] 1집에 “너무 아쉬워하지마”라는 트랙을 발표하고, 1986년에 첫 정규 음반을 발표한 어떤날은 당시 한국 대중음악에 신선한 사운드를 제시했던 팀이다. 맑고 순수한 사운드와 일상적인 가사로 된, 차분하지만 범상치 않은 노래들을 선보인 이들은 여린 소년의 감수성처럼 쉽게 부서질 듯하면서도 한편으로 고집스러울 정도로 순수함/순결함에 안착하는 서정적인 곡들을 만들었다. 그리고 어떤날의 멤버, 조동익과 이병우는 그들이 만들어낸 사운드처럼 은은하고 아련하게 한국 대중 음악계에 스며들었다. 이병우는 솔로 음반 발표와 유학을 거치며 자신의 음악세계를 고전음악의 영역으로까지 확장시켰고, 조동익은 편곡과 프로젝트에 매진하던 중에 하나뮤직이라는 공동체의 구심점이 되었다. 그리고 1994년, 그의 첫 솔로 음반 [동경(憧憬)]이 발표되었다. 음반은 전체적으로 팻 메쓰니(Pat Metheny)의 영향이 진하게 느껴진다. 그 중에서도 1980년대의 안정적인 사운드, [Offramp](1981)이나 [The First Circle](1984), [Letter From Home](1989)등이 조동익의 손끝에서 오롯이 재현되는 느낌이다. 첫 곡 “동경”부터 마지막 곡 “혼자만의 여행”까지 듣는 동안 우리는 팻 메쓰니 장마비가 내리는 풀밭을 가로지르는 달팽이를 따라가는 기분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드럽고 약한 더듬이가 보는 곳이 어디인지는 우리가 달팽이가 아닌 이상 알 수 없을지라도(그래서 약간 설레고 다소 안쓰럽더라도), 새큼한 풀 냄새와 촉촉한 공기를 머리칼에 가득 묻히게 되는 산책길이 꺼려지지는 않는다. 유난히 편안하게 편곡된 사운드와 조동익 특유의 섬세한 보컬 덕분이다. 비 내린 직후의 청량함이 느껴지는 “동경”에 이어 흐르는 “엄마와 성당에”는 한적한 성당 안을 비치는 일요일 오전의 나른한 햇살 같은 느낌의 차분한 곡이고, 다음 곡 “노란 대문”은 정릉에 있던 조동익의 집에 대한 곡인데, 건반악기의 맑은 음색이 명랑하고 경쾌한 분위기를 연출하면서도, 어딘지 도시적인 느낌과는 거리가 있는 묘한 느낌을 준다. 이를테면 어떤날의 음반에서 “출발”이나 “취중독백”의 사운드를 연장한 듯한 인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딸에게 바치는, “경윤이를 위한 노래”는 명상적이고 차분한 피아노 연주와 들릴 듯 말 듯 흐르는 기타 연주가 어울려 아련한 서정성을 획득하기도 하고, “동쪽으로”와 “물고기들의 춤”, “함께 떠날까요”등의 곡은 신서사이저 기타의 몽롱한 음색이 보일 듯 보이지 않는 곳에 닿는 시선을 안타깝게 잡아끌기도 한다. 음반을 다 듣고 난 뒤에는 저도 모르게 낮은 탄식이 흘러나올지도 모른다. 그것은 낙천적인 듯 무상하게 흐르지만, 그 근저에는 쓸쓸한 감정이 담겨있는 사운드에서 느껴지는 감흥이기도 하고, 뉴에이지풍 사운드의 목가적인 분위기 덕분이기도 하다. 사실 이 음반은 차라리 명상음악으로 분류해도 될 만큼 나직하고 차분한 어조를 지녔다. 생각해볼 만한 것은 [동경]이 하나뮤직이 제법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기(1992년부터 1995년 사이)에 나온 음반이라는 점이다. 하나뮤직이 아닌 킹 레코드로 발매사가 인쇄된 까닭은 당시 음반 제작 시스템에 의한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지만 어쨌든, 직접 참여한 인물들이 이병우(기타), 김광민(피아노), 장필순/한동준/박용준(보컬, 코러스), 그리고 서종칠(엔지니어)등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동경]이 하나뮤직이라는 ‘음악 공동체’의 산물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음반 표지의 사진은 흑백의 하늘이다. 