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704024837-0513kyoulnore배리어스 아티스트 – 겨울노래 – 하나뮤직, 1997

 

 

좋은 겨울 노래는 여름에 들어도 좋다

무더운 날이면 빠른 비트의 댄스 음악이 많은 사랑을 받으며, 가을에는 마이너 코드의 절절한 발라드 넘버들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이처럼 계절은 음악을 듣는데 있어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요인들이다. 이는 음반을 만드는 입장에서 음악에 따라 발매 시기를 조정하는 것이 상업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결론으로 쉽게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조금 더 상업적으로 접근하면 앨범의 기획 자체가 계절에 맞춰 이뤄질 수 있다는 얘기 역시 가능하다. 그 가장 대표적인 예로 크리스마스 시즌을 겨냥한 캐롤 앨범을 손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실상을 살펴보면 단기간의 음반 판매에 연연했던 기획사들로 인해 소속사의 인기 가수들을 한데 모아 캐롤을 다시 부르게 한다거나(리메이크의 개념이 아니다), 심지어는 코메디언들의 유행어를 1시간 내내 반복하는 지루한 저질 음반을 선보이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러한 현실에서 하나의 앨범으로서 작품성을 갖는 계절 음반 ‘겨울노래’는 단연 빛을 발한다 (하나뮤직은 이 앨범을 컴필레이션이 아닌 옴니버스 음반이라고 얘기한다)

앨범에 참여한 뮤지션의 면면을 살펴보면 하나뮤직의 간판이자 조동익 밴드라 할 수 있는 박용준(키보드), 김영석(드럼), 조동익(베이스), 함춘호(기타)가 대부분의 곡의 연주를 맡고 있다. 뿐만 아니라 조동익 밴드와 함께 음악을 만들었던 조동진, 김광진, 한동준, 장필순, 고찬용등이 참여하여 앨범을 더욱 풍성하게 하고 있다. 이처럼 여러 음악인들이 참여하는 편집 음반은 그 구성상의 특징상 다양한 음악을 담을 수 있다는 장점과 함께 앨범의 집중도가 떨어진다는 단점을 갖는다. 하지만, 이 음반에서는 조동익과 박용준이 대부분의 곡들의 편곡을 맡아 사운드의 통일성을 유지하면서 편집음반이 갖기 쉬운 단점을 극복하고 있다.

과거 조동익은 김광석, 안치환등과의 작업에서 포크에 기반을 둔 음악을 선보였지만, 최근작인 독집 앨범 [Movie](1998)와 전체적인 프로듀싱을 맡았던 장필순의 음반 [Soony 6](2002)에서는 전자음악에 대한 관심을 나타낸 적이 있다. [겨울노래](1997)는 그 과도기적인 성격의 음반으로 전자의 따뜻함과 후자의 차가움(이러한 속성은 어쿠스틱 악기와 전자악기의 차이에 기인한 바가 크다)을 모두 느낄 수 있는 음반이다 (물론 조동익의 차가움은 여타 전자음악이 갖는 차가움과는 다른 연장선에 놓여있다. 이는 조동익이 서정성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며, 이로 인해 조동익의 차가움은 ‘차갑지만 따뜻한’ 혹은 ‘따뜻하지만 차가운’정도로 표현할 수 있다). 또 김광진과 함께 더 클래식을 결성했던 박용준은 키보드 연주자일 뿐 아니라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잘 사용하는 편곡자중 한 명이다. 그의 프로그래밍은 전자음악의 티를 내지 않고 다른 악기들과 잘 어울리는 특징을 갖는다(개인적으로 인터뷰에서 확인할 수 있는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그의 성격과 많이 닮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장필순이 부른 “다시 눈을 뜰 수 없게 되면”,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출신 박인영이 만든 “눈이 많던 겨울”, 조동진의 “겨울숲”, 그 외에 “상욱이의 크리스마스”, “외투속에 숨겨둔 이야기들”, “첫 발자욱”(이 곡은 후일 영화 [No.3]에 삽입되어 [Movie]에 실리게 된다) 이렇게 앨범의 절반은 컴퓨터 프로그래밍이 배제된 어쿠스틱사운드를 들려준다. 이중 함춘호가 작곡하고 연주한 “상욱이의 크리스마스”, 박용준이 만들고 연주한 “외투속에 숨겨둔 이야기들”은 연주와 작곡에 모두 능한 두 뮤지션의 재능이 잘 발휘된 연주곡이다. 하나뮤직의 정신적 지주라 할 수 있는 조동진이 참여한 “겨울숲”은 특별한 악기의 도움없이 대가의 목소리만으로 감동을 느끼게 해주는 트랙이다. 그 외 앨범의 절반은 앞서 언급했던 조동익과 박용준의 전자음악을 담고 있다. 하지만, 겨울을 노래한 앨범의 특성 때문인지 전자음 대부분이 모나지 않고 따뜻한 느낌으로 편곡되었다. 다만 그 중 조동진이 불렀던 “진눈깨비”는 박용준에 의해 파격적으로 재해석되었다. 서정적이었던 원곡의 멜로디는 단지 안치환의 무덤덤한 목소리에서만 확인할 수 있고, 사운드는 매우 기계적이며 불규칙적이다. 이러한 낯선 느낌의 편곡은 이후 장필순의 독집 음반에서 재확인할 수 있는데, 최근 조동익 사단 사운드의 특징으로 얘기할 수 있겠다.

