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리어스 아티스트 – 바다 – 하나뮤직, 2001 7번 국도를 따라 흐르다 7번 국도는 낭만적인 길이다. 강원도 고성으로부터 시작되어 동해안을 끼고 경상도에 다다르는 그 도로는 적어도 남한에서만큼은 낭만적 서사의 메타포로 기능한다. 2002년 하나뮤직에서 발매된 모음집 [바다] 역시 그 길을 따라 흘러가는 여행자의 노래를 담고 있다. 음반의 마지막 트랙에 사용된 파도소리를 담기 위해 강원도 고성까지 다녀왔다는 조동익과 서종칠(하나음악 레코딩 엔지니어)의 이야기 덕분이겠지만 이 음반은, 고백하자면, 갓 스물을 넘겼을 무렵의 내가 고성에서 우연히 만났던 그 ‘바다’를 떠올리게 한다. 음반에 수록된 곡들은 주로 어쿠스틱 기타와 건반 악기가 사용되어 때로는 몽환적으로 때로는 회고적으로 바다라는 하나의 주제를 변주한다. 수록곡들은 전체적으로 정적(靜的)이지만 그들 사이에서 의미심장한 경계와 차이가 감지되기도 한다. 나른한 피콜로 베이스 연주곡 “Prolog(AM 5:30 7번 국도)”에 이어 조동익은 매력적인 기타 스트로크에 ‘전쟁 같은 그대 일상’을 벗어나 바다로 떠나자고 나직이 유혹하고(“탈출”), 조동익의 바통을 이어받은 이규호는 ‘이 바다가 좋아, 날 데려가도 좋아, 어디로든 갈 수 있다면’이라고 답하기도 한다(“규호의 바다”). 이 두 사람이 여행의 동반자로서 바다를 노래한다면, 오소영의 “겁쟁이”는 자기 고백적인 독백에 가깝다. 어쿠스틱 기타 선율에 맞춰 지나칠 정도로 담담하게 읊조리는 이 곡은 그녀의 솔로음반 [기억상실](2001)에 실리기도 했다. 더 클래식의 멤버이기도 했던 박용준의 “또 다른 땅”은 다양한 음향 효과가 몽환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는 곡인데, 짧은 곡 길이만큼이나 간결한 가사와 전기 기타와 베이스 기타의 단순한 구성이 묘한 느낌을 주는 곡이다. 훵키한 리듬과 베이스 선율에 맞춰 바다를 노래하는 곡 “가을, 그 바다는”의 김정렬은 새바람이 오는 그늘에서 보여준 바 있던, 이른바 대중적인 코드를 능숙하게 다루면서도 식상하지 않은 멜로디를 만들 줄 아는 재능을 숨김없이 보여준다. 김세운의 “은빛 물고기의 춤”은 전원적(혹은 ‘오리엔탈’적)이고 차분한 멜로디의 주제 선율이 반복되며 변주되는 짧은 연주곡인데, 미진한 듯 마무리되는 후반부의 여백은 아련한 심상을 남기고 사라진다. 발랄하고 경쾌한 멜로디에 부드러운 보컬이 매력적인 한동준의 “그 바다로”와 슬로우 템포의 드럼에 맞춰 변주되는 어쿠스틱/전기 기타의 조합이 건조한 목소리와 어울려 의외의 다정다감함을 만들어내는 장필순의 “다시 보고 싶어”는 그동안 그들이 구축해 놓은 익숙한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물론 바로 그 점이 이들에 대한 신뢰감을 재확인하게 하지만 말이다. 반면에 권혁진의 힘있는 보컬과 담백한 사운드로 가벼운 느낌을 던져주는 포크 록 “햇살 가득한 곳으로”나 아득한 전기기타 연주에 건조한 듯 쓸쓸한 느낌의 보컬이 매력적인 윤영배의 “길들이지 않은 새”는 여행자의 시선을 담고 있는 곡이다. 특히 윤영배는 “빨간 자전거 타는 우체부”, “스파이더 맨” 등에서 보여준 세심한 감수성을 이 음반에서 유일한 록 넘버로 표현한다. 그리고 이 여정의 마지막은 조동진의 “빈 하루”로 마감된다. 언제나처럼 차분하고 다정한 느낌을 주는 그의 음악은 어떤 면에서는 종교적, 관조적으로 들리기까지 하는데 저음의 보컬과 일상적인 언어로 된 보컬과 나른하고 아련한 프렛리스 베이스의 사운드가 전체적인 인상을 정의하는 다감한 인상의 곡이다. 이 음반은 한편으로는 전자음이 대중음악을 정의하는 시대에 어쿠스틱 사운드의 효용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21세기라는 디지털 신세계에 하나뮤직의 지향점이 어디인지 다시 확인시켜주는 음반이다. 하나뮤직의 대표적인 음악가들인 조동익, 조동진, 한동준, 장필순 등이 들려주는 여전한 그러나 신뢰감 있는 사운드의 맞은편에는 이규호, 김정렬, 권혁진, 윤영배 등의 익숙한 듯 새로운 사운드가 존재한다. 