그 사진은 왠지 조동익 본인을 포함하여, 하나뮤직의 ‘식구’들이 어쩌면 멀리 바라보기를 좋아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물론, 어디쯤인지도 모를 곳을 바라보는 그들의 속내야 알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그들이 들려주는 노래들은 한결같이 다정하고 따뜻하며, 슬픔과 열정을 품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을 것이다. 덕분에 조금은 안타까워하면서 그러나 실은 많이 고마워하며 그들의 노래를 찾게 되는 까닭은 바로 그들의 노래가, 평소에 잊고 지내는 일상의 한 부분을 다정하게 상기시켜주기 때문이다. 장필순의 건조한 목소리로든, 조동진의 영적인 기타 멜로디로든, 혹은 슬픈 듯 다정하여 속 깊은 울림을 주는 조동익의 노래로든 한결같이 그들은 잠깐 숨을 돌리라고 속삭인다. 그래서 ‘동경’이라는 음반의 제목은 보일 듯 보이지 않는 바로 그 곳, 과연 닿을 수나 있을지 아니면 얼마나 걸릴지 확신도 없고 약속도 없는, 그러나 어쨌든 그들이 함께 보고 있는, 어떤 음악적 지향점을 일컫는 말로도 들린다. 이를테면 그것은 슬프도록 아름다운, 상징적인 풍경이다. 20030607 | 차우진 lazicat@empal.com 8/10 수록곡 1. 동경(憧憬) 2. 엄마와 성당에 3. 노란대문(정릉 배밭골 70) 4. 경윤이를 위한 노래 5. 동쪽으로 6. 물고기들의 춤 7. 함께 떠날까요 8. 혼자만의 여행 관련 글 엄인호 vs 조동익: 후광보다 더 밝게 비친 언더그라운드의 두 불빛 – vol.5/no.13 [20030701] 조동진 vs 이정선: ‘한국형’ 싱어송라이터의 두 개의 초상 – vol.5/no.11 [20030601] 기나긴 기다림, 짧은 만남 그리고 긴 여운: 조동진과의 인터뷰 – vol.5/no.11 [20030601] 하나음악 식구들, ‘어떤 날’, ‘그런 날’, ‘그 날’들에 대해 말하다: 조동익과 후배들과의 한 밤의 취중좌담 – vol.5/no.13 [20030701] 배리어스 아티스트 [우리 노래 전시회 I] 리뷰 – vol.5/no.6 [20030316] 어떤 날 [어떤 날 I(1960·1965)] 리뷰 – vol.3/no.8 [20010416] 어떤 날 [어떤 날Ⅱ(출발/덧없는 계절)] 리뷰 – vol.5/no.13 [20030701] 야샤 [Yasha Collection] 리뷰 – vol.5/no.13 [20030701] 조동익 [Movie] 리뷰 – vol.5/no.13 [20030701] 배리어스 아티스트 [겨울노래] 리뷰 – vol.5/no.13 [20030701] 배리어스 아티스트 [바다] 리뷰 – vol.5/no.13 [20030701] 배리어스 아티스트 [꿈] 리뷰 – vol.5/no.11 [20030601] 장필순 [Soony 6] 리뷰 – vol.4/no.23 [20021201] 김창기 [하강의 미학] 리뷰 – vol.2/no.13 [20000701] 관련 사이트 하나뮤직 공식 사이트 http://www.hanamusic.co.kr/ 조동익 다음 카페 사이트 http://cafe.daum.net/jodongi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