이 리뷰는 때 이른 무더위가 찾아온 6월에 쓰여졌다. 리뷰를 위해 오랫만에 음반을 꺼내어 들으며 비록 겨울 시즌을 겨냥해 만들어진 기획 음반이지만, 좋은 음악은 계절을 불문하고 들어도 좋다는 진리를 새삼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현재 한국에서 가장 음악을 잘하는 집단으로 몇 손가락안에 꼽힐 그들이 야심차게 만든 기획음반이 몇 년이 지나도록 대중들에게 변변하게 알려지지 조차 못한 것을 보며, 새삼 좋은 음악은 널리 사랑받는다는 진리는 사라진 것이 아닌지 아쉬움이 든다. 20030606 | 이성식 landtmann@empal.com

8/10

수록곡
1. 첫눈 – 낯선사람들
2. 다시 눈을 뜰 수 없게 되면 – 장필순
3. 진눈깨비 – 안치환
4. 졸업 – 더 클래식
5. 아름다운 별이 되어 – 한동준
6. 상욱이의 크리스마스 – 함춘호
7. 눈이 많던 겨울 – 박인영
8. 겨울비 – 권혁진
9. 외투속에 숨겨둔 이야기들 – 박용준
10. 외로운 이층집 – 윤영배
11. 겨울숲 – 조동진
12. 첫발자욱 – 조동익

관련 글
엄인호 vs 조동익: 후광보다 더 밝게 비친 언더그라운드의 두 불빛 – vol.5/no.13 [20030701]
조동진 vs 이정선: ‘한국형’ 싱어송라이터의 두 개의 초상 – vol.5/no.11 [20030601]
기나긴 기다림, 짧은 만남 그리고 긴 여운: 조동진과의 인터뷰 – vol.5/no.11 [20030601]
하나음악 식구들, ‘어떤 날’, ‘그런 날’, ‘그 날’들에 대해 말하다: 조동익과 후배들과의 한 밤의 취중좌담 – vol.5/no.13 [20030701]
배리어스 아티스트 [우리 노래 전시회 I] 리뷰 – vol.5/no.6 [20030316]
어떤 날 [어떤 날 I(1960·1965)] 리뷰 – vol.3/no.8 [20010416]
어떤 날 [어떤 날Ⅱ(출발/덧없는 계절)] 리뷰 – vol.5/no.13 [20030701]
야샤 [Yasha Collection] 리뷰 – vol.5/no.13 [20030701]
조동익 [동경] 리뷰 – vol.5/no.13 [20030701]
조동익 [Movie] 리뷰 – vol.5/no.13 [20030701]
배리어스 아티스트 [바다] 리뷰 – vol.5/no.13 [20030701]
배리어스 아티스트 [꿈] 리뷰 – vol.5/no.11 [20030601]
장필순 [Soony 6] 리뷰 – vol.4/no.23 [20021201]
김창기 [하강의 미학] 리뷰 – vol.2/no.13 [20000701]

관련 사이트
하나뮤직 공식 사이트
http://www.hanamusic.co.kr/
조동익 다음 카페 사이트
http://cafe.daum.net/jodongi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