그들이 들려주는 ‘소리’는 일견 단순하고 쉽게 들리지만, 세심하게 계산되어 배치된 사운드이다. 어쿠스틱 기타와 전기기타, 프로그래밍된 사운드와 리얼 사운드의 차이와 경계에 대한 고민은 음반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Epilog(pm 10:00 속초)”에서 드러난다. 1분 50여 초의 파도소리를 담은 이 트랙은 앞서 말했듯이, 강원도 고성의 한 바닷가에서 직접 채록한 것이다. 사운드에 대한 작가적 관점과 그 소리를 재생하는 기술적 관점의 차이는 이를테면, 거울의 안과 바깥처럼 모호한 것이지만 그것은 결국 하나의 곡을 만드는 과정 그 자체다. 조동진(과 하나뮤직)의 사운드에 대한, 혹은 진정성에 대한 고민은 작업 과정에 대한 고민과도 연결되어 있다. 이들은 마치 고속도로 갓길을 느릿하게 걸어가는 방랑객을 닮았다. 혹은 경부고속도로가 아니라 7번 국도를 따라 주변을 살피며 사진기의 셔터를 누르는 관광객을 닮았다. 어쨌든 남들보다 느리게 걸을 때에 풍경이 더 잘 보이는 것처럼, 이들은 너무 사소해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잊어버리는 감수성을 넉넉한 삶의 속도로 재현해서 들려준다. 그래서 그들은 가수보다는, 이른바 가객에 가깝다. 덧붙여 이미 이 시대의 속도에 익숙해진 우리들로서는 그저 이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가끔 그들의 속도에 발을 맞춰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하다. 사실 그것은 이 VDSL(초고속 디지털 가입자회선: Very High-data Rate Digital Subscriber Line)의 시대에 그리 손해보는 일도 아닐 것이다. 혁신적이지는 않지만 매번 진지한 작품들을 어쨌든, 우리는 당대에 접할 수 있으니 말이다. 20030528 | 차우진 lazicat@empal.com 8/10 수록곡 1. Prolog (AM 5:30 7번 국도) 2. 탈출 – 조동익 3. 규호의 바다 – 이규호 4. 겁쟁이 – 오소영 5. 또 다른 땅 – 박용준 6. 가을, 그 바다는 – 김정렬 7. 은빛 물고기의 춤 – 김세운 8. 그 바다로 – 한동준 9. 다시 보고 싶어 – 장필순 10. 햇살 가득한 곳으로 – 권혁진 11. 길들이지 않은 새 – 윤영배 12. 빈 하루 – 조동진 13. Epilog (pm 10:00 속초) 관련 글 엄인호 vs 조동익: 후광보다 더 밝게 비친 언더그라운드의 두 불빛 – vol.5/no.13 [20030701] 조동진 vs 이정선: ‘한국형’ 싱어송라이터의 두 개의 초상 – vol.5/no.11 [20030601] 기나긴 기다림, 짧은 만남 그리고 긴 여운: 조동진과의 인터뷰 – vol.5/no.11 [20030601] 하나음악 식구들, ‘어떤 날’, ‘그런 날’, ‘그 날’들에 대해 말하다: 조동익과 후배들과의 한 밤의 취중좌담 – vol.5/no.13 [20030701] 배리어스 아티스트 [우리 노래 전시회 I] 리뷰 – vol.5/no.6 [20030316] 어떤 날 [어떤 날 I(1960·1965)] 리뷰 – vol.3/no.8 [20010416] 어떤 날 [어떤 날Ⅱ(출발/덧없는 계절)] 리뷰 – vol.5/no.13 [20030701] 야샤 [Yasha Collection] 리뷰 – vol.5/no.13 [20030701] 조동익 [동경] 리뷰 – vol.5/no.13 [20030701] 조동익 [Movie] 리뷰 – vol.5/no.13 [20030701] 배리어스 아티스트 [겨울노래] 리뷰 – vol.5/no.13 [20030701] 배리어스 아티스트 [꿈] 리뷰 – vol.5/no.11 [20030601] 장필순 [Soony 6] 리뷰 – vol.4/no.23 [20021201] 김창기 [하강의 미학] 리뷰 – vol.2/no.13 [20000701] 관련 사이트 하나뮤직 공식 사이트 http://www.hanamusic.co.kr/ 조동익 다음 카페 사이트 http://cafe.daum.net/jodongik